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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부끄러움을 생각한다

단상

by 김성호

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한다. 한자로 적자면 恥(치) 자가 될 것인데, 이는 귀 이 자 곁에 마음 심 자를 적어 붙여둔 것이다. 귀와 마음을 연결하여 부끄러움을 뜻한 이유가 무엇인지 짚어보려니 역시 부끄러움은 두꺼운 낯짝보다는 그 곁에 달린 귀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은 아닌가,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된다.


창피할 때면 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눈이며 입은 의지로 다스릴 수 있지만 귀만큼은 마음껏 다루기가 어렵다. 듣고 싶지 않은 말도 듣도록 하고 내고 싶지 않은 감정도 내보이는 게 귀라는 기관이다. 그렇다면 귀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가까이 다가서 있는 건 아닌지.


공자께선 유독 부끄러움을 중요한 잣대로 다루셨다. 위정 편에서 세상을 법이 아닌 덕으로 다스려야 하는 이유를 말하며 정책과 형벌은 불이익을 모면하려는 인간을 만들지만 덕과 예는 수치를 알게 한다고 가르치는 식이다. 이해와 득실로는 인간을 진정으로 바꿔낼 수 없다는 데 그는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마음을 둔 것이 인간 내면의 잣대, 그중에서도 부끄러움이었다. 생각하는 대로 살려는 자, 스스로를 보석처럼 아끼려는 자는 부끄러움을 피하려 들 게 틀림없다고, 그는 흔들림없이 믿었던 것이다.


그는 태백 편에서도 다음과 같이 이른다. 나라에 도가 있는데 가난하고 천하게 산다면 부끄러운 일이고,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부유하고 귀하게 사는 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라고. 스스로를 단련하고 목숨 바쳐 도를 이뤄야 한다는 그의 각오는 부귀와 빈천이란 삶의 양식에 이르기까지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이다. 어디 나라에만 해당하는 말이겠나. 도에서 벗어난 것은 모두 부끄러움이며, 도가 없는 곳에 몸을 두는 것도 부끄러움이다. 적어도 유가의 제자라면 그저 살기 위하여서, 혹은 더 잘 살기 위하여 도를 꺾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는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가르침이었던가.


먹고 사는 일의 무거움을 공자라고 몰랐을 리 없다. 일생에 걸쳐 소인배를 그저 소인배로 놓아두지 않았고, 그가 누구이든 대인배며 군자며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문을 닫아걸지 않았던 그다. 그러나 소인배와 대인배, 염치없는 자와 군자의 차이는 분명한 것이다. 이해와 득실과 먹고 사는 일과 위태로움을 피하는 일에만 연연하는 자를 차마 도에 맞다고는 하지 못하는 일이다. 공자에게 그것은 수치스런 삶이었고, 공자를 따르는 이에게도 부끄러운 길일 밖에 없다. 성인은 커녕, 군자는 커녕, 대장부는 커녕, 그들이 닦은 길 위에 남몰래 서 있는 나같은 찌끄래기조차도 되는대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공자부터가 제 온 삶으로써 할 수 있음을 입증했으니 말이다.


나는 책에서 자주 부끄럽다 하였는데, 그건 부끄러울만 하여서였다. 나는 읽을 만한 책을 읽어낼수록 내가 대장부며 군자며 성인의 길을 걷지 못할 것을 알았다. 부끄러움을 감당하며 소인배들 사이를 헤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어떻게든 이룰만한 도가 있으리라고, 나는 그렇게 믿어왔던 것이다.


스스로 공자의 제자라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그의 가르침 몇쯤은 가슴에 새겨두고 산다.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지 아니하며, 작은 도라도 마주하면 마지막 재능까지 펼쳐내고, 오로지 더 나은 덕을 기르는 일만 생각하는 것, 자주 실패하여 부끄러웠으나 가끔은 성공하여 행복하기도 하였다고, 나는 그저 그렇게 여길 뿐이다.


모처럼 나온 건대입구엔 교보문고 매장이 있고, 호학하는 이들 머무는 인문매대 꽂이에 내 책 두 권이 나란히 섰다. 그 곁에는 공자의 말씀이 있는 것인데, 그 곁에 나의 글이 놓인 것이 나는 아주 자랑스럽다.



2023. 2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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