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_#21. 결정장애

오늘도 고르지 못한 저녁 메뉴

by 골골


나는 매일 식사 때가 되면 무섭다.

오늘은 무엇을 먹어야 할까. 먹고 싶은 게 없는 날은 내겐 재앙이나 다름없다.


나는 메뉴를 고르는 데 평균 40분 이상 걸린다. 배달된 음식을 먹는 데는 10분, 계산은 고작 30초. 고민이 식사보다 길다. 인생의 축소판인가 싶어 괜히 씁쓸해진다.


배달 앱을 켜면 탐정의 눈으로 리뷰를 훑는다. 별점 4.9면 “광고인가?” 싶고, 4.0이면 “이건 모험인가” 싶다. 사진을 확대해 음식 상태를 확인하고, 쿠폰과 배달비, 예상 시간을 따지다가 “식어서 왔어요”라는 리뷰 한 줄에 마음이 식는다. 그렇게 배달 앱을 떠돈 지 어엿 30분이 지나면, 나는 결국 컵라면을 꺼내 물을 끓인다. 선택은 길었지만 결론은 너무나 소박했다.


카페에서도 비슷하다. “주문 도와드릴까요?”라는 직원의 말이 꼭 내 차례를 부르는 판결문처럼 들린다.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다가도 당이 필요할 것 같고, 그러다 또 유당불내증이 떠오른다. 내 위장은 늘 치열한 회의 중이다. 결국 늘 먹던 것을 주문하며 "새로운 걸 시킬 걸 그랬나" 하는 미련을 덤으로 챙긴다.


샴푸 하나 고르는데도 화학자가 된다. 두피진정 vs볼륨강화. 나는 진정이 필요한 사람인가, 볼륨이 필요한 사람인가. 결국 행사 상품을 집으면서도 이 선택이 내 두피의 운명을 바꾸는 건 아닐지 괜히 심각해진다.


OTT는 말할 것도 없다. 30분 동안 썸네일을 넘기다 보면 이미 체력이 방전된다. 예고편까지 다 보고 나면 묘하게 질린다. 주인공의 서사를 다 이해한 기분이라 본편을 틀 힘은 없다. 새로운 선택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다시 보기 에는 책임이 없기에, 나는 결국 이미 다섯 번은 본 영화를 틀어놓고 '안전한 지루함'을 택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뭘 그렇게 고민해. 그냥 해보고 별로면 그만이지."

그게 어떻게 되는 거지? 아무거나 고르는 순간,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내 것인데. 혹시 맛없으면? 재미없으면? 시간 낭비면? 내 하루의 기분이 거기서 갈리면? 나는 후회를 몹시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무난함에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그 무난함에 질려버리는 이상한 가슴앓이.


어쩌면 내가 결정을 유예하는 이유는 선택의 결과에 지나치게 몰입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선택하지 않으면 실패도 유예된다. 가능성은 지워지지 않은 채 남고, 나는 여전히 여러 삶의 후보자로 머물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한참 스크롤을 내리다 아무것도 고르지 않은 채 화면을 끈다. 배달 대신 남는 건 공복과 묘한 안도감이다.


인생의 큰 선택들도 이와 닮아 있었다. 전공을 고를 때도, 퇴사를 고민할 때도 나는 엑셀 파일을 만들듯 머릿속에 장단점을 나열했다. 결정장애라기보다는 과잉 시뮬레이션에 가까운, 아직 오지 않은 불행까지 미리 걱정하는 성실한 예민함.


저녁 7시. 오늘도 나는 메뉴를 고르지 못하고 있다. 배는 고프고, 인생은 길다. 또 늘 먹던 걸 먹겠지. 다음엔 진짜 새로운 걸 먹어야지.


아, 물론 30분의 고민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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