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 서평
[김성호의 독서만세 146]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
선조 31년인 무술년 11월 19일 새벽, 남해와 하동 사이 노량 앞바다에서 전선 수백척이 불타는 처절한 전투가 펼쳐졌다. 정유재란의 끝에서 퇴각하려는 왜군과 이를 막는 조명 연합군의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임진년과 정유년 발발한 왜란의 마지막 접전이었다.
18일 늦은 밤부터 전개된 전투는 19일 깊은 새벽이 되어서야 승패가 갈렸다. 필사적인 왜 수군의 도주를 조명 연합군은 끝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왜 전선 200여 척이 침몰하거나 파손되고 100여 척이 나포됐다. 나머지 전선 수백척이 관음포로 필사의 탈주를 벌였다. 조선 수군 제독 이순신 장군이 그 뒤를 쫓다 가슴에 탄환을 맞고 끝내 숨졌다.
전투가 벌어진 음력 1598년 11월 19일은 양력으로 계산하면 12월 16일이다. 즉 오늘은 이순신 장군의 423번째 기일이다.
나는 이순신을 알지 못했다
한국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이순신 장군을 안다고 믿는다. 나도 그랬다. 이순신 장군이 누구인지 안다고 생각했다. 광화문 광장에 버티고 선 장군의 동상이 익숙해서, 학창시절 <이순신 전기>와 <난중일기>, <칼의 노래>를 읽은 일이 있어서, <불멸의 이순신> <명량> 같은 드라마와 영화를 봐서, 100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그 분의 얼굴을 흔하게 마주해서, 그밖에 수없이 많은 이유로 내가 이순신 장군을 안다고 생각했다.
과거시험장에서 낙마해 다리가 부러진 사건부터 한산도 대첩과 학익진, 고문과 백의종군, 명량대첩의 신화적 승리, 노량에서의 비극적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도 대략 안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는 머리말에서부터 내가 이순신 장군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책을 쓴 김종대 재판관은 글을 시작하며 "여론조사를 해보면 국민의 7할 가량이 우리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이순신을 꼽는다"며 "이순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정신으로 살았기에 존경하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벙어리가 된다"고 개탄을 금치 못한다. 고백하자면 바로 내가 그랬다.
반박하고 싶었다. 아니라고, 나는 그들과 달리 이순신 장군을 잘 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고 단숨에 마지막장까지 읽어 내렸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정말이지 이순신이라는 인간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항변하려던 마음은 금세 사라지고, 수긍하고 인정하는 마음만 남았다.
나는 이순신 장군을 역사 속 위인으로만 대했다. 전란의 시기를 살며 위기의 순간마다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구국의 영웅이라고 여겼다. 모두가 길이 없다고 믿을 때 나아가 승리를 구했고, 오직 충성으로 나라와 백성을 지킨 영웅이라고만 알았다. 그 사이에서 누락된 진실이 있었지만 굳이 돌아보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을 알지 못하는 그대에게
이순신 장군을 영웅으로만 바라보는 동안 누락된 진실,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 우리처럼 뼈와 살로 이뤄진 인간이었던 그가 어떻게 한반도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적 성취를 이뤘을까. 그 과정에서 만난 절망과 위난이 결코 가볍지 않았는데 말이다. 다른 많은 인간들처럼 불안과 고독, 두려움을 느꼈을 그다. 이순신은 그 모든 순간을 인간으로 마주하고 살아냄으로써 살아선 영웅, 죽어선 성웅이 되었다.
책의 훌륭한 점은 자칫 덮어놓고 넘어가기 쉬운 이 지점을 차근히 짚어낸다는 데 있다. 이순신의 성취를 이끈 선택과 그 선택 이면에 깔린 삶의 자세로부터 책을 읽는 이가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한다. 저 멀리 별처럼 아득한 이순신이 아닌, 고뇌하고 살아내는 이순신을 우리 앞에 옮겨다 놓는 것이다.
저자인 김종대 재판관은 이순신이 네 가지 가치 위에서 살아간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사랑과 정성, 정의와 자력이다. 그중에서도 앞의 두 덕목, 사랑과 정성이 이순신이란 인간이 누구인지를 말한다.
이순신은 나라를 사랑했다. 책임 있는 이들이 저 한 몸 살겠다며 진지며 병장기를 불태우고 도망칠 때, 목숨 걸고 나아가 바다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임진왜란이 어떤 전쟁인가. 양반은 군대에 가지 않고, 부유한 이들은 군포대납으로 군역을 대체하는 게 일반화된 세상이었다. 군의 체계가 바로 서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다.
