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통영땅에서

여행

by 김성호

구한말 통영땅에 김삼주란 부자가 살았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악착같이 벌어 연 3000석을 수확하는 지주가 됐다. 무슨 변화가 있었던가. 나이 50이 되어 뜻을 세웠으니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김삼주는 재산을 더 불리는 대신 고달픈 백성을 구제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물을 파고 병자를 치료하고 배곯는 이들에게 양식을 내놓았다. 1907년, 그는 지금 충무교가 있는 판데목 자리에 나무다리를 놓았다. 이 다리는 몇 년을 못 견디고 떠내려갔다. 김삼주는 그때마다 다시 나무다리를 놓았으나 훼손되기를 반복했다.


김삼주는 큰 돈을 내어 1915년 다시 다리를 놓는다. 이번엔 튼실한 돌다리였다. 쓸모없게 된 옛 성터를 헐어 그 석재로 무지개다리를 놓았다. 적과 싸우기 위한 성벽이 백성이 건너는 다리가 됐다. 일제는 조선인이 놓은 이 다리를 못마땅해 했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허물려 하고 새로 해저터널을 팠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이 다리와 다리를 놓은 김삼주에게 감복하였다. 현대식으로 새로 증축된 오늘날 충무교 앞에 김삼주의 은덕을 기리는 공덕비가 여럿 세워진 배경이다.


새로 세워진 다리 자리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운하가 파이기 전 판데목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 수천이 죽어나간 자리다. 한산대첩서 깨어진 왜 수군 한 뭉텅이가 판데목을 지나 도망치려다 썰물에 오도가도 못하게 됐다. 왜군이 배에서 내려 물길을 내려고 했으나 일부만 살아가고 갇힌 이들은 죄다 죽었다. 판데목은 왜병이 모래를 판 곳이란 뜻이다. 따로 붙은 송장목이란 이름이 너무나 섬뜩하여 마음 좋은 사람들은 판데목이라 에둘러 부른 것이다. 일제가 판데목 위에 다리를 놓는 대신 그 밑을 지나는 해저터널을 뚫은 데는 저들 조상이 수두룩하니 죽어나간 터를 밟고 지날 수가 없다는 마음도 있었을 테다.


판데목을 한자로 쓰면 착량이고, 착량 북편에 선 사당이 착량묘다. 착량묘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신 유서 깊은 곳이다. 착량묘에서 장군이 김삼주옹의 공이 깃든 충무교를 바라보고 섰다.


통영 제일 명소가 한산도와 칠천량 방면을 한꺼번에 내다보는 미륵산 정상이라면, 제이경은 충무교를 바라보는 착량묘의 시선이다. 통영이 내게 가치 있는 이유는 여기 여적 이것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산도 방면 산허리에 골프장을 내고 김삼주 공덕비를 길 가쟁이에 방치해둔 데다 기억해 마땅한 역사를 기억하는 이가 거의 없을 지라도 말이다.



2021. 10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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