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 관한 생각

전례를 따르는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by 내우주

처음에는 예산에서 잘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도시의 편리함과 익숙한 인프라를 떠나 시골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벌이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오히려 예산에서의 삶이 제 인생에서 가장 활기찬 시기라고 느껴집니다.


돌이켜보면 예산에 내려온 뒤, 참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주거 형태부터 하는 일, 만나는 사람 등 모든 면에서 큰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삶의 여정을 함께할 동반자를 만난 것입니다. 몇 해 전 기획했던 지역살이 프로젝트의 참여자였던 친구와 만나 일도 같이하고, 이제는 앞날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답니다. 이만하면 예산은 소멸 위기 지역이 아니라, 기회의 땅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 그동안 결혼은 제게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여겨졌습니다. 스스로 아직 미숙하고 불완전한데 어떻게 누군가를 책임지고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상상이 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예산에서의 시간은 저를 조금씩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지역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체감하게 되었고, 결혼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습니다.


어찌 보면 저와 비슷한 가치관과 철학을 공유하는 짝을 만나게 된 것은 예산이 제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덕분에 결혼이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여정’임을 느낍니다. 헤겔이 말한 것처럼, 결혼은 한 개인의 성장이자 인격적 발전의 기회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관계를 통해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넘어서서 타인을 책임지는 존재로서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성숙을 겪는 것이니까요.


저희가 처음 만난 곳은 100년 넘은 양곡창고를 개조한 ‘이음창작소’입니다. 고향에 돌아와 예산청년마을을 시작하는 자리였죠.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했던 그 공간에서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예산이 맺어준 인연입니다. 뜻깊은 그곳에서 단순한 ‘의식’이 아닌 예산에서의 앞날을 주제로 한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이름하여 예산이 이음해준 결혼특별전시회, <예음展>입니다.


소싱이 일반화된 서울과는 다르게, 지역에 내려와 살다 보니 많은 것을 스스로 기획하고 추진하는 데 익숙해지게 되었습니다. 나답게 주체적으로 살고 싶어 내려온 만큼 결혼도 우리 방식대로 특별하게 꾸미고 싶었습니다. 30분이면 끝나는 공장식 예식 말고, 진정으로 우리의 시작을 축하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을 펼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성 웨딩 대신 드레스도, 주례도, 버진로드도 없는 특별전을 기획했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예산에서의 이야기, 서로를 닮아가는 과정, 그리고 앞으로 함께 만들어갈 삶의 방향을 전시 형태로 풀어내려 합니다.


"결혼 전시? 그게 뭐여?"


"그래서, 밥은 주는겨?"


하루 종일 공간을 열어두고, 신랑 신부 입장이나 행진 같은 식순이 없다고 하니 어르신들께는 생소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게 뭐여?” 하는 호기심과 함께 집 앞 논밭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으로 웨딩 앨범을 대신하는 저희를 보며, “그거 참 재밌겠다”며 기대를 내비치는 분들도 많습니다. 낯설지만 새로운 방식의 결혼을 통해 획일화된 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로컬을 선택한 삶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예음전은 저희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역에서의 삶과 관계를 이어주는 힘’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기회를 찾아 도시로 떠나는 흐름에 역행해 예산에 머물기로 결심한 저를 아낌없이 응원해 주는 지역 선배들과 이웃들의 관심 덕분에 용기 낼 수 있었던 기획입니다.


소위 웨딩 산업이라고 불리는 시장의 규모가 무려 20조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결혼 전시를 통해 결혼이 예식장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정해진 틀에 맞춰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일상적 공간에서도 충분히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일정한 전례를 따르는 식(式) 말고, 우리가 주인공이 되고, 우리가 호스트가 되어 펼쳐내는 전(展)은 어떨까요?


예음전 조닝.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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