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지 않고는 마주할 수 없는 것
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옛날 옛적에 불사의 능력을 가진 원숭이 왕이 있었다. 그는 당대의 기인 수보리 조사에게 온갖 도술을 배우고 기고만장해져서는 천상에 올라가 옥황상제에게까지 개겨댔다. 그러다가 제대로 걸려 혼쭐이 나니 그 유명한 석가여래의 손바닥 사건이다.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에서 생고생하는 원숭이 위에다가 여래는 산을 하나 들어서 살포시 얹어두었다. 그곳이 티벳 고원 어드메였고, 산 이름은 오행산이라 하였다. 그 산이 어찌나 무거웠던지 재주 많은 원숭이도 꼼짝없이 500년을 눌려서만 지냈다. 그런 그가 풀려난 건 현장이란 승려가 불경을 얻으러 인도로 가다가 티벳 어드메 외딴 산을 지나면서였다. 승려가 산에 붙은 부적을 떼자 원숭이는 그에게 멀리 물러나라 외친다. 그리고는 일격에 산을 박살내니 그때 날아간 덩어리가 저기 남방 끄트머리 교주땅에 떨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오늘날 대한항공이 자주 가서 아주 소한국을 만들어 놓은 다낭 도심 오행산이 마침 <서유기> 속 오행산과 이름이 같으니 어느 어리석은 자가 이 기회를 놓칠쏘냐. 미후왕이며 손오공이고 제천대성이자 투전승불이 된 원숭이왕을 눌러둔 바로 그 산이 베트남 다낭의 오행산이라고 나는 그냥 그렇게 믿기로 한다.
여기저기서 <서유기> 속 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 베트남이지만 오행산은 단연 특별한 곳이다. 산 전체가 대리석으로 빚어진 이 독특한 산에 손오공이 깔렸으리란 상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여정이 즐거워진다. 근두운으로 두 시간이면 갖다 올 여정을 현장은 굳이 걸어가야 한다고 말했다(실은 지 혼자 백마를 타고 오공, 팔계, 오정이만 걷게 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얻어낸 불경 그 자체보다, 마주한 고난을 당해내는 과정이 이들을 더 나은 무엇으로 만들어갔다. 수많은 실패와 괴로움, 극복하지 못한 상처들과 그럼에도 거듭되는 실수들을 묵묵히 감내하면서 이들은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간다. 여정의 끝에서 일행은 그 모두를 보듬는 보살과 여래의 뜻을 마주한다. 그 때의 감격은 이전의 고행이 없었다면 결코 얻지 못할 것이었다. 요컨대 <서유기>란 삶을 다해 겪어내야만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이야기한다. 설령 삼장을 통달한 현장 같은 현자일지라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원숭이일지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겪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내 비루한 삶 가운데 그래도 건질 만한 건 모두 이로부터 나왔기에 나는 오승은의 글이 참과 닿아 있다고 믿는다.
그러고보면 여행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헤매지 않고는, 고생하지 않고는, 실패하지 않고는 마주할 수 없는 감정이며 깨달음들이 흩뿌려져 있다. 나는 그 모두를 겪어낼 테다. 그저 흘려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현장과 오공이 그랬듯이 나의 배움은 제 때를 만나 진가를 발휘하리라. 여행을 하기 전과 한 후가 같다면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행이 못된다. 달라짐은 경험에서 비롯되고 경험이란 나아감에서 얻어진다. 그러니 나아가서 겪고 도전해야 한다. 이것이 내게 여행이 갖는 제일의 의미다.
이곳에서 나는 현장이 되어 나의 오정이와 팔계를 양쪽에 끼고 베트남을 종단한다. 때로는 그들을 멀찍이 떼어두고 때로는 불러다가 나의 여정을 윤택하게 한다. 그나저나 내가 찾을 경전은 어드메에 있나. 백팔요괴는 수시로 다가오고 말씀은 흐릿하기만 한데 마블산 대리석은 어찌나 미끄러운지 몇번쯤은 턱주가리가 깨질뻔도 하였다. 그때마다 팔계와 오정이가 나를 부축한다. 그러나 나는 <서유기>의 현장처럼 오공이만 바라본다. 대체 나의 오공이는 어느 산밑에 깔려 있으려나. 이 넓은 천하에 사귈 만한 인간은 드물고 내 짧은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기만 하는데.
2022. 9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