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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롱 Apr 05. 2021

엄마, 나 좋아해?

사랑하는 건 아는데, 날 좋아하냐고.



레이디 버드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이다.


주인공 레이디 버드는 (주인공의 원래 이름과는 다르다. 이유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함구하도록 하겠다.) 고향을 떠나 더 넓고 반짝이는 뉴욕으로 가고 싶어 한다. 고향도 지겹고, 사사건건 부딪히는 엄마도 지겹다. 


엄마는 레이디 버드가 고향에 남아 이 곳에서 대학에 진학하길 바라는데, 그 만류 과정이 참으로 형편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총만 쏘며 상처를 입힌다. 제대로 된 대화는 하지 않고 보는 내내 나까지 짜증이 날 정도로 서로의 귀를 괴롭힌다.




"엄마, 나 좋아해?"

"난 널 사랑하고, 네가 잘 됐으면 좋겠어."

"사랑하는 건 아는데 날 좋아하냐고."




엄마는 속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열 달 가까운 시간 동안 딸을 품고, 길러내고, 사랑으로 함께 사는 건 맞지만 인간적으로 날 좋아하냐는 레이디 버드의 물음은 잠시 마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다.










주말 동안 엄마와 또 싸웠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아직 과거에 갇혀있고 엄마는 자꾸만 내게 미래를 종용한다. 서른이란 나이를 먹고도 속이 좁아 과거에 이랬으면서 제대로 된 사과도 안 하고! 왜 엄마는 아직도 나한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 스킬을 시전하고 있는 거다. 


엄마는 이제 미래를 좀 봐. 언제까지 과거의 상처만 얘기할 건데? 그땐 그거고, 지금은 지금이지. 앞으로 살아갈 걱정이나 해. 방어 기를 쓰고 있는 거고.




으레 그렇듯 첫 물꼬는 돈이었다. 

작년 말쯤, 팔자에도 없는 효녀 노릇을 해보겠다고 비싼 패딩이며, 비타민에 용돈으로 뱁새 다리처럼 통장이 찢어진 적이 있었다. 그래도 나름 뿌듯하다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넌지시 물었다. 엄마 일하는 게 좀 힘들어서 그런데 150만 원 정도 빌려 줄 수 있냐고.


효녀 노릇으로 거진 200만 원을 납부했다. 갖고 있는 비상금이 간당간당했지만 갚아준다는 말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랬을까? 시도 때도 없이 내게 대출을 받아 달라며 못 살게 굴고, 마이너스 통장만 파주면 자기가 알아서 관리한다고 사람을 그렇게 들들 볶던 사람들인데 (제 신용은 대체 누가 관리해 주나요..). 나는 뭘 믿고 선뜻 돈을 빌려주었을까?


엄마는 한 달 뒤 50만 원을 돌려주었다. 표정은 아주 딱딱하고 말투는 쌀쌀맞았는데, 없는 돈을 끌어모아 네게 준 거니 감사하라는 말이었다. 원래 내 돈이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너무 큰 소리에 노출되었던 탓인지, 소음에 민감한 나는 큰 소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 알겠다고 고개만 끄덕였다.



됐으니까 50만 원만 더 갚아.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나는 여전히 50만 원의 돈을 더 받지 못했다. 150을 빌려줬고, 50을 받았고. 50은 안 줘도 됐다고 했고, 나머지 50만 원을 더 받아야 하는데 따가운 눈총만 받고 있는 상태다. 부모님은 네가 해준 게 뭐가 있냐며 언제까지 집에 붙어있을 거냐고 물었다. 능력 없는 나는 또다시 바보처럼 올해 안에 독립할게,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저번 주 주말.

엄마는 내게 500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아빠가 사업차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하는데 살 거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네가 그 돈을 다 내라는 것이었다. 이 집안에 자식이 나 하나뿐이던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보다 윗놈이 분명 존재하고, 막내야 아직 학생이니 이해하겠다만 왜 내가 500만 원을 모두 부담해야 하는 걸까?


당장 현금이 없다고 하니 엄마는 왜 그 정도 현금도 없냐고 했다.

그러는 엄마는? 나보다 살기도 더 살았으면서. 왜 그깟 500만 원도 없어서 나를 그렇게 보는 건데? 곁에 있던 아빠는 한숨을 쉬며 됐다고 말했다. 뭘 바라냐는 거다. 나 역시 아무 말 없이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자리를 뜨자마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키워 봤자 뭐 하냐고 다 들리게끔 뒷담화를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걸까?

갑자기 이사를 가야 한다며 알바나 하던 20대 초반에 내게 대출을 받아 오래서 받아 왔고, 매 주는 아니지만 현금이 남을 때마다 용돈도 드렸고. 이 나이까지 생일 선물은 고사하고 생일 케이크 한 번 받아본 적 없지만 두 사람의 생일은 꼬박꼬박 챙겨드렸는데. 


내가 그 돈 500만 원을 못 줬다고 그렇게나 잘못했던 걸까.

사실 이렇게 다 들리는 뒷담화를 당한 건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내가 본인들에게 돈을 주지 않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집 안에 있는 모든 음식을 숨겼다. 자식새끼 필요 없다는 말을 아주 큰 데시벨로 내뱉으면서.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이 나에게는 참으로 감옥 같았다.

