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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Jan 14. 2022

라오스, 그리 멀지 않았던 역사

바로 얼마 전이었던 라오스의 역사

라오스는 국경이 닿아있는 다섯 나라.


북쪽의 중국과는 508 Km
남쪽의 캄보디아와는 535 Km
동쪽의 베트남과는 2,337 Km
북서쪽의 미얀마와는 236 Km
서쪽의 태국과는 1,835 km 


길이 약 4300km의 메콩강은, 중국 티베트 고원 빙하 지역에서 발원해, 중국 윈난과 미얀마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르는 동남아에서 가장 긴 강줄기이다. 


라오스에는 1,898 km가 흐른다.

그 외에도 라오스 전역에 걸쳐 100-400 km 가량의 크고 작은 강들이 10여 개 이상 있다.


대통령은 국회 의결(출석 의원 2/3 동의)로 임명되며 임기는 5년이다.
총리는 국회의 승인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며, 행정부를 지휘, 감독한다.


라오스 고대 역사


라오스 땅에서는 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살았다는 증거가 발견되고 있다. 남쪽에는 공룡의 화석이 발견되었으며 북쪽에는 선사시대의 돌도끼, 항아리, 매장지 등이 발견되었다.


라오족의 조상들인 고대 타이족은 기원전부터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측하며, 서서히 남하하여 현 중국의 쓰촨 성에 나라를 세웠다.


고대 타이족은 중국 왕조에 밀려 다시 운남성까지 이동했다가 서기 8세기 이후 서서히 동남아시아로 밀려오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메콩강 북부 라오 지방에 자리를 잡은 타이족의 한 일파가 라오족이며, 13세기경에 몽고의 세력 확대에 따라 라오족을 포함한 태국계 민족들의 이동이 가속화되면서 각지에 '므앙'이라 불리는 도시국가 체제가 성립되었다. 


이 중 라오계가 건국한 국가는 현재의 태국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한 수코타이 '란나' 왕국과 루앙프라방을 중심으로 한 '란쌍' 왕국인데, 란나 왕국의 쇠퇴로 인해 1354년 세워진 란쌍 왕국이 라오스의 대표 왕국이 되었다.



란쌍 왕국


라오스의 공식적인 역사는 란쌍 왕국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메콩강 상류에 자리 잡은 라오족은 이곳 원주민이었던 소수 민족들과 공존하며 도시국가들인 여러 므앙을 세웠다. 13세기까지 치열한 세력다툼이 있었는데, 이 므앙들 중 루앙프라방, 비엔티안, 참파삭이 강성하게 되고, 이 세 곳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14세기 이후, 강력한 중앙 통일왕조가 들어서자 권력의 후원으로 불교가 그들의 주류 종교가 된다. 이 불교를 밀어준 왕조가 바로 수많은 므앙들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란쌍 왕국이다.


란쌍이 성립한 시기는 14세기 중반으로 란쌍을 세운 파응움(아버지는 라오족, 어머니는 크메르인)은 당시 동남아시아 최강국이었던 크메르 제국에서 성장하였다. 성장 후, 크메르 왕의 명령으로 라오 지방 므앙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루앙프라방에 입성한 뒤, 자신이 라오족의 핏줄이라 생각하고 크메르로부터 독립하였다.

* 1353년 파응움이 루앙프라방에서 란쌍 왕국을 세운다.

그리고, 이때부터 불교가 란쌍왕국에 퍼지게 되고, 코끼리 군대 등 350년간 라오족의 최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란쌍 왕국은 한때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면적이 큰 왕국 중의 하나였으며, 현재의 태국 동북부 지역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이후, 수린야봉사(1637-1694) 이후 내전 등,  후계를 둘러싼 내분 및 미얀마, 베트남, 태국의 침략으로 인해 서서히 쇠퇴하였고, 18세기 초에는 루앙프라방(북부), 비엔티안(중부), 참파삭(남부) 왕국으로 분열되어 태국의 영향권 하에 놓인다.


루앙프라방은 태국의 속국, 비엔티안은 버마와 협력하였다. 비엔티안 왕국은 1820년대에 참파삭과 연합하여 태국에 반기를 들었다가 실패하고, 태국은 비엔티안과 참파삭을 공격하여 속국으로 만들기도 한다.

* 현재 방콕의 왕궁사원에 있는 에메랄드 불상은 이때 비엔티안에서 약탈한 것이다. 


이후 비엔티안의 아누왕이 태국(시암)에 의해 왕이 되고, 다시 한번 독립을 위해 싸우지만, 태국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19세기 말까지 태국에 조공을 바치면서 라오족의 루앙프라방이 남을 수 있게 된다. 


이후, 태국이 라오족을 코랏고원으로 강제이주시키는데, 이유는 라오족이 베트남과 힘을 합쳐 태국을 위협하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현재에도 태국에 수많은 라오족이 살고 있다고 한다.


라오족이 약소국이었던 이유로는 라오스는 산지가 많고 농지가 적어 생산력이 낮은 지역이었고, 내륙이라 바다를 통한 부를 축적하는 것이 어려웠던 이유가 있었다.



