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키스마요> 서평
시인이 다른 분야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왕왕 본다. 한국에서 시를 팔아 밥벌이를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시인이 다른 직업을 갖는 건 사실 흔한 일이다. 국어교사며 기자며 카피라이터까지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시인은 그래도 나은 편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시인의 정체성을 갖고서 글과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는 이들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시인의 정체성을 창작하는 사람이라 하면 그와 관계되는 일로 성공한 이가 없지는 않다. 창작하는 일 가운데 상당히 많은 자본을 투입하는 영화계에도 시인 출신 감독이 안착한 사례가 있다. 처음은 <말죽거리 잔혹사> <쌍화점>으로 유명한 유하이고, 다음은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원태연이었다.
서사가 중요한 특성상 소설가에서 영화감독으로 전업한 사례는 많았으나 시인에서 영화감독으로의 전업은 지극히 이례적이라 더욱 주목받은 사례들이다. 놀랍게도 이들은 영화에서까지 제 재능을 드러내며 시인의 감각이 결코 낡은 것이 아님을 입증했다.
시인이 소설을 쓰는 경우는 아주 흔치는 않으나 제법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가운데 한 명이 된 한강은 1993년 시로 먼저 등단했다. <소나기>로 유명한 황순원과 중견작가 성석제 역시 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를 알고 보면 이들은 소설에서도 시에서 쓰이는 기법을 적극 사용하고 시적 감수성을 드러내길 꺼리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유명한 이들이 이 정도일 뿐 시인 출신으로 소설을 쓰는 이들은 제법 많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하소설을 세 편이나 남긴 작가 조정래는 '시는 응축하는 것, 소설은 전개하는 것'이란 말로 두 장르의 차이를 설명한 바 있다. 응축하는 글쓰기에 익숙한 언어를 애정하는 이들이 전개하는 글쓰기로 달성하고자 한 게 무엇일지 시인 출신의 소설가를 만날 때마다 나는 언제나 그것을 궁금해하였다.
응축하는 글쓰기가 소설로 나아갈 때
2021년 말 출간된 <키스마요>는 시인 김성대의 소설이다. 제29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설명을 먼저 붙이지 않는다면 기억하는 이 얼마 되지 않는 시인이지만 시를 애호하는 이들 사이에선 제법 주목받는 작가가 김성대다.
그가 특별히 관심을 받았던 건 현실세계 문제들을 가까이 두고 고민한 시 세계 덕분이기도 했다. 그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와 감정노동자, 경비노동자, 진주의료원 폐업반대 투쟁, 부동산 임차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어우르는 작품을 써왔다.
출간 이후 '난해하다'는 평가와 함께 당혹스러운 표정들과 마주한 <키스마요>는 색다른 시선에서 써내려간 소설이다. 소설은 크게 두 축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데 하나는 지구 전체를 뒤흔든 커다란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삶을 뒤흔든 애정의 문제이다.
나는 너를 잃은 상태다. 나는 애인인 너와 저녁을 먹고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으나 어느 순간 너는 빛처럼 사라진다. 나의 말은 너에게 닿지 못하고, 이후 나는 너와의 옛 일들을 떠올리며 너를 그리워한다.
지구의 종말마저 잊게 하는 이별
나가 너를 그리워할 때 세상에선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UFO가 나타나 인간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소행성이 다가와 달에 충돌한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미확인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인다. 바이러스는 인간에서 가축으로 옮겨가고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유기하고 돼지를 살처분한다. 희망 없는 삶 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사이비 종교에 빠져 엽기적 행각을 벌이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혼돈 가운데서도 오로지 자기의 문제에만 관심이 있다. 나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러하다. 소설 속 세상과 소설 밖 세상은 겹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 겹쳐져 있는 듯 보인다. 김성대는 저만의 언어로 거듭 그리움에 침잠하는 나와 모두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세상의 멸망을 묘사한다.
외계인과 바이러스, 인류의 혼돈과 애인의 상실이란 사건들로부터 독자가 기대하는 것을 소설은 얼마 내어주지 못한다. 소설은 처음부터 이야기를 펼쳐가며 그 서사에 독자의 관심을 잡아두는 것엔 관심이 없었던 듯 보인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인과는 얼마 그려지지 않고 지구를 뒤덮었던 위기도 피상적으로만 보여질 뿐이다. 그 사이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건 과거에 매달려 떠나간 애인을 그리워하는 나의 심경이다.
낯선 소설과 만나고자 한다면
나는 세계의 소란에는 놀라울 만큼 관심이 없다. 나에겐 너와의 헤어짐이 모든 것이다. 이미 이별했고 그 이별의 뒤를 쫓아 거듭 이별해가는 나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작가 김성대가 드러내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독자는 소설의 마지막장을 덮게 되기까지, 어쩌면 그 이후에도 그 의도를 고민하게 된다.
시인이 쓴 많은 소설에서 독자를 당혹케 하는 요소들, 요컨대 서사에 무관심하고 묘사가 지나치게 감상적인 대목은 <키스마요>에서도 여전하다. 그러나 때로는 이것이 시인이 쓰는 소설이 소설계에 여전히 유효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낯설고 추상적인 묘사가 그대로 주제와 맞닿을 때 독자들은 좀처럼 다른 소설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감상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퍼즐을 풀듯이, 때로는 있는 그대로 느끼며 이 소설과 마주한다.
때로 어느 이별은 인류의 종말보다도 큰 충격을 던지는 법이다. 따지고 보면 이별이나 종말이나 그리 다르지도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키스마요>를 지배하는 감상이 무력감이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결국 세상 모든 것은 변하고 끝나게 마련이며 우리는 그 끝들과 무참히 마주할 운명이지 않은가.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