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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Feb 10. 2022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지만

가난이 무서운 건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일을 해야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사회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그리고 착취와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게끔 도움을 받을 권리.


동남아시아 최빈국 라오스에서도 이러한 아동의 권리는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권리이고 나라와 어른들의 의무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권리나 의무는, 가난 앞에서는 무용지물인 듯하다.


장기화된 코로나19는 안 그래도 어려운 라오스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주었다.

어떤 이는 말한다.


"원래 못 사는 나라라서 별로 표시도 나지 않네"


그렇지 않다. 사회주의 라오스에서 경제적 타격으로 어렵다 할지라도 정부나 누구의 탓을 쉽사리 하기란 쉽지 않다. 

라오스에서 생활해본 사람이라면 라오스 사람들의 조심성 또는 소극적인 태도에 대해 알고 있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지만



가난 앞에서 모든 권리와 의무. 그리고 책임이 무너지는 듯하다.


학교를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무방비로 사회에 노출되고,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모르지만 가정의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생활전선에 뛰어들기도 한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학교 대신 물을 얻기 위해 먼길을 떠나는 '빈곤 포르노'영상은 흔하디 흔한 사회단체의 모금 수단이다. 


여기 라오스에서도 생계활동에 뛰어든 아이들의 모습은 굳이 '빈곤 포르노'가 아니더라도 쉽사리 볼 수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아프리카의 상황과는 다르게 '빈곤 포르노'의 소재로는 덜 쓰인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누가 봐도 10살도 안된 아이로 보이지만 물건을 팔기 위해 다가서고, 이를 거절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이들에게 이러한 모습은 '가난한' 또는 '돈을 필요한' 사람들, 가족,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활동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외국인들이나, 조금의 연민 또는 안타까움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아이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고, '돈을 벌었다'는 안도감을 주기 위해 물건을 사주는 것. 누군가는 이러한 행동조차도 계속적으로 아이들이 생계전선에 뛰어들게 만드는 악순환의 원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짐은 누가 덜어줄 수 있고, 어떻게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할 수 없다.

혼자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 방법이 생각나지도 않는다.

어쩌면,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생각했다가도 '라오스의 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안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나 역시도, 이미 이런 풍경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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