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시작하기 전에 삶을 미루는 사람
해야 한다.
안 한다.
알고 있다.
그래도 안 한다.
알람이 울리고, 내가 일어나기까지 30분.
세탁기 버튼은 1초면 눌린다.
나는 그 1초를 누르기 위해 15분을 맴돈다.
결국 미루다 헹굼과 탈수를 한 번 더 돌리고 나서야 건조대를 펼친다.
샤워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도 욕실 문 앞에서 10분.
그렇게 나는 삶을 시작하기 전에 늘 삶을 미룬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세상에서 ‘그냥’이 제일 어려웠다.
누워서 숙제를 하기까지의 과정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재생한 뒤에야 몸을 일으켰고, 외출하는 날엔 집을 나서 지인을 만나기까지의 장면을 전부 시뮬레이션한 뒤에야 침대에서 벗어났다. 시작까지의 동선은 언제나 불필요하게 길었다. 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하루를, 미리 다 살아본 사람처럼 지쳐 있었다.
의지가 약한 건지, 점화가 느린 건지,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까 봐 시작을 미루는 건지.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해야 한다’는 마음이 ‘하자’로 번역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남들은 곧잘 몸을 움직인다는데, 나는 생각을 한 번 하고, 생각 끝에 결심을 한 번 더 세운다. 두 번은 마음을 먹어야 겨우 움직인다. 인생이 자꾸 로딩에 걸린다. 오죽하면 지인들이 묻는다. “그렇게 귀찮아서 숨은 어떻게 쉬냐”라고.
아이러니는 그다음이다. 막상 시작하면,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외출을 그렇게 귀찮아하면서도 일단 걷기 시작하면 몇 시간을 걷고, 노트북을 열기까지 오만 창의적인 핑계를 대면서도 막상 메모장을 켜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확실히 가스레인지형 인간은 아니다. 버튼을 누르면 곧장 타오르는 사람이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숯불에 가깝다. 불이 붙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붙고 나면 오래간다. 급하게 타오르지 않는 대신, 쉽게 식지도 않는다.
그러니 이 귀차니즘을 게으름이라 부르는 대신, 예열이라 부르면 어떨까.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오래가기 위해 느린 것이라면.
오늘도 한참을 미뤘다.
그래도 결국 시작했다.
여전히 느리다.
그래도 멈춘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