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수많은 일을 했습니다. 대학시절 한 아르바이트만 수십이고 일하며 만난 사람이 수백을 훌쩍 넘깁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결국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란 마음가짐입니다.
경기장 매표소에 동전 수백개를 쏟아 붓고 일일이 세도록 했던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그는 늘 경기 시작이 임박했을 때 줄을 섰습니다. 그 시간엔 아무리 여유 있는 사람이라도 제가 선 줄이 줄어들지 않으면 십초에 한 번씩 목을 빼고서 험악한 표정을 짓게 마련입니다. 진상이라 불리던 그 아저씨는 그런 반응을 즐기는 듯했습니다. 정확히는 쩔쩔매는 직원과 뒤에 선 사람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욕설 같은 걸 말이죠. 그의 성격이 어찌나 고약하던지 매니저는 그가 보이기만 하면 줄 담당자를 저로 교체하고는 자리를 떴습니다.
어느 날인가, 유독 관중이 많았던 경기였습니다. 어김없이 그가 제 앞에 섰고 저는 오랫동안 담아두었던 말을 그에게 건넸습니다. 경기 끝나고 매표소 앞에서 기다려 달라고, 맥주 한 잔 꼭 대접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날 밤 저는 그가 동전을 가져올 때마다 얼마나 괴로운 마음이 되는지 털어놓았습니다. 이야기는 가난한 대학생의 고단함과 사업에 실패한 남자의 괴로움에 대한 것으로 옮겨갔고 스포츠와 정치를 거쳐 진탕 취한 사람들이 나눌법한 주제로 끝났습니다. 그날 그는 다시는 동전을 가져오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정말 약속을 지켰습니다.
항해사로 전 세계 오십여개의 항구를 들어갔습니다. 나랏법이 보호하지 않는 곳에서 온갖 일로 흠을 잡는 공무원들과 일부러 일을 늦추는 작업자들을 수도 없이 겪어내며 저는 옛일을 자주 떠올렸습니다. 일꾼 여럿을 이끌고 배에 올라 담배며 술이며 페인트며 하다못해 냉장고 안 김치까지 싹 털어가는 세관과 이민국 직원들을, 물정 모르는 선원이 찍은 사진을 문제 삼아 총까지 뽑아 들고 돈을 요구하는 경찰관을 앞에 두고서, 세상 쾌남인 척 헤이 마이프렌 어깨동무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저는 종종 더러운 놈들에게 인기가 좋다는 괴상한 칭찬을 받고는 했는데 그럴 때면 옛날에 겪은 그 진상 아저씨가 떠올랐습니다. 정말이지 결국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인 것입니다.
취재를 할 때도 그랬습니다. 세련되지 않은 언어로 억울함을 말하는 이들을, 권태로운 공무원이나 피곤에 찌든 형사들을 만날 때도 저는 그들이 저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로서 제가 해낸 좋은 것이 있다면 그 대부분이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고 믿습니다.
2022. 7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