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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Mar 25. 2021

구구단은 도울뿐, 삶의 계산은 고스톱에서

민화투에서 고스톱까지, 스쳐만봐도 점수계산이 가능한 나


초등학교 2학년.

투명의자 5분.

그리고 손바닥 10대.


내가 구구단 9단을 선생님 앞에서 틀리지 않고 다 외운 날.

한 번에 통과하지 못해서 투명의자 5분의 체벌 후에도 구구단을 틀려 다시 손바닥 10대를 맞고 나서 통과한 날.


학교에서 체벌이 요즈음에는 큰 이슈사항이지만,

그 당시의 매와 체벌은, 적어도 내가 구구단을 외우는데 도움을 주긴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학창 시절 필요 이상으로 매와 체벌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면 좋은 기억은 아니었기에 '사랑의 매'는 더 이상 매와 체벌의 핑계가 된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 당시 초등학생 2학년이 구구단 9단을 다 외울 수 있다는 것은 그리 느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구구단을 외운다 하여 우등생이라는 것도 절대 아니었다.






나는 화투패를 좋아한다.


민화투로 화투패를 만지기 시작했던 나는 처음에는 발음 때문에 '미나투'로 알고 있었다.


민화투는 화투패로 동일한 그림패를 맞추어 점수를 매기는 게임이다. 물론 나의 상대는 엄마였다.


화투패를 일찍 잡은 나를 걱정하는 엄마는, 일주일에 2-3번 정도의 제한을 두고, 내가 공부를 마친 후에 같이 놀아주었다.


나는 그 당시 화투패를 만지는 기분이 좋았고, 그 화투패를 '촥촥-' 섞는 느낌이 좋았다.


엄마와의 승부에서 승률 60퍼센트 이상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민화투가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했던 어느 명절,

나는 알게 되었다. 고스톱이라는 게임을.

민화투는 아이들 장난 같은 게임이었고, GoStop이야 말로 화투로 즐기는 진정한 게임이라는 것을.

후에 알았지만, 화투패를 만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엄마였고 고스톱의 룰을 몰랐기에 나와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명절날 고스톱 하는 것을 처음 본 나는,


아버지와 친척형들이 고스톱 하는 걸 지켜봤고, 10판이 지나기도 전에 고스톱 룰을 알게 되었다.


- 이거는 왜 5점이야?
- 고도리라고 이거 세 개를 모으면 고도리야
- 그럼 이건 왜 3점이야?
- 이건 초단이야. 초단 말고도 청단, 홍단이 있어.


약간 복잡했던 건, 쌍피가 무엇인지, 그리고 열자 패 중에 쌍피로 쓰거나 열 자리에 두거나 하는 몇 개의 패가 헷갈렸지만, 그리 많은 패가 아니기에 금방 외울 수 있었다.


이때부터 구구단으로 외워진 암산 실력이 발휘된 듯하다.


아버지 옆에서 고스톱 패가 모아지면, 혼자서 점수를 매겼고, 나중에 확인하면 내가 매긴 점수가 맞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스톱은 쉬웠다. 점수를 알고 나니, 그 점수를 얻기 위해 패를 내리치고 뒤집으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민화투를 졸업하고, 고스톱으로 전향했다.




중학교 1학년. 고스톱을 좋아하는 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친구 놈 네 명이, 한 달에 한번 정도 고스톱을 쳤다. 물론, 부모님이 안 계신 집으로 돌아가면서 모임을 가졌다.

한 달 동안 용돈을 모아 가져오면 우리에겐 꽤 큰 몇천 원이 되었고, 그 돈으로 고스톱을 치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날 많은 판돈을 따는 사람이 과자를 사기도 했다.


한 번은 친구 집에 버스를 타고 가는데, 잔돈이 없던 내가 버스를 타기 전 친구에게 버스비를 내줄 것을 부탁했다.


- 야, 나 지금 동전이 없어. 내 버스비 좀 내줘. 있다가 줄게
- 알았어


버스에 오르는 나를 버스기사 아저씨가 계속 쳐다본다. 나도 왜 그렇게 쳐다보냐는 듯이 빤히 쳐다본다. 무슨 문제가 있냐고 말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버스에서 내리고, 친구 집에 도착할 무렵 알게 되었다.


- 야, 여기 버스비.
-?? 왜?? 나 버스비 네 거 안 냈는데?


이런! 버스 기사 아저씨를 째려보았던 사실이 너무나 미안했다. 버스기사 아저씨는 나를 째려볼 이유가 충분했던 것이다.

이래서, 모르면 용감하고, 안 부끄러운가 보다 싶었다.


잠깐 서로 난감한 듯 웃으며, 친구 집 고스톱 House로 입장했다.


녀석들도 어려서부터 구구단을 잘 외운 듯 계산이 빨랐고, 고스톱 계산에서 한 번의 실수가 보이지 않았다.

광을 파는 한 녀석을 제외하곤 게임을 하는 세명에게 매 순간 긴장감이 넘쳤다.

오직, 광을 팔고 구경하는 녀석만이 여유가 있었다.





우리의 고스톱은 사실 '도박' 이라기보다,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해 준 나름 건전한 놀이였다.

고스톱을 치면서 다른 반이었던 우리는 각자의 반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하고, 친구 흉을 보기도 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니 말이다.

또, 고스톱을 하면, 오락실을 가거나 위험한 놀이를 할 시간적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오롯이 고스톱 생각을 해야 했다.

무엇보다 탁월한 계산능력과 긴장을 주었기에, 웬만한 사건은 우리를 떨리게 하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씩 심심할 때면 온라인으로 고스톱 게임을 하지만, 재미가 없다.

핸드폰이, 컴퓨터가 알아서 계산을 해주고 내가 하는 것이라곤 '고' '스톱'의 결정만을 내리니 큰 재미가 없다.

* 사람과 사람이 하는 고스톱 게임에서 계산이 틀리는 경우도 많고, '폭탄, 흔들기, 광박, 쓰리고, 피박'등의 '점수 두배' 등을 잊어버리고 계산하지 못하는 것도 고스톱의 재미인데 말이다.

고스톱을 치면서 친구에게 너스레를 떨거나 약 올리는 재미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암산하고 계산하는 능력이 예전 같지 않다.


이제는 이해가 간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 왜 같이 화투를 칠 사람도 없는데,

점괘를 본답시고,

혼자서 화투패를 돌리고, 뒤집으셨는지.


그 화투패 맛이 그리우셨던 거다.


한 번씩 그립다.

이제는 컴퓨터와 핸드폰 클릭으로 바뀌어버린 오돌토돌한 화투패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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