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_#13. 번호표의 기묘한 안도감

불릴 순서를 기다리며

by 골골


띵동—. “213번 손님,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카페 안에 직원의 목소리가 울리자, 구석에서 휴대폰을 보던 학생이 일어난다. 그는 컵을 받아 들고 별다른 표정 없이 문을 나선다. 그가 빠져나간 자리엔 금세 다른 사람이 앉는다. 전광판의 숫자가 바뀌고, 공간은 다시 고요해진다. 멍하니 진동 벨을 쥔 사람, 숫자를 몇 번이나 확인하는 사람, 이어폰을 낀 채 고개를 숙인 사람들. 번호가 불리고, 자리가 비고, 다시 채워지는 장면이 반복된다. 이윽고 내 번호가 불린다. “감사합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커피를 받아 든다. 특별할 것 없는, 아주 익숙한 순간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꽤 많은 곳에서 번호로 불린다.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도, 은행 창구 앞에서도, 식당 웨이팅에서도 그렇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부르기엔 번호만큼 간단한 방법은 없다. 그렇게 번호를 부여받은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 머문다. 먼저 들어가겠다는 말도,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그저 자신의 번호가 불리기를 기다린다. 번호 하나만으로 이 많은 사람들이 아무 말 없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만히 보고 있으면 조금 신기해진다.


이 기다림이 유난히 평온한 이유는 꽤나 분명하다. 각자의 번호가 이미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불릴 거라는 확신, 그리고 그 순서가 뒤바뀌지 않으리라는 믿음. 아직 오지 않은 순간이 이미 예약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로, 이 공간은 이상할 만큼 차분해진다. 우리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각자의 번호를 가만히 쥔 채 불릴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나 역시 번호를 쥐고 앉아 있으면 묘하게 안도된다. 정확한 시간도 확답도 없지만, 이 기다림이 헛되지 않으리라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가라앉는다. 확실한 미래가 주어질 때, 기다림은 의외로 견딜 만한 것이 된다.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일상의 기다림을 유난히 괴롭게 느끼는 건, 어쩌면 손에 쥔 번호표가 없기 때문 아닐까. 내 노력이 언제 불릴지, 이 시간이 어디쯤 와 있는지 알려주는 숫자 하나만 있어도, 기다림은 지금보다 덜 불안해질 텐데 싶다.


커피를 테이크아웃한 줄 알았더니, 잡념이 서비스로 무료 추가되었나 보다. 음료보다 생각을 먼저 한 모금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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