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을 잃고 혼자 살아간 장수가 있었다
팔공산에서
공산전투는 통일신라 말기 한반도 다음 천 년의 명운을 걸고 부닥친 두 세력 간 싸움이다. 왕건의 고려와 견훤의 후백제로, 통일신라를 멸망시키고 올라오던 후백제군이 이를 막겠다 내려오던 고려군과 맞닥뜨렸다. 전장은 대구였고, 그중에서도 오늘의 팔공산인 공산이 주요 무대가 됐다.
북방에서 내려온 왕건의 기마부대는 먼저 도착해있던 지방군 및 신라의 잔여병력과 합류해 후백제군을 압박해간다. 동화사의 승병들과 서전을 치르고 거침없이 진군하나 후백제의 정예병에게 기습을 받고는 예기가 꺾인다. 이후 밀고 밀리는 싸움을 벌이다가는 평지에서 매복에 걸려 포위되기에 이른다. 전 군이 궤멸에 이르고 오로지 왕건 홀로 도주하니 공산자락에서 일만 인마가 숨지는 일대 혈전이 치러졌다 하겠다. 팔공산의 이름부터가 고려의 여덟 무장이 숨진 공산이란 뜻이니, 이 한 번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짐작할 만하다.
2022. 12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