라오스 식민 시대



이후, 19세기 동안 루앙프라방은 태국의 속국이었고, 점점 간섭을 받게 되자, 캄보디아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에 보호 요청을 보낸다. 


하지만 영국과의 조약 때문에 태국을 침공하지 못하고 태국에 위협만 가하게 되고, 이로 인해 지금의 라오스 동쪽의 영지를 보호령으로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라오스족은 왕조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에,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의 영토가 정해지게 된다.


1945년 3월 일본이 프랑스를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몰아내고 라오스 독립을 선언한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가 다시 지배하기 시작했지만 1946년 프랑스는 루앙프라방 왕의 통치 아래 통일된 라오스를 승인한다. 이후, 1954년 프랑스와 라오스 간의 조약(제네바 협약, 1954.7.20.)에 따라 완전히 독립한다. 


2차 대전 때 일본 지배 당시, 프랑스는 라오스 민족주의를 지원한다. 그리고, 2차 대전이 끝나고 이 민족주의는 대상이 프랑스로 바뀌게 된다. 


이후, 프랑스가 북베트남과 전쟁을 하고 있었기에 라오스에 자치권을 주게 되고, 라오스는 80년대 말부터 중국과 베트남을 따라서 조금씩 개방정책을 진행 중이다. 

* 베트남, 중국, 소련은 라오스에 라오인민혁명당 지원(공산주의)

* 미국, 태국은 공산화를 막기 위한 노력


라오스 인민 민주 공화국



제네바 협정에서 공산주의와 연합한 북베트남과 친서방주의 노선을 걷는 태국 사이에서 완충국가로 통일, 독립한 라오스가 세워졌다. 1950년대 파테트라오는 라오스 통치원을 놓고 우파 및 중도파와 투쟁했다. 제2차 제네바 협정(1962년)으로 파테트라오를 포함한 중립 연립 정부가 생겨났으나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친 서방의 비엔티안 정부(왕정)와 좌파 '파테트라오' 간의 분쟁이 격화, 그 후 60년대가 끝날 때까지 라오스는 베트남 전쟁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되고, 파테트라오 군대는 북베트남과 연합하여 라오스의 지배권을 쟁취하기 위해 라오스 정부군과 싸웠다.


몽족

라오스 내에서도 라오족, 크무족과 더불어 3대 종족 중의 하나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정부, CIA에 포섭되어 미군을 도와 라오스 공산반군 세력이었던 빠떼트라오군과 북베트남군에 맞서 싸웠다. 
몽족들은 대부분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지대였던 산간지대에 거주했는데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기 전 이 지역을 자주 침략했고, 그래서 몽족은 베트남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승전 후 보상과, 첩보활동을 통한 경제적 보상 등으로 몽족들은 전쟁 내내 다양한 게릴라 작전을 수행하고 많은 공을 세운다.
하지만, 미군이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하고 철수하면서 빠떼트라오군이 라오스를 집권하게 되면서, 표적이 되고, 1975년 라오스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수천 명이 보복 살해된다.
많은 몽족들이 라오스를 떠나 태국으로 가거나, 산 위에서 생활하는 등 차별과 천대를 받게 된다. 
그 뒤, 라오스 정부의 동화정책으로 소수민족 중 한 부류로 생활하고 있고, 국회의원 중 일부를 몽족과 크무족에 할당하고 있지만 라오족 출신의 라오스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소수민족의 차별은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1973년 미국-베트남 간의 파리평화협정 성립과 함께 라오스에서도 정전협정이 맺어져 연립정부가 들어섰으나, 그 후 1975년 인도차이나 반도 정세가 급변하면서 라오스에서도 파테트라오가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사이공과 프놈펜에서 반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진 1975년 8월 라오 애국전선은 비엔티안 정부 측을 제압하고 무혈 혁명에 성공, 같은 해 12월에는 왕정을 폐지하고, '라오인민민주공화국'을 수립했으며, 그 후 카이손 폼비안 라오인민혁명당 서기장 겸 총리의 지도 하에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추진한다. 

베트남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1980년대 베트남이 이끄는 인도차이나 동맹(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의 일원이 되었다.


1986년 라오인민혁명당 제4차 전당대회에서 경제개방 및 시장경제 원리를 주축으로 하는 신경제제도를 도입, 국영기업의 민영화, 은행 제도 및 세제 개혁, 외국인 투자 유치법 제정 등을 시행한다. 

1991년 8월 헌법이 채택되고, 이 헌법에 따라 1992년 12월 최초로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하게 된다. 

2000년 라오스 중앙정부는 지방분권을 실시하여 지자체의 자치권 및 예산 권한을 보장한다.

2016년 12월 보텐(북부 중국과의 접경도시) - 비엔티안 간 총길이 414km의 고속철도 착공(2021.12. 완공 예정)



라오스를 보면, 과거 외세 침략이 잦았던 한국의 고대사가 생각난다.

근대에 와서도 베트남 전쟁의 피해가 현재도 진행 중이고, 종족 간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더라도 완전히 통합되지 못한 상황 등은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너무 최근에 일어난 일들이 많기에, 아직은 체제와 나라를 잡아가는데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렵게 독립국가로 발돋움한 라오스이기에, 주변 나라인 베트남과 태국이 발전하는 만큼 빨리 따라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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