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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결별한 사연

단상

by 김성호

작년엔 좀 많이 감사하자 싶어 감사를 주제로 글을 쓰는 모임에 가입하였다. 감사도 다른 많은 것과 다를 바가 없어서 계속 감사하다 보면 더 잘 감사하게 되지 않겠나 은근한 기대도 뒤따랐다.


그런데 웬걸, 잦은 감사는 내겐 좀 안 맞는 것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뭐랄까, 감사하는 마음이 끓어오르질 않는 게 문제였달까. 말로는 감사하다 하는데 마음이 뒤따르지 않으니 전보다 내가 훨씬 위선적인 인간이 된 것만 같았다. 오래 알고 지낸 녀석들은 너도 이제 늙어서 입에 발린 소리나 하느냐고, 오글거리니 이쯤에서 그만두라 쪼아대곤 하였다. 감사를 얻으려다 정직을 잃는 건 아닌가 하여 스스로도 묘하게 불안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장부가 칼을 뽑았는데 스리슬쩍 칼집이나 더듬을쏘냐. 덜 계면쩍게 모르는 이들에게 나의 거짓 감사를 몰아주기로 마음 먹는다. 자고로 정직이란 군자들에게나 미덕인 것이지 소인배들과 살 부비며 사는 세상에선 아니올시다가 아닌가. 우선 수고하세요, 많이 파세요, 즐거운 하루되시고, 뭐 이렇던 인삿말 라인업을 모두 고맙습니다로 교체하였다. 어차피 세상엔 감사를 모르는 감사가 넘쳐나는 것, 꼭 기준치 이상 감사가 차오를 때만 꺼내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결국 오늘에야 사달이 난 것인데, 나는 혼밥처 가운데 한 곳을 영영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왜 혼자 밥을 먹느냐며 잔소리부터 시작한 주인아줌마는 휴대폰을 열고서 제 딸 사진들을 보여주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요로코롬 예쁜데도 서른이 넘도록 남자를 데려오질 못한다고 하소연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터이지만 어차피 거짓감사나 일삼는 거 립서비스라도 해보기로 한다. 이모 닮아 이쁘고 성격까지 좋을텐데 걱정일랑 붙들어 매시라고, 요즘 세상에 서른하나면 한창 떡볶이 먹고 요구르트나 빨 때라고, 이 쯤 되면 걸어다니기만 해도 놈팽이들이 드글드글 붙을 거라고 뭐 그렇고 그런 말이나 건네보는 것이다. 국밥 공짜로 안 주는데 그런 말은 거두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테이블 위로는 모듬순대 한 접시가 툭 하니 떨어진다. 순간 내 편에서도 진솔한 감사가 톡 하고 터져나온다.


거기까지면 좋았을텐데 이 아줌마 정대만 저리가라다. 주변에 괜찮은 총각은 없느냐고 묻기에 어차피 서비스도 나왔겠다 쓸만한 놈들은 모두 다 끝사랑 진행 중이라 솔직하게 불어버린다. 두 개의 심장이라도 가졌는가, 아줌마가 바로 방향을 꺾어온다. 삼춘도 그러하냐기에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라고 답한다. 그러자 이 아줌마, 아이고 잘됐다고 두 손 모아 박수를 친다. 아예 잘 보라고 휴대폰까지 쥐어주니 겨우 반 먹은 국밥만 속절없이 식어간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아예 수저를 내려두고 사진첩을 넘겨보고 있다. 난감한 건 그뿐이 아니다. 사진을 자세히 뜯어보니 아무리 보아도 내 스타일은 아닌 것인데 아예 착석하여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이 아줌마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감도 잡히지가 않는다. 답답한지 어떠냐고 거듭 묻는 아줌마에게 나는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첨보는 놈한테 딸을 잇느냐고 탈압박을 시도한다. 그러자 이 아줌마 하는 말, 처음은 무슨 오늘 말을 걸기까지 열댓번은 보았단 것이다. 말하자면 요 몇달 내가 올 때마다 알아봤단 것인데 사람 없는 시간대에 매번 혼자 와서는 책 펴놓고 국밥에 소주까지 처묵하고 가는 것이 괴상하다 싶었단다. 그래도 늘 깍듯하게 고맙다 잘 먹었다 인사를 하고 가니 보기 드문 청년이다 말 걸기에 이르렀단 얘기다. 세상에 국밥집에 혼자 와서 소주 까고 책 읽는 놈만큼 괴상한 종자가 없을 것인데 장사를 그리 오래 하고도 그 사실을 모르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마침 전화가 걸려오고 나는 급한 일이라도 있는 척 황급히 일어선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이어서 하기로 하고.


여기까지가 종종 찾던 국밥집과 결별한 사정.



2023. 1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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