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이민 그리고 역이민...

K선배는 마음의 자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by Stephano Song

NO 해피엔딩

“캐나다 리치몬드에사는 K선배님 그는 27년 전, 더 큰 세상을 꿈꾸며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랐고 27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 비행기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이번엔 고향으로 가는 비행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여정의 끝은 우리가 생각하는 해피엔딩은 아니었습니다.”


*** 1997년 IMF금융위기를 거친 대한민국은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습니다.열심히 일해도 집한칸 마련하기도 어려웠고 미래가 보이지 않은 시간들이였습니다. K선배는 그때 결심했습니다. 헬조선을 떠나야겠다고 우리 아이들에게 만큼은 더 나은 세상을 보여주고싶었습니다. 불한했던 이민의결정 하지만 모두가 새로운시작에 대한 기대와 상상으로 캐나다까지 13시간이 1시간 30분 처럼 빨리 지나 갔었던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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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인테리어보조 밤에는 컨비니언스 헬퍼로 투잡을 뛰었고 아내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하루종일서서 일하는 힘든 하루하루였지만 다행히 아이들이 현지에서 잘적응하며 자유롭게 커가는 것을 보는 낙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고…이민 10년이 지나자, 그들의 삶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작은 컨비니언스를 인수했고 하우스도 마련했고, 아이들은 다행히 모두 대학에 갔습니다.
‘이민, 참 잘 왔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 그리고 이민 20년째 어느 날,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부가 함께한 골프였고 나는 그때 밝고 유독 말수가 적었던 영철선배를 스승과 제자 사이로 처음 만났습니다. 그는 ‘난 운동치라서 골프 잘할수 있을까요?라고 수줍어 하셨던 아내분과 함께 지금은 열정골퍼로 골프시즌이면 일주일에 한두번 이상은 필드로 나가십니다.

그는 이야기 합니다 송프로 고마워. 골프는 내게 두번째 청춘을 준 희망이야.’라고 말입니다.

영철선배의 캐나다 생활은 그렇게 조금씩 ‘삶의 즐거움’으로 채워졌습니다.


역이민의 꿈

*** 65세. 머나먼 타국에서 그는 시니어란 이름표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이중국적을

취득했고 경기도 고향에 작은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귀향을 결정 했습니다.

‘이제 남은 생은 고향에서 보내자’는 또하나의 꿈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텃밭을 가꾸며 아침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마당에 나섰습니다.
닭이 울고, 고향 친구들이 놀러오고, 모든게 완벽해 보였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잘돌아왔지>…’ 그는 언젠가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오랜 꿈을 이루었습니다.


***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했습니다.

동창 모임은 자식자랑과 정치 이야기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는 점점 자신을

잃어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마음의 자유로움마저 문이 닫치고 있었습니다.

또한 병원비와 생활비는 예상보다 컸고, 의료보험이 있어도 지출은 적지 않았습니다.
골프 한번 치려면 최소한 20만원 부부 동반라운드는 정말 쉽지않았습니다.
결국 그의 골프채는 창고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고향이 이렇게 낯설 줄은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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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역이민

*** 1년도 되지 않아, 그는 다시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번엔 아내와 단둘이...

그가 캐나다로 돌아온후 오랜만에 같이 라운드를 하면서 영철선배의 역이민 결정과

또 다시 역이민을 할수밖에 없었던 긴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은 아직도 눈치를 보고 남을 의식하며 살수밖에 없는 나라더군요. 무엇보다

내마음의 자유를 다시 찾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역시 아내도 같은 생각이였다고 하더군요.

저역시 은퇴후엔 한국에서의 생활을 꿈꾸고 있었는데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18홀의

마지막 퍼팅을 끝내며 나는 묵묵히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습니다.


마음의 자유

*** 영철선배의 인생3막은 결국 마음의 자유였습니다.

고향을 떠나 낮설고 물설은 타국땅에서의 생활은 매일매일 새로운 적응의 시간들 이였습니다.

많은 이민자들은 이곳의 생활에서 살만하고 아이들이 다 자라 떠나고나면 고향으로의 귀향을

꿈 꿉니다. 저 역시 언젠가 같은 길위에 서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생각 대로만 되지는 않습니다.

한국으로 역이민 어떤 분은 ‘YES’, 또 어떤 분은 ‘NO’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인생3막은 어떤 꿈을 꾸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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