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지 않기 위해, 설명 가능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는 어쩌면 관객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거대한 연극놀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전시하는 시대다. 그럴수록 공유하고 싶지 않은 점들이 늘어가고 그걸 숨기기 위해 애쓰곤 한다. 이 연극의 목적은 화려한 연기가 아니다.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을 적절히 방어하는 것. 그 두 가지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해 우리는 온종일 안간힘을 쓴다. 배려와 눈치, 그 모호한 경계 어딘가에서 갈팡질팡하며 말이다.
그래서일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감정의 얼룩까지 들켜버릴까 봐 우리는 점점 더 정교한 가면을 찾게 된다. 회사에서, 모임에서, 때로는 가장 가까운 이들 앞에서조차 ‘괜찮은 나’를 연기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혀간다.
유독 그런 날이 있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특별한 불행이 닥친 것도 아닌데, 그저 웃고 싶지 않은 날. 무표정이라는 가장 솔직한 상태로 그대로 머물고 싶은 날 말이다. 하지만 사회라는 무대에서 무표정은 종종 오해를 산다. 그런 나를 마주한 사람들은 묻는다.
“오늘 무슨 일 있어?”, “어디 아파?”
분명 악의 없는 다정함일 것이다. 하지만 그 질문이 반복될수록 묘한 부채감이 밀려온다. 마땅히 해야 할 숙제를 끝내지 못한 아이처럼 괜히 불편해진다. 그래서 그 감정을 지워보려 “아니에요, 조금 피곤한가 봐요.”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서둘러 웃음을 만들어 보인다. 내 웃음을 보고 잠깐 스쳐 지나가는 상대의 안도감에, 나 역시 사회의 기대에 부응한 것 같아 안심이 되곤 한다. 이제야 이 장면에 맞는 표정이 된 것 같아서.
그렇게 우리는 설명하지 않기 위해 설명 가능한 표정을 짓고,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을 반복한다. 그 과정이 반복되고, 점점 더 익숙해지며 내가 맡은 배역에 몰입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게 연기인지, 원래 내 모습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연스레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오늘도 나는 무대 위로 오른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타인과 나 사이의 공기가 조금 더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억지 미소로 화답하지 않아도 괜찮은 너그러움. 연극이 끝나고 분장을 지우고 집으로 가는 길에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로움. 가면을 벗고도 안전할 수 있는 그런 자연스러움 정도랄까. 소박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소망을 품고 오늘도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