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K Jun 24. 2019

06 디자인 취준생이 서류전형에서 실패했을 때 하는 일

제품 디자인 취업 도전기 06

 취업준비생들은 각 전형에서 몇 전 몇 패 했는지를 스포츠 경기처럼 측정한다. 나는 19년 상반기에 서류 단계에서 8전 5패 3 승했다. 이 정도면 작게 넣은 편이다. 디자인 중에서 제품 디자인을 채용하는 ux ui 직무와 제품 디자인을 채용하는 패키지 디자인 직무에만 지원했다. UXUI 직무는 손을 놓은 지 오래라 서류에서 다 떨어졌다. 어쨌든 이번에는 진로를 좀 정해놓은 뒤라 하반기까지 많이 방황하지는 않겠지만,  대학을 갓 졸업하고 서류에서 줄줄이 낙방했을 때는 꽤 방황했다. 그때 했던 행동들을 정리해보았다.


01 주변 사람들에게 내 자소서를 보여준다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하지만 떨어진 자소서를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피드백을 받으려 했다. 다른 학과 친구, 학과 선배나 동기들, 취업한 선배들, 취업 카페 등등. 인터넷에 떠도는 합격 자소서를 읽는 일이 더 의미 있겠지만 디자인 직무에서 합격 자소서는 잘 떠돌아다니지 않는다. 합격한 선배에게 첨삭을 부탁한 적도 있었다. 그 선배는 지금은 이름도 생각이 안 날 만큼 먼 사이의 선배였다. 필요할 때만 찾은 꼴이라 너무 죄송했지만 그럼에도 후배를 위해 정성스럽게 첨삭해주신 것이 감사했다. 그리고도 떨어지면 이 모든 감사함과 여러 사람의 고생이 헛수고가 되는 느낌에 더 허탈하다.


+ 내가 다닌 디자인과는 선후배 관계가 끈끈하지 않아서 오히려 후배가 찾아오면 반기는 분위기의 학과였다. 선배들이 후배들을 끌어주고 싶어 하지만 개인주의 분위기가 강해서 선배를 찾는 후배들이 별로 없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여러 선배들을 찾아갈 기회는 오히려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로 찾아가면 아무래도 ‘필요할 때만 찾는다’는 부정적인 느낌에 쉽게 연락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타 학과 출신의 친구들에게 자소서를 보여줬던 이유는 인사팀이 디자인 실무자가 아닐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자소서는 그 회사 인사팀 신입들이 검토한다’ 던가 ‘직무 관계없이 인사팀에서 자소서를 추린다’는 풍문이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그래서 내 자소서를 디자인을 모르는 사람들이 읽기 때문에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생각에 디자인을 모르는 친구들에게 자소서를 보여줬다. 그리고 나면 정말 자소서가 난도질당한다. 너무 전문적인 용어만 있다는 평(사실 그렇게 전문적인 단어들도 아닌데도)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평, 디자인이 뭐냐는 되물음 등 받아들이기 힘든 피드백이 많았다. 이런 피드백은 결론적으로 그냥 글을 제대로 못써서 나온 피드백 들일뿐인데 ‘저 사람들이 디자인을 잘 몰라서 저러는 것이다’라는 합리화에 더 큰 힘을 실어줄 뿐이었다.


02 취업컨설팅을 찾아간다.


했던 일중에 제일 돈 아깝고 시간아까운 일이었다. 고3 시절 담임선생님과 입시 상담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담임선생님이 미술 입시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바람에 선생님에게 미술 입시에 대해 거꾸로 내가 가르쳐 줬었다. 이때의 담임선생님처럼 취업컨설팅은 상담 내내 본인들은 디자인 직무는 잘 모른다는 전제를 깔고 컨설팅을 진행한다. “다른 직무는 이러니까 그쪽도 이러면 될걸요” 그들의 컨설팅 내용을 전체적으로 요약하자면 이 한마디다. 잘 모르는데 일단 돈 주고 온 고객님이시니 아는 척은 해야 한다는 심정인 듯했다. 영양가가 정말 없다. 그런데 내 세대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체로 사설업체의 서비스를 통해 진로를 결정해왔고 ‘합격자’의 신분이 되어왔다. 그래서 직무를 막론하고 이런 업체들에 대한 유혹은 매우 크다. 그러나 사교육이 ’ 공부할 자격’을 얻어다 주는 데에는 탁월할지언정 ‘돈을 벌 자격’을 얻어다 주는 데에는 아직은 정교하지 못한 것 같다.


