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km를 달려 찾은 장군의 무덤
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겨우 찾았다. 이틀 동안 100km를 훌쩍 넘게 달린 길이었다. 사이공에서도 방치된 거나 다름 없던 보 따인 가묘는 빈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입장료도 받지 않는 들판에 글씨 하나 보이지 않는 비석이 든 전각 하나가 달랑 섰고 그 앞에 부스러져가는 무덤이 놓여 있었다. 도시에선 누구도 그 이름을 알지 못했다. 제법 가까이 갔다 싶었지만 모두가 고개를 가로지었다. 이틀 째야 어렵사리 찾은 무덤엔 사람 하나 오가지 않았다. 무국공이란 칭호까지 붙은 그는 빠르게, 그리고 거의 완벽하게 잊혀지고 있었다.
보 따인은 베트남 중부 해안의 뀌년성과 생을 함께 했다. 뿌리 없는 응우옌군 중추로 활약하며 뀌년성 함락과 수성에 목숨을 바쳤다. 계절풍을 따라 진군한 뒤 다음 바람이 올 때까지 성을 지키는 게 주된 전략이었다. 훗날 레 반 주엣에게 인정 받은 명장 르 샤트도 이때 그에게 항복했다.
보 따인은 뀌년성을 2년 간 지켰다. 1800년과 1801년이었다. 그가 수성하는 동안 주군인 응우옌 푹 아인은 북진해 떠이썬의 수도 푸 쑤언을 함락시켰다. 이듬해 승룡까지 잃은 떠이썬은 그대로 패망하니 개국과 통일에 보 따인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그러나 그는 구원받지 못했다. 성을 둘러싼 건 떠이썬의 마지막 명장 쩐 꽝 디에우였다. 쟈롱의 군대는 포위를 뚫지 못한다며 성을 지원하지 않았다.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은 아닐까. 쟈롱은 훗날 많은 공신들에게 그러했듯 보 따인이 알아서 죽어주길 바랐는지 모르겠다. 베트남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가진 응우옌 왕국, 그곳에서도 제일가는 사내가 그렇게 죽어갔다.
보 따인은 선택했다. 적장에게 편지를 써 성과 저를 내놓겠다 약조했다. 그가 구하려 한 건 사병들의 생명이었다. 쩐 꽝 디에우는 약속했다. 대장 보 따인과 부장인 예부상서 응오 퉁 차오가 하루 상간에 자결했다. 보 따인은 화약 위에 앉아 부하에게 불을 붙이라고 명한다. 부하가 울며 거절하자 담배 한 까치를 피우다가는 그 담뱃불로 점화했다. 폭사. 불과 서른셋, 젊은 나이였다.
불타고 찢긴 그의 사체가 제대로 보전됐을 리 만무하나 쩐 꽝 디에우는 예로써 그를 수습했다. 이로 인해 보 따인의 무덤은 사이공과 그가 사망한 뀌년 땅에 각각 남겨졌다.
쩐 꽝 디에우는 성 안의 모든 이를 살려줬다. 모두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떠나고 남도록 했다. 떠이썬 패망 뒤 생포된 쩐 꽝 디에우는 쟈롱에게 이때 보인 자비를 언급했다. 그러나 먹힐 리 만무하다. 그는 처자식과 함께 참수됐다.
그의 무덤을 찾기 위해 며칠을 들여야만 했다. 구글 좌표 하나 구할 수 없어 묻고 또 묻고 헤매고 또 헤맸다. 사이공의 무덤 자리는 오토바이 주차장으로나 쓰이는 형편이고 사당이며 무덤도 초라하기 짝이 없다. 뀌년도 마찬가지다. 영어로 된 설명문 하나 없이 향 하나 제대로 꽂혀 있지 않았다. 술 한 잔 올리기 위해서 또 한참을 헤매야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있어 나는 그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길을 잃고 다시 찾기를 반복하는 동안 목적이며 마음가짐이 십수번씩 변했다. 그냥 휴양지로 넘어가 수영이나 하고 싶었다. 누구 말만따나 제 나라 사람들도 관심두지 않는 이가 아닌가. 단 이틀을 헤매는 동안 마음이 이토록 어지러운 것을 외딴 성에 갇혀 구원을 바랄 수 없게 된 심정은 대체 어떠했을까.
오가는 이 하나 없는 무덤 앞에서 꽃과 소주 한 병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간다. 술잔은 세 개, 하나는 보 따인의 것, 하나는 응오 퉁 차우의 것, 하나는 쩐 꽝 디에우의 것이다. 잔을 나누며 나는 내 마음대로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먹을 것 마실 물이 모두 동나도록 2년이나 갇혀 싸우는 동안 제가 버려졌단 걸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그는 배신하지도 항의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스스로를 죽여 더 많은 생명을 살리려 했다. 통상 전쟁은 사람을 죽이지만 보 따인은 성 안과 밖의 사람을 살렸다. 그들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이 또 자식을 낳아 그들을 살린 이가 누구인지를 말했을 것이다. 오늘의 베트남이 그를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 정신이 어딘가 살아 흐르리라고 나는 믿고 싶었다.
딴 건 모르겠고 그에게 누구보다 알코올냄새 그대로 꽂히는 코리안 희석주가 필요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많이 늦었다.
2022. 9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