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준비하면서 가장 간절히 원했던 것은 '결혼식'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규격화된 웨딩홀 안에서 30분이면 끝날 공장식 예식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잠깐 와서 사진 찍고 밥 먹고 헤어지는 것보단 진심으로 우리의 결혼을 축하해 줄 사람들과 밀도 높은 시간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는 100년 넘은 양곡 창고를 개조한 '이음창작소'였습니다.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을 예산에서 시작하는 자리였습니다. 저는 예산이 고향인 호스트로, 아내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지역살이를 체험하러 온 게스트로 이곳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정말 운명 같은 공간이네요. 저희에게 의미가 큰 이 전시장에서 우리의 시작을 알리는 결혼 특별 전시회, '예음展'을 열기로 했습니다.
이런 걸 소위 셀프웨딩이라고 하더라고요. 웨딩 드레스도, 한복도, 화촉점화도, 버진로드도, 스튜디오 촬영도 없는 결혼을 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자연스럽게, 나답게, 우리 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시골 빈집을 덜컥 사서 고쳐 공연장으로 만들었던 우리답게, 결혼도 100년이 넘은 양곡창고에서 하게 되었네요.
전시 동선 초입에는 각자의 결혼관에 대해 적은 글을 커다랗게 배치했습니다. 예산이 이음해준 결혼 특별 전시회, '예음展'이라는 이름으로요.
"결혼 전시? 그게 뭐여?"
가족 친지는 물론 동네 어르신들도 '결혼 전시'를 한다고 하니까 많이들 생소하셨나 봅니다. "그래서, 밥은 주는겨?"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한다는 그 전시가 대체 뭔지에 대해 묻는 질문들에 끊임없이 답하느라 에너지를 쏟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결혼마저도 벼락치기로..?"
사실은 결혼 전시 1주일 전까지만 해도 케이터링 업체를 검색해 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었습니다. 9월부터 11월은 정말 하루도 쉴 수 없었을 만큼 일이 바빴거든요. 당연하게도 사업이 우선이 되었고, 우리의 결혼전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습니다.
전시 오픈 1주일 전에서야 부랴부랴 전시 동선을 구성하고, 인쇄물을 맡겼어요. 대형 패브릭 포스터의 경우에는 결혼전 당일 수령이 불가능하다고 하여 직접 성수동에 있는 인쇄공장까지 가서 방문수령을 하기도 했을 정도였으니까, 얼마나 급박하게 준비했는지 알 만하겠죠.
살다 살다 결혼을 벼락치기로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게 제가 되리라고는 더더욱.. 제 인생은 역시 임기응변의 연속입니다.
어쨌든 밤을 새워가며 전시장을 구성하고, 영상을 편집하고, 전시 오브제를 부착하는 강행군을 이어갔습니다. 하루 전날부터 전시장을 구성하고, 밤새 도슨트 녹음과 영상편집을 해서 대망의 예음展 전시를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결혼관은 물론, 만나게 된 계기와 성장과정, 예산에서 함께 이뤄낸 성과들, 관심사와 취미활동, 영상존, 두려움존, 좋아하는 아이템존, 오브제존과 방명록존으로 구성했습니다.
각각의 전시 STAGE별로 저와 아내가 직접 오디오 도슨트를 녹음하여 QR코드를 붙여 놓았습니다. 하객분들이 전시 관람객이 되어 우리의 결혼관과 일상, 생각을 청취할 수 있도록 동선을 배치했습니다.
지역 신문에 매달 칼럼을 쓰고 있는데요. 기성 웨딩 대신 하루 종일 문을 열어두는 특별한 마을 결혼 전시 소식을 전하니 신문사에서 취재도 와 주셨어요. 군수님과 국회의원은 물론, 도의원과 군의원 분들도 오셔서 저희의 특별한 결혼전시를 축하해 주셨답니다.
그야말로 예산이 맺어주고, 지역과 함께하는 잔치로 꾸며진 전시였습니다.
서울을 벗어나 예산이라는 지역에 내려오게 된 계기, 오랫동안 방치되던 시골 빈집을 고쳐서 공연장으로 탈바꿈한 이유, 지역의 이야기를 찾아다니고 발굴해 연극 콘텐츠를 만들어 세상에 알리는 목적이 뭔지도 전시를 통해 많은 분들께 알렸습니다. 지역에서 우리의 삶이 곧 일이 되고, 일상이 이야기 브랜드가 되는 것입니다.
결혼특별전시 예음전을 기획, 추진하며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다름 아닌, "너희 두 사람에 대해 오늘의 전시를 통해 훨씬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는 피드백이었습니다. 저희 가족조차도 결혼전시라는 콘셉트에 대해 100% 이해하지 못하셨는데, 전시를 통해서 우리 두 사람의 생각과 지역에서의 활동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실 정도였습니다.
정해진 식순에 따라 관례적으로 행해지는 결혼식이었다면 아마도 저희의 이런 생각을 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결혼마저도 정말 너답게 하는구나"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를 오래 알아왔던 친구들은 이색적인 행사 자체를 호기심 있게 즐기면서도, 좀처럼 일반적인 길을 따르는 법이 없는(?) 저에게 혀를 내두르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결혼 전시 구성은 아래와 같이 준비했습니다.
전시 구성 - Stage 1. 결혼?
