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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Mar 22. 2021

딱지 대장, 구슬 지우개 쓰리꾼. 나는 1등이었다.

골목대장 나, 따먹기 1등의 타이틀

언제부턴가 어릴 적 친구를 만나면 서로 말하는 것이 있다.


야, 우리 어릴 적에 이랬는데,
 너 어릴 적 생각 안나냐?
우리 옛날에 이랬던 거 기억나?


좀 유치하게 느껴졌던 지난 몇 년 전과는 다르게, 요즈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 역시도 어릴 적 생각에 잠시 잠길 때도 있다.


그러다 문득, 지금 생각해보면 소심했었다 생각했던 내 어릴 적 모습의 기억에서,


조금 더 옛날로 들어가면,


나는 1등이었던 때가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골목대장


딱지 대장


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후로, 10명 남짓한 또래가 있던 나의 동네에서 나는 덩치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지만, 10명 중에서도 의사결정권에 있어 가장 영향력 있던 골목대장이었다.


특히나 그 의사결정권은 주먹 야구를 할 것인지, 전봇대를 두고 축구를 할 것인지, 아니면 부루마블 게임을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가장 크게 빛났다.


또, ‘어디에 모여서’ 놀 것인지, 곤충채집을 하러 '어디로' 갈지에 대해서도 지금 생각하면 큰 영향력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나의 골목대장질은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가소롭기 짝이 없었을 듯하다. 하지만, 그 당시 또래 10명은 고맙게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고, 나름 2-3년 동안은 무난하게 동네에서는 나름 영향력 있는 10살 미만의 의결권자로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싸움을 하거나 목소리를 크게 내거나 하지 않았음에도 어떻게 이런 중요한 직책(?)을 가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 이면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보유하고 있던 수만 장의 딱지와 수천 개의 구슬, 그리고 수백 개의 지우개가 굳이 싸움이나 다툼을 하지 않고서도 '골목대장'의 직책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만, 그 어릴 적 때조차도 '부'는 권력을 가지게 하는 '도구' 였던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수천 개의 구슬과, 수백 개의 구슬은 어린 시절 나의 개인 방도 없던 시절에 집을 더 비좁게 만들었고, 그런 와중에도 나의 보물 같던 구슬과 다 쓰지도 못할 지우개를 집안 한구석에 나의 보물인양 감춰두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들끼리의 비밀회동이 발생했다.


친구 녀석이 자기 엄마에게 딱지를 사기 위해 돈을 달라고 했는데, 친구 엄마는 쓰지도 못할 딱지를 왜 이렇게 많이 사냐고, 어제 샀지 않냐고 이야기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의 엄마는 우리 집에 딱지가 많으니 좀 나눠가지자 했단다.


수만 장이 있어서 OO는 좀 나눠줘도 알지 못해


그런데, 나의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OO이. 자기 딱지 다 알아요. 제가 그 딱지 받으면 저 맞아 죽어요.


나의 엄마는 억지로 웃으며, 아주머니와 인사하고 돌아섰다고... 후에 나에게 말했다.



그렇다고 내가 나쁜 어린이였던 것은 아니었다.

정정당당히 '룰'을 가지고 딱지 따먹기를 했고, 구슬치기를 했다.


그리고, 나보다 따먹기를 훨씬 못하는 친구에겐 배려를 보이거나, 따먹기의 이점을 주면서 게임을 하기도 했다.

결국엔 내가 다 가져왔지만 말이다.




어릴 적에는 '폐품'을 학교에 정기적으로 납부했다. 신문지나, 못쓰는 책, 잡지 등을 가져와 학교에 기부하는 것인데,

나는 언제나 걱정이 없었다.


잡지나 신문지, 책들을 접어 네모 딱지치기를 해서 집에 몇 자루, 아니 수십 자루의 딱지가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나의 딱지 중 몇 개의 딱지가 부러웠던지, 다른 동네에 사는 녀석이 나의 집 창고에 들어와 딱지를 훔쳐간 일이 있었다.

나는 길을 걸어가다가 딱지치기를 하고 있는 그 녀석을 보았고, 순간 나의 딱지 임을 알아채고, 그 녀석의 도둑질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소문이 좁은 동네에 퍼져, 그 이후로 누구도 나의 딱지를 훔쳐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나는 그 명석한 기억력과 재빠른 눈썰미를 공부에 사용하지 않았을까.




구슬이나 동그란 딱지, 그리고 지우개는 부피가 적어 그나마 엄마 몰래 나의 공간에 숨겨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이나 잡지 등을 접어 만든 네모난 딱지는 부피가 너무 커서 보관장소가 밖의 창고일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보관할 장소가 없어졌을 때, 어쩔 수 없이 친구와 동맹을 맺어 친구 집에 보관하게 된다.


그리고, 그 친구는 며칠 뒤 나에게 비보를 전한다.


딱지를 보관하던 자루 안에 쥐가 죽어서 딱지를 다 버릴 수밖에 없었어. 미안.



계약서나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동맹이 아니었기에, '미안' 이란 말로 모든 것은 그냥 종결이다.


나는 아마 이때부터 '동맹' 그리고 '나의 물건을 맡김'에 대해 신중해졌던 것 같다.




나는 딱지 치기 1등, 구슬 따먹기 1등, 지우개 따먹기 1등이었다.


학창 시절 8살 때 이미 대학시절까지 쓰고도 남을 지우개를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조금의 허풍을 더해서 내가 가진 지우개로 자동차 타이어도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아마도 그때에는 몰랐지만,

내가 가지고 있었던 딱지나 구슬, 지우개의 양보다

내가 친구들에게 딱지치기와 구슬, 지우개 따먹기로 1등인 것을 인정받고 있었다는 생각에 더 우쭐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친구들로부터 받은 인정과 관심이 지금의 내가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 이후로 1등이나 대장이란 타이틀을 가져본 기억이 없기에 가끔씩 그때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옛날 생각을 할 때면 그때의 친구들 모습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딱지와 구슬, 지우개 등이 없어졌지만, 나의 관심사는 다른 곳으로 옮겨갔기에 모든 것이 없어지고 수년이 지난 뒤에 엄마에게 물어보았고, 엄마도 얼버무리듯 모른다고 이야기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한 번씩 생각나서 물어본다는 게 계속 타이밍을 놓쳤던 것 같다.


또 잊어버리기 전에 오늘 엄마에게 전화해봐야겠다.


엄마 그때 지우개랑 딱지, 누구 줬나요?
아니면 팔았나요?



난 그렇게 내 유년시절의 딱지와 지우개의 부질없는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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