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오가지만, 머무르지 않는 시간
어느 주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카페 한복판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물방울이 송글 맺힌 차가운 커피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커피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옆 테이블의 웃음소리와 음료를 제조하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이곳의 온도는 충분히 뜨거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대화가 예고 없이 수그러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이 멎었고, 그 짧은 공백 사이로 묘한 이질감이 스며들었다.
누구 하나 먼저 입을 떼지 않는 그 찰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주머니로 손을 옮겼다. 방금 전까지 서로를 향하던 시선은 매끄러운 액정 화면 위로 조용히 떨어졌다.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올리는 반복적인 움직임, 가끔 울리는 진동 소리만이 그 공백을 대신 채우는 듯했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공간에 앉아 시간을 나누고 있었지만, 우리 사이를 잠시나마 오가던 대화는 그 자리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카페에서도, 점심시간의 식당에서도 사람들은 마주 앉아 있지만 말을 많이 나누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말은 오가지만, 대화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예전에는 서로의 하루가 자연스럽게 화제가 되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같은 질문들이 대화의 시작이었다. 질문은 상대의 얼굴을 향했고, 대답은 그 얼굴에 머물렀다. 상대의 표정과 목소리에 잠시라도 시선이 머무르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오가는 말들은 대부분 짧고 가볍다. 음식에 대한 감상, 날씨,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자극적인 사건들. 말은 끊기지 않지만 좀처럼 이어지지도 않는다. 문장은 짧아졌고 반응은 즉각적이지만 마음속에 남지 않는다. 웃음은 금세 휘발되고, 이야기의 방향은 깊은 곳으로 내려가지 못한 채 수면 위만 맴돈다. 대화는 분명 흐르고 있지만, 그 흐름 안에 몸을 맡기고 오래 머무는 사람은 드물다.
내용이 빠진 대화는 점점 형태만 남긴다. 침묵이 어색해 던지는 말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 문장들. 질문은 줄어들고 문장의 끝은 자연스럽게 마침표로 닫힌다. 물음표가 사라진 자리에서는 더 이상 상대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기분이나 생각을 굳이 알아야 할 필요도, 그에 맞춰 말을 고를 이유도 사라진다. 이제 대화는 관계를 확장하기보다, 이 관계가 아직 유지되고 있다는 표시처럼 기능할 뿐이다. 말하지 않아도 하루는 무리 없이 지나가고, 침묵은 더 이상 불편함이 아니다. 우리는 점점 상대의 눈을 마주하는 피로함보다 각자의 화면 속으로 내려가는 안락함을 선택한다.
그렇게 대화는 아주 서서히 사람을 떠난다. 말은 오가지만 기억에 남지 않고, 반응은 빠르지만 깊어지지 않는다. 대화는 연결이라기보다 ‘통과’에 가까워진다. 이 자리에서도, 저 자리에서도 비슷한 문장이 반복되고, 상대가 바뀌어도 말의 모양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잠시 들렀다가 필요한 만큼만 소모되고 지나가는 상태. 우리는 여전히 말을 하고 있지만, 정작 마음을 담은 대화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어쩌면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더 자극적인 이야기와 빠른 정보에 매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대화의 뒷덜미를 다시 붙잡으려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할까. 핸드폰을 덮고 상대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며, 정말로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는 듯 물음표 하나를 던지는 일. 대화가 완전히 현관문을 나서기 전, 옆에 앉은 친구에게 아주 오랜만에 진심이 담긴 질문 하나를 건네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