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이 쉬워진 시대에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마치 나를 오래 기다린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문이 열렸고, 나는 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층수가 하나씩 줄어드는 걸 멍하니 바라보며 집으로 가는 경로를 계산해 본다. 아직 집 근처에도 못 갔는데, 체감상 이미 약속을 서너 번은 치른 듯했다.
1층에 도착해 터벅터벅 입구를 향해 걸어간다. 건물 회전문, 역사 유리문, 개찰구, 스크린 도어, 지하철 문, 공동현관 비밀번호, 그리고 마지막 현관문까지. 나는 '오늘의 문 열기 퀘스트'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오늘 내가 돌린 손잡이는 현관문 밖에 없는 듯한데, 정작 지나온 문은 이렇게나 많다니.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내가 문을 통과했다는 사실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집에 들어와 보니 노트북 비밀번호, 휴대폰 안면 인식 등 수많은 잠금화면이 또 다른 종류의 디지털 문처럼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문들을 퀘스트처럼 여는 생활을 해온 걸까.
예전의 문은 느리고, 소심하고, 조금은 고집스러운 존재였다. 열쇠를 꺼내 홈을 찾고, 차가운 금속을 손끝으로 확인하며 ‘찰칵’ 소리가 들릴 때까지 돌려야만 열렸다. 문을 여는 일 안에는 분명한 감각과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문은 지나치게 영리하다. 나를 알아보고는 스스로 잠그고 열리며 주변 위험을 살핀다. 안전을 지킨다는 명목 아래, 문은 어느새 ‘결정을 내리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아직도 가끔 헷갈린다. 문이 나를 위해 열리는 건지, 내가 문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건지. 편리해질수록 문의 개수가 많아지는 건 덤이다.
사람 사이의 문도 달라졌다. 예전엔 배달 기사님과 눈을 맞추며 짧은 안부를 나눴지만, 지금은 “문 앞에 두고 가세요. 벨 X 노크 X”라는 문장이 관계의 기본값이 되었다. 지하철에서 스치던 작은 접촉과 호흡조차 서로 피해 걷는다. 얼굴을 맞대는 순간은 줄어들었고, 대신 보이지 않는 거리감만 더 선명해졌다. 사람과의 물리적 거리가 이전보다 더 멀어진 걸까, 아니면 원래 이 정도의 간격이 우리에게 더 편했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문과 마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사실만큼은 또렷했다.
그래서일까. 유독 한 종류의 문만은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않는다. 매뉴얼도 없고, 기준도 없고, 어떤 기술도 통하지 않는 문. 바로 마음의 문이다. 어떤 날은 그 앞에서 한참을 맴돌 뿐이고, 어떤 날은 열릴 듯하다가도 무게에 눌려 조용히 닫힌다. 문이 아무리 영리해져도, 이 문 앞에서만큼은 인간이 끝내 구형 모델처럼 서성인다. 어쩌면 마음의 문은 ‘여는 행위’가 아니라, 그 앞에 머무르는 시간을 통해서만 조금씩 움직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루 동안 수많은 문을 지나왔지만, 정작 나를 붙잡은 것은 단 하나의 문이었다. 빠르게 열리고 닫히는 문들 사이에서 마음의 문만은 느리고, 고집스럽고, 인간적인 속도로 반응한다. 모든 문이 너무 쉽게 열리는 시대에, 유일하게 쉽게 열리지 않는 문이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면서도 묘하게 위안을 준다. 한 번에 열리길 바라면서도, 그 문만큼은 나의 노력으로 열리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마음으로 오늘도 마음의 문 앞에 잠시 서성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