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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해봐야 더 잘 할 수 있다

단상

by 김성호

이제껏 옷을 살 땐, 그럴 일도 년에 한 번이나 될까 싶지만, 외관을 보는 일이 드물었다. 방수가 되는지, 뭐가 묻어도 티가 안 나는지, 쉽게 찢기진 않는지, 주머니는 많은지, 오래 입을 수 있는지 따위의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 쇼핑에 쓸 돈을 가져본 적도 없고, 사내가 보여지는 것에 관심을 두어 무엇하냐는 생각까지 박혀있던 터라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런데 이젠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졌다. 옷장을 열어도 죄다 어디서 생긴 것들 뿐 마음에 들어 직접 고른 옷이 없다는 게 불쾌하게 느껴졌다.


보여지는 건 아주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나도 그걸 안다. 때론 공들여 갈고 닦은 기량도 순간의 인상을 넘지 못한다. 그 인상의 상당부분이 꾸며진 외관이다. 기세와 분위기라 하는 것도 태반은 패션에서 출발한다. 꾸며지지 않은 귀한 것을 알아보는 이는 언제나 드물다.


허름한 차림의 현자보다 화려하게 꾸민 돼지가 인정받는 건 시대정신에 가깝다. 서점만 가도 그렇지 않은가. 개나소나 책을 쓰는 이 시대엔 정말 개나소나 개똥소똥 같은 것을 싸지르고, 또 그 가운데 명성을 얻는 것이 제법 있으므로, 외양이 내면보다 중요하단 사실을 가히 시대정신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무튼 나는 아주 오랜만에 외양이 마음에 드는 옷을 샀다. 처음 본 순간부터 내 것이구나 싶은 자켓이었다. 이 옷을 입고 거리를 걸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옷을 자주 사지야 않겠지만, 가끔은 쇼핑이란 걸 해도 좋겠다 싶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도 해봐야 더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9. 6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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