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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Mar 23. 2021

엄마, 잔소리 좀 주세요

이제는 그 잔소리 잘 받아줄 준비가 되었어. 우리 다시 잔소리 하자.

아이고, 이놈아 컴퓨터 좀 그만하고 운동을 좀 하던지,
나가서 친구를 만나던지 좀 그래라. 하루 종일 방에 앉아서 컴퓨터만 하고 있냐, 아이고~ 냄새야.


잔소리를 하면서도 과일과 간식을 가지고 나의 방을 찾아오는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퀴퀴한 냄새가 진짜 났었는지, 나지 않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방을 들어오는 가족 대부분이 내뱉은 말이니 냄새가 났었다고 생각하자. 과거의 일이니 쿨하게 인정한다.


아~ 엄마는, 알았어. 조금만 더하고,
나가면 뭐해, 나 급한 거 하고 있어.


마치 아이템 하나를 더 얻기 위해, 게임상의 캐릭터 레벨을 조금 더 올리기 위한 것이 게임을 하던 그 당시에는 나에게 있어 무엇보다 '급한 일'이었다. 하루 종일, 엄마를 속상하게만 했던 일들을 이해해달라는, 옹호해 달라는 말은 아니지만, 아마 게임에 빠져봤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집에서만, 아니 방에서만 생활하던 나의 모습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이 잔소리로 이어졌던 것이다.


나는 그저 철 없이 지내던 미성숙한 성인이었던 것이다.




아이고, 이놈아. 무슨 술이 이렇게 먹고 다니냐.
술이 무슨 보약이라고 이렇게 먹어, 몸이 이기지도 못하는데
왜 이렇게 살아!


......


나도 양심은 있고, 또 해장국은 얻어먹어야 하기에, 술을 먹은 다음날에는 조용히 있었다.

엄마가 한 번만 잔소리를 할 경우에 말이다.


그렇지만 엄마의 잔소리는 항상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기에, 잘한 것도 없었던 나는 항상 엄마의 잔소리를 되받아쳤고,

그 되받아침은 엄마의 신경을 긁는 것이 당연했기에 엄마의 '삐짐'과 나의 '자존심'의 대결로 이어졌다. 결국엔 오래지 않아 내가 미안함을 먼저 전하거나, 엄마의 음식으로 자연스럽게 풀렸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면, 엄마와의 입씨름은 내가 정식으로 성인으로 되고 나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사실, 입씨름이야 내 키가 150cm 이상이 되고나서부터 진행되었겠지만, 그때에는 공부하는 학생, 사춘기, 청소년이라는 방패막이 있었기에 엄마가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내가 좀 더 쉽게 짜증을 내고 화풀이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내가 조금이라도 맘이 풀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엄마가 먼저 다가왔고 말이다.




이렇게 이어져온 나쁜 습관들은 성인이 되고, 더 이상 방패막이 되지 못하는 시기와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는 더 대담한 행동들에 의해 엄마의 잔소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듯하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랬듯 '엄마의 자식'이라는 방패막으로 별 대수롭지 않게 잔소리를 되받아치고, 입씨름을 했다.

비록 내가 잘못한 일들이라도 말이다.


엄마의 잔소리는 한 번씩 말다툼의 스킬을 잊을 때쯤이면 주로 나의 원인 제공 때문에 일어났다. 너무나 많은 일들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나의 말투'와 '엄마를 대하는 태도' 였음은 분명히 기억이 난다. 특히나, '엄마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고 귀찮아하는 말투'는 항상 엄마와의 다툼의 주요 원인이었다.

간혹, 같은 잔소리를 두세 번 하는 때에는 엄마와 나의 다툼은 좀 더 높은 다툼의 레벨로 이어졌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엄마의 잔소리와 나의 입씨름이, 언제부터 멈췄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 태도와 행동이 개선되어 엄마와의 다툼이 없어진 것인가 하고, 잠시 생각해봤지만 친구나 형제, 심지어 초등학생 조카와의 입씨름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으니, 그 이유는 확실히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느라 이리저리 시간을 쓰고 1년여 가까운 시간을 방황하는 그 당시가 엄마의 잔소리가 없어졌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나는, 나름대로 자신도 있고, 하고 싶은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생각했지만 엄마의 눈에는 한없이 안쓰러운 자식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는 내가 집에서 눈치를 보고 있어 거실로 나오지 못하는 것인가 생각하시고, 내가 편안하게 식사하거나 집에서 활동하도록 일부러 밖으로 운동을 나가셨던 것 같다. 그때 당시의 엄마의 잦은 외출 이유가 지금에서야 떠오른다.

그 당시를 다시 생각해보면, 나에게 없었던 것은 '일자리, 금전'이 아니라,

나를 생각해주는 가족, 엄마의 시선을 바라보지 못한 '좁은 시야'였다.


그 당시 엄마의 잔소리가 왜 없었는지 그때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니, 아마 그전부터 엄마의 잔소리를 듣던 나는 아마도, 아마도...

'소중한 엄마 목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못한 지 10년이 넘은 것 같다. 나는 좀 더 왕성한 성인이 되었는데, 엄마에겐 이제 검은 머리가 보이지 않는다.

통화를 할 때면, 엄마는 그저 보고 싶다는 말과 당신의 자식들이 당신이 사시는 이유라고만 말씀하신다. 그리고 건강 챙기라고.


어쩌면 이제는 나이가 드셔서 잔소리할 힘이 부족하신 건지도 모르겠다.

목소리는 더 가늘어졌는데, 잔소리를 하더라도 듣는 내가 잘 들어드릴 수 있을까 걱정이다.


너무나 잔소리가 듣고 싶다. 엄마가 나에게 주셨던 잔소리가 그립다.

그리고 엄마랑 말다툼하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가 나의 장난에 삐지면 사르르 애교 떨며 달래주는 자식이 되고 싶다. 그리고, 서로 픽~ 웃고 말이다.

이제는 그럴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엄마, 잔소리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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