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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푸른 개같은 오후에

단상

by 김성호

서른다섯쯤 나이를 먹어 주위를 둘러보니 처량하고 쓸쓸하여 잘못 산 듯 싶더라. 일찍이 품은 꿈은 산산이 조각나서 본래 어떤 모양인지 맞출 수 없고, 마음 뒀던 관계도 흔적 없이 무너져 홀로 한숨만 쉬고 있다.


두뇌는 둔해지고 눈은 흐려져서 방해나 안 되면 다행. 나 하나는 지키겠다 자신했던 성격마저 물먹은 종이처럼 약해져 당기는대로 떨어져나간다.


4골을 내리 먹히고 후반전을 뛰러 나가는 무능력한 수비수처럼, 아무데나 뛰어들어 남 다리나 걷어차고 싶은 나날. 피는 여전히 붉게 타고 자존심은 닳지 않아 어찌어찌 버티고만 있는 것이다.


밤 사이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이제는 제대로 살아야지.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아 내일부턴 사람답게 살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는 끝없이 솟구친 봉우리 허리께 뻗은 나뭇가지를 붙들고 살겠다고 살겠다고 버둥거리다 깨어난다.


죽은 연어 시체를 잘라 배를 채우고 오늘은 죽은 연어보단 나은 삶을 살아야지. 저녁이면 실망할 푸른 개같은 오후에.



2020. 6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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