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책을 소개합니다 2

루이스 멈퍼드, <루이스 멈퍼드 건축비평선>

by 김성호

없이 살던 대학시절 책장 하나를 통째로 팔아치운 일이 있었다. 오랫동안 사모은 아끼는 책이 수두룩했지만 애통한 마음으로 떠나보냈다. 언젠가는 피를 팔아 영화를 찍었다는 로베르토 로드리게즈처럼 자랑스런 역사가 되겠거니 기대했었다. 하지만 나는 서른이 훌쩍 넘도록 변변치 못한 글쟁이일 뿐이다.
정말 아까운 건 적어둔 글들이다. 그 많은 글 덕분에 책 단가보다 비싼 값에 팔렸다지만, 내게는 그 열배를 받았어도 부족한 것들이었다. 글을 쓰던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르므로 복원할 수조차 없는 귀한 생각들이 돈 몇백에 팔려나갔다.
이제 내가 가진 모든 책은 단 한 줄 메모 없이 깨끗하게 보관된다. 언제고 팔아치워도 그립지 않도록. 나 대신 가진 이가 제 것 삼지 못하도록.
한길사가 출판한 <루이스 멈퍼드 건축비평선>은 이 결심을 깨뜨리고 싶게 만든 첫번째 책이었다. 읽어가는 동안 수많은 영감들이 자유롭게 말을 건넸다. 실버타운 설현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미안하다, 선을 넘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어디로 튈지 몰라 나.
다시 돌아오자. 만약 이 책에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게 허용된다면 '비평이란 무엇인가'라 명명하고 싶다. 기본적으로 훌륭한 비평선일 뿐 아니라 비평의 본질을 꿰뚫어 좋은 비평의 덕목을 모조리 아우르는 보기 드문 책이기 때문이다.
대개 비평이란 개별 사안과 관련해 그 의미와 역할을 평가하는 작업이다. 이를 잘 들여다보면 비평가의 미적 교양, 인간적 직관, 사회적 가치, 윤리적 기준까지를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어떤 글보다도 비평가의 색채와 역량이 고스란히 녹아든다. 뛰어난 인간이라면 비평에 도전하고픈 유혹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좋은 비평이란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비평을 접하기 전까지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것이 있음을 알게 하는 것, 그리하여 대상이 세상과 작품을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이 비평의 역할이다. 이 책을 접한 지 7년이 흘렀지만 나는 이 책을 넘어서는 비평집을 단 한 권도 알지 못한다.
비평가로서 내 목표는 이 책을 넘는 비평집을 내는 것이다. 이미 상당히 탁월하다고 자부하지만, 멈퍼드가 먼저 도달한 경지에는 한참 못미쳐 있단 걸 안다. 하지만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으리란 것도 알지.
나같은 듣보잡도 우습게 봐 마땅한 저질 평론쟁이들이 득세한 이 세상에, 그래도 멈퍼드 같은 존재가 있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럼에 묵묵히 가보려 한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어떤지 궁금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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