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어린 시절엔 내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 뭐든 다 이룰 수 있다고 믿었고, 개중 가장 어려운 길을 가보리라 결심했었다.
한 줄 한 줄 써내려간 작품들이 심사에서 떨어질 때면 나 대신 볼 줄 모르는 눈들을 비난했었다. 그러고도 언젠가는 이루리라 자신했었다. 모든 것이 선명했고 흔들림이 없었다.
기자가 되고 나서도, 배를 탄 뒤에도 나는 그냥 기자와 항해사보다는 더 나은 무엇이라 믿었다. 가깝다고 생각했고 언제고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대체 얼마나 오만했던가.
이제와 돌아보니 아무것도 아니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노력했는지, 그 노력이 내게 남긴 것은 우울과 슬픔뿐이다. 잘려나간 손가락과 갈수록 민망해지는 술버릇이다.
정말 형편없는 건 그렇게 형편없지는 않다는 거다. 주변엔 좋은 이들이 제법 있고 개중 몇쯤은 나를 걸맞는 친구로 여길 것이다. 그닥 쓸모없지 않은 일을 하고 가끔은 괜찮은 성과도 낸다. 당장 일을 그만둬도 불러줄 곳이 많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도 나는 여기서 괴로워만 하고 있다. 나약하고 사내답지 못하게 주저앉아 아픈 곳만 쓰다듬고 있다. 정말이지 이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술에 절어 엉망진창 허우적대는 나날. 열여덟의 내가 보았다면 싸대기를 올려붙였을텐데. 주저없이 후회도 없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둘러보면 모든 것이 제멋대로 흔들리는데. 슬픈 영화를 보다가 화를 내고, 진지한 책을 읽다가는 눈물을 쏟는 나날들. 이제 내가 사는 세상에는 분명한 것도 확신할 수 있는 것도 남아 있지 않구나.
2020. 7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