03 디자인 포트폴리오 학원을 찾아간다 


취업컨설팅에서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생각하여 디자인 취업학원이자 디자인 포트폴리오 학원을 찾아갔다. 사실 디자이너가 이런 학원을 찾아가는 일이 바람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 포장도 스스로 못하는 디자이너가 회사에서 다른 사람을 포장하는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리 없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숨겼었다. 이 때는 UX UI 디자이너로의 길을 포기하면서 브랜딩으로 진로를 바꾸려 했다. 결과적으로 상담을 한차례 받고 현실 자각 타임을 좀 가진 후에 등록은 안 했다. 얻은 건 있었다.  상담해준 디자이너에게 내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고 그로부터 읽은 혐오의 눈길이다. 그도 티는 안 내려했지만 ‘어후 정신없어’라는 감탄사는 못 숨겼다. 이 상담 이후에 갖고 있던 포트폴리오는 없는 셈 치고 모든 작업을 다시 할 수 있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다 보면 내 작업에만 빠져 객관성을 잃기 되는데 그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포트폴리오를 정리해주는 학원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작업물을 도와주는 학원에 한 달 다녔다. 여러 명이서 한 팀을 짜고 하나의 제품을 디자인하는 실무중심 학원이었다. 여기서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셈 치자 싶어서 대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제품 디자인 프로세스나 아이디에이션 방법 등을 얻는데 제법 도움이 되었다. 더 정확하게는 디자이너들을 설득하는 방식을 알게 되었다. 디자인 프로세스는 디자이너들에게 말고는 별 설득력이 없다. 외부에서 볼 때는 장수 채우기 일 뿐이다. 어쨌든 여기서 디자이너를 어떻게 설득시켜 내 포트폴리오를 디자이너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게 하는지에 대한 감을 잡긴 했다. 걸출한 프로젝트를 가져가리라 기대했지만 그 정도 프로젝트를 하려면 몇 달 더 다녀야 한다는 상담을 듣고 그만두었다. 더 다니지 않고도 한 달간 배운 그 프로세스를 적용시켜 제작한 프로젝트로 국제 디자인 어워드를 몇 건 수상했으니 잘 한 선택이었다.

+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다.

 디자이너만 ‘디자인은 프로세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회사에 연구 결과물을 디자인 어워드에 내보겠다 했을 때 그들로 부터 그만한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었기 때문이다. 진짜로 ‘디자인은 프로세스’가 맞는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일단 느낌은 디자이너만 열심히 외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04 디자인 어워드에 도전한다

사실 디자이너들은 디자인 어워드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느낀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레드닷 어워드 연간 북을 보면 수준 이하의 수장작들도 많다. 그리고 비핸스나 드리블 등 글로벌 포트폴리오 사이트 들에서 돈을 내지 않고도 인정받는 길이 열려있기 때문에 더더욱 꼭 타야 하나 싶은 상들이다. 그러나 신입 디자이너를 뽑고자 하는 회사 임원들은 증명된 실적을 원하는 것 같다. 갓 대학을 졸업한 디자이너의 실적이란 어딘가의 협회장님이 사인하신 상장 정도. 스타트업을 해서 매출을 얼마를 올렸다 하는 것은 증명할 길이 없고, 내 포트폴리오가 다른 사람보다 나은 포트폴리오라는 것도 명백하지 않다. 그러나 상장은 확실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대학생들이 이 어워드에 작품을 출품한다.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는 디자인 취업준비생에게 '토익 만점' 같은 스펙이 돼버렸다. 한마디로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안 되는 그런 스펙이다.

 그런데 이 디자인 어워드는 출품비가 작게는 30만 원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1차 심사에 통과하면, 2 차심사 시에 또 돈을 내야 한다. 그러면 학생작의 경우는 100만 원 정도, 일반인 작의 경우는 2-300만 원 정도의 돈이 든다. 그러고도 안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보통은 매년 1회만 심사가 진행되는데 출품 시기는 3월(IDEA), 4월(REDDOT), 10월(IF)이다. 발표는 9월부터 12월 사이에 주로 난다. 그렇다면 적어도 대학교 3학년 때 작품을 3/4/10 월에 제출하여야 4학년이 되어 상반기 입사지원 서류에 쓸 수 있다. 대학교 3학년 3,4월에 가지고 있는 작품 중에 쓸만한 게 나오기는 사실 어렵다. 그리고 졸업자의 경우는 학생 시절 작업한 작업물이라면 몰라도 졸업 후의 개인 작품들을 제출하려면 프로들과 함께 경쟁해야 한다. 그럼에도 일반부문과 학생부문 수상명에 차이가 없어 똑같이 취급될 수도 있다.

 이렇듯 취업준비생 신분에서 타기 어려운 상인데, 갖고 있는 사람은 많다. 그래서 '토익 만점'같은 스펙인 것이다. 나는 서류에서 떨어진 후에 이런 어워드 실적을 계속 채워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그리고 마치 어워드를 타면 뭔가 다른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더 나은 길이나 보장된 뭔가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처럼 느껴진다. 괜히 상 몇개 탔다고 내 콧대만 높아진 기분이 들었다.


이전 05화 05 제품 디자인과 자소서와 포트폴리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