군인들은 중앙 권력자에게 뇌물을 바쳐 자리를 얻었다. 부패가 성한 곳은 수탈도 심하게 마련이다. 군은 말단 병졸과 백성의 신뢰도 얻지 못했다. 더욱이 조선군은 전쟁경험도 없었다. 100년 이상 전란을 겪은 데다 조총 같은 신무기까지 장착한 일본군은 막강한 상대일 수밖에 없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경상좌병사 이각이 도망치고 관할이 맞닿은 경상우수사 원균이 전력 대부분을 스스로 없애버리고 물러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순신은 달랐다. 저 자신보다 나라를 우선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군 해체하라"는 어명에 "죽기로 싸우겠다"고 답했다
그가 가장 빛난 순간은 칠천량에서의 대패 뒤 조정에서 수군을 해체하고 육군에 편입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뒤가 아닐까 한다. 단 열두 척의 전선 밖에 남지 않은 수군 사령관이 "죽을힘을 다해 막아 싸우면 아직도 할 수 있다"고 역설하는 심정은 어떤 것인가.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뻗어줄 수 없는 바다 위에서 수백 척의 적선을 맞이해야 할 이순신 장군에겐 이미 죽고 사는 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책은 이순신 장군에게 중요한 것이 사랑이었다고 역설한다. 나라, 국토, 백성들을 적의 칼날 앞에서 지켜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말이다. 당장 제 목숨 하나를 지키는 데는 더 나았을 조정의 명령을 거부하고서 죽기로 나아가 싸우기를 선택한 것이 이순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방증한다.
그렇다고 의지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책의 제목에서에서 보듯, 이순신 장군은 늘 준비된 인물이었다. 전쟁을 하루 앞두고 거북선의 건조를 끝마친 것부터, 한산도에 본영을 두고 병력을 증강한 일, 성실히 정찰하고 전투마다 계략을 갖고 싸운 점 등에서 이순신의 준비성이 어떠했는지를 내다볼 수 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정성이 이 같은 대비로 나타났고, 조국의 바다에서 무패의 신화를 쓰게끔 했다.
책은 사랑과 정성으로 떳떳하게 산 이순신의 태도를 극찬한다. 구국제민과 선공후사의 정신에 따라 군자행을 걸은 그의 자세를 조목조목 짚어 평가한다. 그는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제 힘으로만 나아갔다. 비교적 늦은 과거급제와 변방을 떠도는 발령에도 비교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쓰인다면 죽을 힘을 다할 것이요, 쓰이지 않는다면 농부로 살아도 좋겠다는 자세가 삶 내내 두드러진다. 깊은 수양에서 얻은 철학대로 기꺼이 살아갔던 것이다.
그와 같은 자세로 살아간다면
책은 장군이 거둔 전공에 앞서 그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일깨우는 데 집중한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고, 작은 이익보다 옳음을 지향하는 대장부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영웅적 성과에 앞서 정성스런 인간이 있었다고 말이다.
그와 같은 시선에서 보면 또 존경할 만한 인간이 없지 않다. 개전 초기, 장수들 가운데서도 그런 이들이 있었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보았던 그림 '동래부순절도'에서 왜군에 포위당한 동래성 관아에 붉은 옷을 차려입은 장수가 있었다. 지금으로는 부산시장 격인 동래부사 송상현이라 했다.
문관이었던 그는 군 책임자인 경상좌병사 이각까지 도망치는 와중에도 성을 걸어잠그고 결사항전을 벌였다. 만 하루 동안 일본군을 잡아둔 송상현과 같은 이가 많았더라면 조선은 결코 그토록 참혹한 꼴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래부순절도 좌상귀엔 이각이 병졸을 데리고 내빼는 모습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학창시절 그 연유를 찾아보고 큰 충격을 받은 일이 떠오른다. 송상현은 그날 죽었으나 오백년을 더 살았다. 이각은 그날 살았으나 천고의 비겁자가 되었다. 그날 송상현의 마음가짐은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다른 이들이 얼마든지 나누어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누군가 내게 이순신을 아느냐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를 안다고 답하겠다. 이순신 장군은 내 나라와 백성을 사랑했고 모든 것을 정성으로 대했으며 오로지 정도만을 걸은 인물이다. 주어진 소임마다 선에 선을 다하고, 작은 이득보다 큰 뜻을 우선하며, 오로지 나의 힘으로 제 길을 걸은 이다. 책을 읽고 나니 그런 태도를 가진 이라면 누구나 이순신과 같아질 수 있단 걸 알겠다. 비로소 나는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게 되었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