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목길 Mar 15. 2021

라오스, 산을 여행하다

산을 오른 후의 기쁨. 그것은 순간일 뿐이다. 그래도, 또 오른다.

어머니의 강 메콩강의 나라 라오스.     

아버지는 그러면 산(?) ^^;    


라오스에서 이미 2좌(?) 등반을 완료한 나는 오늘 1좌의 산을 더 추가하고자 여행길을 나섰다.


루앙프라방 시내에 있는 등반시간 20여분이 걸리는 푸시산,
그리고 등반이라 하기엔 뭐하지만 팍세지역의 푸살라오 대불상이 있는 곳을 직접 20분여간 올라갔으니 나에겐 등반이었다.     

오늘은, 비엔티안 시내에서 약 30-40분 거리에 있는 ‘푸파낭’을 라오스에서 3번째로 여행하는 산으로 정했다.

            

아침 일찍 가야 한다길래, 새벽 5시에 눈을 떴지만, 그놈의 ‘5분만’ 때문에 정작 출발은 6시 30분이 되어서야 향할 수 있었다.

    

등반을 하는 동안 해가 뜨면, 더운 날씨 때문에 힘드니, 일찍 출발하라는 현지 친구의 조언이 있었기에 조금은 걱정을 하며 ‘안 하는 거보단 하는 게 낫지’라는 마음으로 움직였다.    


아침 7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라 그런지, 도로가에는 빠르게 움직이는 차량들 보다는 조깅을 하는 사람들, 사이클을 즐기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라오스 비엔티안에서는 해마다 몇 차례의 마라톤이 열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리고 사이클을 즐기는 사람들도 몇 해 전부터 부쩍 많아졌다.     


              

사이클을 즐기는 사람들과 길가에 일광욕을 즐기는 개들을 마주치는 것을 지나고 나면, Wealth coffee 가 보인다. 푸파낭은 이 길 뒤편으로 걸어 올라가면 나오게 된다.  

   

다행히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 뜨거운 햇빛에 대한 걱정은 덜게 되었다.     

산으로 가는 길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입구에 있는 현지인에게 길을 물었다.  

  

- 이쪽 길이 산으로 가는 길이 맞아?

- 응, 맞아.

- 산을 오르는데 얼마나 걸려?    


여기서 이 녀석이 살짝 나의 존심을 터치한다.    


그건 네가 얼마나 잘 오르냐에 따라 다른데... 나는 한 시간이면 갔다 와.    

 

오케이. 한 시간이라.

마라톤 대회를 자주 나갔던 경험이 있는지, 마라톤 참가 유니폼을 입고 있던 이 녀석은, 제법 날쌔고 건강하게 보였다.


처음에 얼마나 힘든지를 알아보기 위해 물어보았던 의도와는 달리, 이제는 이 녀석보다 더 빨라야지 하는 목적이 생겨버렸다.

        



산을 오르기 전 스트레칭과 몸을 풀라는 의미인지, 양옆의 대나무 숲에서 삼림욕을 잠시 즐겨본다.     



 

사실 이곳은 산을 오르는 트래킹 외에도, 캠핑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캠핑을 하루 15만 낍으로 텐트를 대여할 수 있고, 바비큐를 원하면 별도로 비용을 더 지불하면 된다고 한다.

어제는 프랑스인이 왔었다고 하며, 다른 국적의 외국인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탁 트인 장소에서 캠핑. 언젠가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


오늘은 산을 오르기 위해 왔으므로, 캠핑장 구경은 잠시 하고 안으로 안으로~       



             

첫 번째 시련 : 굳게 닫힌 문, 그리고 소떼의 시선    


산으로 오르는 길 곳곳에 hiking 표지판이 잘 표시되어 있어 산으로 가는 길은 찾기가 쉽다.


캠핑장을 지나, 허름한 흔들 나무다리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는 길이 나올 것 같은데...


단단히 잠긴 문 뒤편의 소떼가 있다. 문이 잠겨있다.


혹시나, 영화 속 슈퍼파워처럼 내가 살짝 흔들면 문이 부서지거나 열릴까 싶어 살짝 건드려보지만, 문은 단단히 잠겨있다.

멀찌감치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소떼들을 보고 있자니 처량해지는 것 같아, 커피나 마시고 돌아가야겠다 포기하며 돌아오는 길,     



입구에서 인사했던 현지인을 만났다.    

 

- 산으로 가는 길, 문이 닫혀있어서 못가

- 아냐 아냐 갈 수 있어. 같이 가자. 따라와  

  

닫힌 문을 어떻게 연단 말인가. 반신반의하며 이 녀석을 따라간다.     


이런! 닫힌 문 바로 옆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사다리가 있었다.


여기뿐만 아니라 곳곳에 이런 문들이!    

 

 


이제는 산을 오른다. 산을 오를 수밖에 없다.

소 똥을 따라가는 소 똥길, 산으로 오르는 길. 3좌 등반. 어쩌면 라오스에서 제대로 된 첫 번째 ‘산 등반’    



     



두 번째 시련  : 오르막 길만 있는 등반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도 안내판이 잘 되어 있다. 사람들이 다닌 길은 제법 표시가 나기도 했지만, 산으로 더 올라갈수록, 우거진 나무와 풀, 나뭇잎들 때문에 길이 헷갈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인지, 나무 곳곳에 비닐로 된 이정표 같은 것들이 묶여 있었다.

다행히 나는 이미 등반 경험이 있는 현지인 그룹을 따라 올라갔기에 길을 찾는 수고는 덜 수 있었다.     