애당초 결혼이란 걸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우리 두 사람이 예산에서 만나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 결혼식 대신 전시를 선택한 이유를 알아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관객 동선은 오른쪽에서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둘러볼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가장 먼저 저희의 결혼관에 대해 알아보고, 만남의 과정에 대해 둘러보는 순서였습니다.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생각들은 QR코드로 인쇄해 부착해 두어, 관객들이 스캔하면 저희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도슨트 녹음은 3일 정도 저희가 직접 문구를 작성하고 녹음해 편집하여 업로드하였습니다.
전시구성 - Stage 2~4. 첫만남과 예음전, 화가존
제가 고향에 돌아오게 된 계기와 우리가 만나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존입니다. 웨딩 사진도 우리 시골집 앞 논밭에서 자유롭게 찍었습니다. 지역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후배 사진작가가 도와주었습니다. 각자가 그려준 초상화를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볼 때면 항상 웃습니다. 우리는 왜 사람의 얼굴을 그릴까요? 각자의 얼굴을 그려준 작품을 통해서 그 생각을 나눕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이젠 인생을 함께하며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던집니다.
전시구성 - Stage 5. 삶이라는 여행
성장과정 존입니다. 어릴 적 사진과 영상을 보고 눈물을 훔치는 분들도 계셨어요. 지금, 이곳에 있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담아냈습니다. 저는 삶이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과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요즘입니다. Stage 5는 여행이라는 삶을 함께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전시 공간입니다.
2017년 퇴사 후 자체 안식년을 가지며 배낭을 메고 지구 반대편 이곳저곳을 누볐던 제 여행 기록과 최근에 한 여행 기록까지 담아냈습니다. 혼자서 배낭을 메고 다니던 여행이 이제는 함께하는 동반자와 함께 걷는 여정이 되었습니다.
전시구성 - Stage 6. YESAN BUBU 예산부부
STAGE 6에서는 예산에서 함께한 프로젝트를 전시하고, '예산부부'의 정체성을 표현했습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기반으로, 지역의 자원을 연결해 만든 각종 행사와 공연 프로젝트를 소개했습니다. 예산 고유의 민담인 '의좋은형제' 이야기를 각색해 만든 창작극 '어떻게 온겨?'를 시작으로 빈집을 재생한 창작공간 '스튜디오 감나무집' 오픈, '한 칸 영화제' 개최, '윤봉길평화축제 도슨트' 프로그램, 황새축제 '황새둥지사건: 육남매의 비밀'과 삼국축제 '새참극장: 들어유주막', '의좋은형제 축제'에서의 주제공연까지. 그동안 지역에서 참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우리가 함께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전시구성 - Stage 7. 우리의 오브제
STAGE 7에서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그리고 좋아하는 오브제를 전시했습니다. 등산 배낭과 시집, 맥주와 라면 등이 전시됐어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존에는 휴지와 파리채를 올려놓아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답니다. 어릴 적 말 안 듣는 내 앞에서 엄마가 파리채를 거꾸로 드는 순간.. 훈육의 타이밍임을 직감한 둘째인 저는 눈치껏 재빠르게 태세를 전환합니다. 어릴 적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나의 오브제.
전시구성 - 방명록 및 체험존
방명록을 체험존으로 꾸며놓기도 했습니다. 저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방명록월은 물론, 예산부부 탐구영역 시험문제를 제작해 비치해두었습니다. 모두 저희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만 100점을 맞을 수 있는 문제 구성이었습니다. 방문객들의 호응이 가장 좋았던 존이기도 했습니다. 다 맞히면 경품을 추첨해서 바꿔드렸거든요. 덕분에 방문객들이 시험문제를 들고 분주하게 전시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진풍경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옛날 책걸상을 준비해 포토존을 꾸며놓기도 했습니다. 옛날 책상에 앉아 예산부부에 대한 시험문제를 푸는 모습이 무척 정겹고 보기 좋았습니다.
전시구성 - 예산네컷 포토존
우리의 결혼전을 기념할 포토존도 마련했습니다. 오신 분들끼리, 혹은 신랑 신부와 함께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스티커 용지로 출력되는 사진을 보고 활짝 웃는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결혼특별전시, 예음展에 와 주신 분들께 특별한 입장 티켓을 손목에 감아드리기도 했습니다. 놀이공원에 온 듯, 클럽에 온 듯한 기쁘고 들뜨는 마음으로 와 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
직접 만든 답례품 - YESAN BUBU 머그컵 제작
지역 도자기 공방 작가님의 도움을 받아 답례품으로 드릴 머그컵을 직접 제작해 전시하기도 하고, 나눠드리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직접 도안 작업을 하고, 스탠실 작업 및 포장도 직접 했습니다. 예음展을 준비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답례품을 직접 제작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되돌아보니 뿌듯합니다. 덕분에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 다시 되돌아보니,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어떻게 1~2주 만에 준비해서 치렀는지 쉬이 헤아려지지가 않습니다. 결혼전 앞뒤로 축제 업무로 빡빡한 11월이었거든요. 야근과 전시 프로젝트를 동시에 준비해야 했습니다.
아마 혼자였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함께한다는 건 이렇게 큰 의미가 있다는 걸 결혼을 통해 깨닫습니다. 저희의 결혼특별전시는 마을잔치처럼 지역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모두 자신의 일처럼 진심으로 축하해 주신 지역 선배님들 덕분입니다.
예산은 소멸 위험 지역이 아닌, 기회의 땅이에유~! 예산으로 놀러 오십시오 여러분! �
마지막으로 '결혼에 관한 생각' STAGE 1에서 도슨트로 녹음한 오디오를 덧붙입니다. 일반적인 결혼식 말고, 각자의 방식으로, 특별한 결혼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영감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더 없이 감사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