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디자인 취업 도전기 07
장점과 단점 그리고 1분 자기소개. 면접 중에 가장 뻘쭘하고 어색한 시간을 만들어내는 질문이다. 특히 1분 자기소개는 외워서 가져가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면접관이 대충 듣는다. 아예 안 듣거나. 임팩트가 없어서 그럴 확률이 높다. 그런데 사실 디자이너가 자기 작품을 빼고 자기소개를 하는데 임팩트가 있어봤자 얼마나 있을까 싶긴 하다. 어쨌든 면접에 있어서는 몇 번 황당한 경험을 했는데 아직도 내가 틀린 건지 그들이 틀린 건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면접 중에 일어났던 애매한 상황들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모 회사의 UX직무에 지원했을 때였다. 면접에서 장점이 뭐냐 묻기에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하는데 기민하다 했다. 물론 당시에는 면접을 몇 번 본 적이 없었기에 상당히 뻔하고 매력 없는 대답이었긴 하다. 그런데 돌아온 질문이 머리를 휙 하고 때렸다. ' 디자인과를 나왔는데 왜 디자인 실력이 장점이 아니에요?' 디자이너 면접에서 내 장점이 디자인 실력이라 말하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디자인은 당연히 깔고 가는데, 그 와중에 잘하는 게 뭐냐를 물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봤던 직무가 애초에 디자이너만 가는 직무가 아니었던 것 같다. 여러 학문 베이스의 사람들이 모여 UX 기획을 하는 팀이고, 디자인학과 출신은 그곳에서 시각화 작업에 특화해서 일을 하는 곳이 아니었을까 유추할 뿐이다. (그때부터 UX라는 것에 대해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
어쨌든 장점이 뭐냐는 질문에 대답하려면 질문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부터 해야 하는 것 같다. 뻔한 해결책이지만 확실한 해결책이다. 그 팀에서 필요한 인물이 어떤 인물일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 팀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정말 알기 어렵지만 알아야 잘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스케치를 잘한다던가, 디자인 툴을 잘 다룬다던가, 손이 빠르다던가. 디자이너의 특성과 맞는 내 장점들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요즘은 장점을 물으면 이렇게 되도록 구체적으로 답하려 한다. 어쨌든 실무 입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말해줘야 한다. 실무를 하다 온 사람들이 신입 공채에서 경쟁자들이 되어가고 있으니 더욱 그래야만 하지 싶다.
단점이 뭐냐는 질문은 모든 취준생들이 골머리를 썩는다. 장점만 어필해도 모자를 면접에서 단점을 말해야 하다니. 누군가는 단점을 장점으로 포장하면 너무 약삭빨라 보이기 때문에 하지 말라 한다. 또 누군가는 단점을 솔직히 말하되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꼭 후술 하라 한다. 그래서 이 질문을 들었을 때 그냥 꼼꼼하지 못하다 솔직히 말했다. 시간을 잘 못 지킨다고 솔직히 말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 극복 방안이 얼마나 확실하든 매력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단점이 너무 치명적이어서다. 생활습관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점들은 특별히 대단한 솔루션들로 극복했다기보다 그냥 혼나면서 고쳐나갔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지만 취준생은 고쳐쓸 수 있나 보다. 포트폴리오의 오타 때문에, 면접시간에 지각해서, 면접에 준비해야 할 사항을 못 챙겨서 탈락의 고배를 몇 번 마시면 금방 고쳐지는 습관들이었다. 나의 단점 때문에 타인이 피해를 봤다던가 하는 상황이 벌어졌었다면 역시나 고쳐진다. 그래도 어쨌든 면접에서 그냥 구체적인 솔루션들로 고쳐나갔다 대답하려 일련의 솔루션들을 준비해놓기는 했다.
포트폴리오 PT를 거창하게 하고 들은 질문이다. 실무 디자이너가 이런 질문을 하고는 결론적으로 그 면접에서 떨어뜨렸다. 이 질문을 들었을 때는 소위 말하는 '현타'가 왔다. 실무 디자이너가 본인 일을 별거 없는 일이라 느끼는데, 실기 면접은 도대체 왜 보는지, 게다가 3차 면접씩이나 보면서 사람을 검증하려 하는지 모르겠었다. 별거 없는 직무면 별일 없이 사람을 뽑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 그래도 취준생은 을이니까 그 실무자가 별거 없다 생각하는 본인 일을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 포장하여 대답했다. 그런데 뭐 이미 현직자 입장에서 하잘은 일인데 지원자가 아무리 포장 한다한들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직무에 비해 내 포트폴리오가 별로라는 의미였다면 받아들일 만하다. 그런데 직무가 별론데 괜찮겠냐니. 면접과 자소서를 위해 그 회사에 대해 공부하며 괜찮은 회사라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 한순간에 '이 회사 정말 별로다'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더 큰 문제는 이미 그 면접이 내 포트폴리오와 이력서 검증이 끝난 후에 진행된 면접이었다는 점이다. 본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애초에 면접 전에 떨어뜨리는 게 서로 시간낭비 없이 끝날 일이었다. 굳이 면접까지 끌고 와서 '우리는 당신이 할만한 일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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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취준생에게 차라리 고마운 회사는 애초에 맞지 않는 지원자를 서류와 포트폴리오 단계에서 떨어뜨려주는 회사다. 면접 단계의 탈락은 정말로 취준생의 정신력을 갉아먹는다. 몇 날 며칠 밤을 잘못 대답한 내 답변으로 이불을 차고 스스로를 원망하게 된다. 그리고 내 대답이 틀린 게 아님에도 스스로가 틀렸다 생각하게 된다. 이런 일 때문에 면접 컨설팅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때 가장 도움이 됐던 피드백은 '당신은 틀린 게 아닙니다. 당신의 대답이 다 맞는 말인데, 회사의 방식과 맞지 않았을 뿐입니다'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