두 번째 시련이라고 하기에는 핑계 같다. 산을 오르는 건 당연히 힘들다.


하지만 나의 경우 언제나 그렇듯, 산 중턱에 오르기 전에


‘왜 오르지, 산을 왜 올라 다시 내려올 거. 아 너무 힘들다’


라며 속으로 욕을 하는데, 이런 욕을 하면서 산 중턱에 오르게 되면, 그때에는 다시 내려가기도 애매한 위치이고, 오기가 생겨 끝까지 오르게 된다.     


푸파낭, 이 산은, 올라가는 길, 내리막길이나 평지가 없다. 그냥 계~~~ 속 오르막 길이다. 심지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계단이 없으므로, 돌과 나무뿌리, 나무줄기를 잡으면서 올라간다.

아침운동으론 제격이다!

나를 안내하는 현지인 그룹에 여성분들도 있고, 1시간 이내에 등반이 가능하다길래 괜찮겠다 싶었는데, 역시 산은 산이다!! 거기다 오르막 길만 있다니!        





얼마쯤 올랐을까,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도 잊은 채 산을 오르길 말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징 소리가 난다.


‘산속에 사원이 있나’


현지인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에너지가 없기에 속으로만 생각하기로 했다.     


정상에 다 왔어, 다 왔어, 얼른 와
이제 다 온 거야    


한국이나 라오스나, ‘거의 다 왔다, 거의 다했다’는 공통된 말인가 보다.

20분 전 산 중턱에서부터 앞장서서 가는 현지인 녀석이 외쳐대던 말이다.

    

얼마쯤 더 올랐을까 아까의 징 소리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산 중턱에 부처님 불상과 징, 그리고 벽에 기도가 적혀있었다. 짐작컨대, 여기까지 무사히 오르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것과 내려가는 길도 안전하도록 기도드리는 게 아닐까 싶다.


    

   


  

라오스에서 제대로인 산, 1좌 등반    


정말 거의 다 왔던 거였다. 산속의 불상을 지나 5분여를 더 걸었을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는 산 정상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르고 제일 먼저 본 것은, 평평한 정상에 앉아 컵라면 먹을 물을 끓이고 있는 현지인들!!  

  

‘그래 여기다! 라오스에서 라면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 열대기후의 더운 저 밑 땅바닥보다 시원한 산바람이 있는 이곳이 라면 먹기 좋은 명당이다!’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라면뿐이랴, 빵에다 각종 소스를 뿌려먹고, 나에게 커피를 권하는 사려 깊은 현지인들, 삶은 달걀 등등.

너무나 친근하게 느껴져서 자연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게 만든다.

    

 


10분여간 이야기했을까, 그런 뒤에 산 정상에 오른 기쁨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비엔티안에서 다소 떨어진 위치의 산이라 비엔티안 시내가 다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에겐 소중한 풍경이었다.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올랐으니.

이미 나를 가이드했던 그룹의 현지인 기록을 깨는 것은 무리라는 걸 느꼈다. 오르는데 40분이 걸렸으니 말이다.


녀석은 제법 날쌨다. 산을 뛰어오르기도 하고, 여유롭게 여성분들과 나를 염려해주며 가이드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진 것은 아니다. 내가 정식으로 도전하지 않았으니.

도전은 다음에 할 예정이다.    


   


   

세 번째 시련 : 하산    


산을 오르면서 오르막 길뿐이라는 걸 느꼈을 때부터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르막길이 가파르면, 내려올 땐 어떡하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가파른 길을 내려와야만! 했으니.    


허벅지와 종아리, 발바닥 텐션을 근래에 최고로 올렸던 80분이었던 것 같다.

끝없는 오르막길 40분 뒤, 끝없는 내리막길 40분으로 말이다.     

더군다나 나뭇잎들이 곳곳에 있어 미끄러움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그래도 심적으로 안정적이었던 것은, 현지인 그룹들과 함께 움직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선두에서 가이드한 녀석은, 역시 빨랐다.

내가 다음에 도전할 것을 의식했는지, 나에게 보란 듯이 내리막길에서 요리조리 뛰어내려 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나의 전력을 미리 보여줄 필요가 없다 생각하고, ‘일부러!’ 엉거주춤 천천히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분명히 내가 ‘의도한 엉거주춤’이었다.     


거의 다 하산했을 무렵, 땅바닥이 아닌, 앞을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별다른 이름은 없지만, 원숭이 머리 모양의 바위를 발견했다. 현지인들도 ‘몽키 헤드’라고 불렀다.     




     

여유로운 커피 한잔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는 길, 해가 뜨고 뜨거울 것이라 예상했던 날씨와는 달리,     

잘 돌아왔노라며 반겨주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산을 오를 때, 내려가면 ‘당장 에어컨 바람을 쐬야지’ 하던 생각과는 달리,    

커피숍에 가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그리고, 커피 한잔을 하며, 유리창이 없는 창문 밖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마친다... 가 아니라 잠시 쉰다. 이제 겨우 아침 10시일 뿐이니 말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현지인들이 산을 찾는 것 같았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등반길로 향하는 것을 보았으니 말이다.     

땀으로 흥건한 티셔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뜨거운 커피 한잔을 다 하기도 전에 뽀송뽀송해졌다.



현지인 친구가 나에게 말한다.  

  

괜찮았어? 다음 주에는 6시야!    



이 녀석...   

 

'산 타기 연습이라도 해야 하나.'

매거진의 이전글 3부 블루라군과 다시 찾을 방비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