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더 나은 글을

단상

by 김성호

책이 나왔다고 전했다. 몇주만에 대강 써두고도 마음에 안 들어서 오래 냅두었던 글이다. 곁에 두고 견주었던 글들은 너무 높고 멀어서 끝내 다다르질 못하였다. 가뜩이나 온갖 시시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굳이 내가 하나를 더할 필요가 있을까를 오래 고민하였다. 이따금은, 아니 그보단 자주 이보다는 나은 글을 써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괴롭히곤 하였다. 적어도 나 같이 까다로운 독자를 때려눕힐 수 있는 그런 글이어야 했다고, 나는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쓰는 동안 곁에 두고 오래 보았던 책이 있느냐 물었다. 처음 얼마는 조지 오웰이었다. 수필집 <나는 왜 쓰는가>에 묶인 글들 가운데는 제법 훌륭하다 부를 것이 몇 편 쯤 있었다. 다음 얼마는 볼테르였고, 그 다음은 피천득이었으며, 그 뒤로는 프란시스 베이컨과 법정, 김남조, 그리고 마루야마 겐지였다. 그들이 쓴 글을 읽은 뒤 다시 내가 써놓은 걸 보고 있자니 빌어먹을 이딴 걸 세상에 내놓겠다고?


소설은 슬럼프라 해도 좋았다. 사실 쉽게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추어 상들이나 깨부수면서 신춘문예를 노려보자고 처음엔 그런 생각이었던 것이다. 제법 그럴 듯도 했던 것이, 실명이든 필명이든 내는 족족 상금을 가져오니 신춘문예까지 당선되면 유명한 상에도 내보아야겠다고 그런 마음을 먹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첫 해 새봄엔 완전히 미끄러졌고 두 번째 해는 내지조차 못했다. 전혀 마음에 차지 않았다. 쓰면 쓸수록 실망스러워지니 인간을 뒤흔드는 작품을 낳는다는 건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가 말이다. 나는 대체 얼마나 문학을 우습게 보았던가.


대충 걸작을 발표하고 에세이는 그 뒤에 천천히 내면 되겠다 그딴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니 될 턱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쓰러지셨고 나는 통장 잔고를 가만히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제는 움직일 때가 된 것이다. 중환자실이었고 아버지가 살아서 나올 수 있을지를 확신하지 못한 채였다.


그간 써놓은 수십편의 글을 하나씩 살펴보다보니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그런 마음도 들었다. 쓸 때는 영 형편없다 느꼈었는데, 그건 기준이 너무 높아서는 아니었나. 그런 기준이라면 아무리 대단한 작가라도 쉽게는 넘어서지 못할 거라고 나는 우렁차게도 우겨댔던 것이다. 그 얼마 뒤 나는 글 몇편을 추려 눈 밝은 이에게 내보였다. 그로부터 또 며칠이 지나 나는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어떠했느냐 물었다. 그는 네가 쓴 걸 기준으로 말해주느냐고 되물었다. 뭔 소리냐 하니 시시했단 뜻이야 라고 하였다. 화륵 하고 달아올랐다. 나도 안다고, 그 말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나오는 말이라곤 그래도 의미는 있는 얘기야 니가 뭘 알겠냐, 뭐 그 비스무리한 거였다. 그날 밤엔 혼자 술을 많이 마셨다. 어쩌겠나. 아직 그 정도밖엔 되지 않는 것이다.


오랫동안 착잡한 마음이었는데 공정은 착착 진행됐다. 그리고 오늘에야 들었다. 평생 딱 서너번만 엄지를 세워보였던 이 자식이 서점 문이 열기도 전에 광화문으로 달려가서는 책들을 사왔다는 걸, 내가 어디 말하기도 전에 제 주변에 이야기를 쫙 풀어놨다는 것도 말이다. 다른 친구가 그의 집에 놀러갔다가 그에게 들었다는 말을 전해왔다. 그 자식 첫 책 초판이잖아, 세상에 이게 한 권 뿐이라면 저것보단 훨씬 더 값나가겠지. 그때 그가 가리켰던 게 무엇인지를 듣고서 나는 내가 꽤 멋진 일을 해냈음을 알았다.


나는 혀가 잔뜩 풀린채로 이와 비스무리한 이야기를 나의 애정하는 동기이자 친구에게 전해주었다. 우리는 틀림없이 더 나은 책을 써낼 수가 있다고. 반드시 더 나은 글을 써야만 하겠다고.



2023. 1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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