아니 감옥이라기 보단 뭐랄까? 그 어떤 곳에도 나에겐 안식처가 될 수 없구나, 하는 우울한 생각을 들게 하는 공간 같았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집에 들어가도 스트레스의 공격을 받았다. 심장이 쪼그라들고 가끔 숨이 가빴다. 어디에도 내가 피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물론 이 나이 이때까지 양심 없이 부모의 집에 얹혀사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노력이라도 했지 않은가.




엄마는 내 노력을 터부시 한다.

기억이 안 난다는 이유였다. 해봤자 좋은 소리도 못 들을 거 뭐하러 챙겨주나. 다음부턴 하지 말아야지. 했던 다짐은 물거품처럼 쉽게 사라졌다. 당신들의 생일이 다가오면 티가 나게 내게 틱틱거리기 때문이다. 밥그릇을 던져 준다거나, 묻는 말에 대답도 해주지 않는다거나.


어찌 됐든 독립할 돈을 모을 때까지 기생하며 살아야 하니 한 손엔 케이크, 다른 손엔 소정의 용돈을 들고 퇴근하면 그때서야 고맙다고 한 마디씩 해준다. 어디 집은 자식이 뭘 선물해주고, 뭘 해줬다는 끝말과 함께.


여전히 과거에 사로잡힌 내가 잘못된 걸까?

엄마와 나, 아니 이 가족과 나는 인간적으로 맞지 않다. 게임도 상성이 맞아야 효과가 큰 법. 나는 혼자 동떨어진 괴물처럼 집구석에 가만히 들어가 숨만 쉬며 살고 있다. 꼭 필요 없는 능력이 되어 버릴 수도 없고, 주인공이 끼지도 않는. 창고 구석에 박힌 스킬이 된 기분이다.




그렇게 나는 주말 내내 내 방 침대에 누워 나의 고양이와 함께 월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며칠 전 부랴부랴 챙겨드린 선물 그 날 저녁에도 나는 내가 사 간 케이크를 한 입도 먹을 수 없었다





아침부터 아빠는 방 밖에서 내게 화를 냈다.

혼잣말이지만 분명 나 들으라고 말하는 화였다. 또다시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내 심장을 꽉 쥐고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을 때까지 비틀어 짜는 것 같았다. 그래도 참 대견하지. 울지는 않았으니까. 힘든 월요일이니까 그거라도 내가 칭찬해 줘야지.



남들이 보기에 내가 답답하다는 건, 나도 안다.

부모의 요구에 맞게 그 의견을 들어주거나, 속 시원하게 독립을 해버 리거나. 답은 명확한데 연필을 든 내가 우유부단하다. 어리석다. 상황 대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어떠한 답을 내리게 되면 뒤 따라올 상황이 무서워 혼자 스트레스란 스트레스는 죄다 끌어안고 있는 거다. 이 우유부단함 때문에 회사도 그만두지 못하는 거고. 




가끔 나는 다른 집의 생태계가 궁금하다.

아가페적인 사랑은 뭘까? 부모가 주는 사랑은 따뜻하고 안락하다던데. 그런 건 어떻게 해야 경험해 볼 수 있는 걸까? 일반적인 집에선 사람이 퇴근을 하면 반갑게 맞이해 줄까? 밥을 먹으면서, 같이 티브이를 보면서 무슨 얘기를 할까? 다른 부모의 밑에서 태어났으면 나를 사랑해줬을까?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부모님이란 든든한 뒷받침이 있기에 명확한 답을 찍을 수 있었을까? 




내가 조금 더 나은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을까?










인터넷 커뮤니티 또는 SNS에 '나를 낳기 전 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요?'라는 질문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대다수의 댓글이 나를 낳지 말고, 두 사람이 결혼하지 말고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찾아가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왜냐면, 엄마와 아빠를 너무 사랑해서. 내가 태어나지 않아도 두 사람이 조금 더 행복하면 좋겠어서. 또는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구해내고 싶어서. 



나 역시 제발 두 사람에게 나를 낳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결혼을 해서 지지고 볶고 사는 건 내 알 바 아니고, 제발 나만은 세상에 태어나게 하지 말아 달라고 빌고 싶다. 당신들도 나를 키우며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을 테니까. 제발 나는 낳지 말고 나로 인한 어려움들을 겪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달라고 말하고 싶다. 




엄마, 날 좋아해?

묻는 레이디 버드의 말에 대답은 하지 못했어도, 영화 속 모녀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극적인 화해를 한다. 막이 오르고 이후의 인생에서 같은 싸움을 반복할 지라도 서로가 인정하는 화해를 하고 끝이 났다.


나의 끝은 어디일까?

친구로 만났다면, 아는 지인으로 만났다면, 회사 동료로 만났다면 서로 맞지 않아 평생을 안 보고 살겠지만, 가족으로 만나 삐걱거리며 살아가야 하는 나는. 언제쯤 저 질문에 답을 들을 수 있을까?


아마 평생 동안 듣지 못하겠지.


영화 시작 두 시간 후 답을 알게 된 레이디 버드와는 달리 나는 한 평생 동안 이 문제에 해답을 찾지 못할 것 같다. 





에잇,

가뜩이나 우울한 월요일 아침부터 너무 큰 감성에 젖어든 기분.


오늘 점심은 고기나 먹으며 나를 달래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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