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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롱 Apr 05. 2021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된 이유.

그 근본적인 이유는.



브런치에서 글을 쓴다고 하니 친구가 내게 물었다.




"무슨 글 쓰는데?"

"무슨 글?"

"주제가 있을 거 아냐. 소설? 에세이? 아니면 뭐 독후감?"




무슨 글.

그러게, 내가 지금 무슨 글들을 쓰고 있나. 사실 어떤 주제로 명확하게 가를 수 없는 조각 글들이 아니던가.




"그냥 일기 같은 거 쓰는 건데."

"에이, 그건 작가가 아니지."

"안네가 서운해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그거랑은 다르다니까?! 명색이 작가면 완결 난 소설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렇다면 나는 작가가 아니다.

그냥 글을 쓸 수 있는 이 공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던지듯 풀어놓는 거니까.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친구가 말했다.




"뭐라도 노력해 봐. 또 알아? 네가 톨스토이가 될 수도 있는 거지."




아니 근데 내가 톨스토이가 되고 싶지 않다니까?







처음 이 메일을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뻘 글만 써서 무안하네...





결론을 말하자면 근본적인 이유는 그냥 글이 쓰고 싶어서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원대한 꿈도 어렴풋이 꾸고 있지만 현재는 어디에든 털어놓고 싶은 내 일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마음. 이 마음이 가장 큰 이유가 되겠다.



사실 처음 브런치에 접속했을 때만 해도 걱정이 앞섰던 건 사실이다. 전개가 탄탄한 소설이나 촌철살인을 날리는 평론가만이 글을 쓸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다. (게다가 작가 신청이 어렵다고 해서 많이 쫄아 있었다. 내 평생 어떤 시험에 한 번에 성공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운이 좋아 재수는 없었다. 하도 쫑알쫑알 말이 많아 합격시켜주셨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첫 글쓰기 버튼을 누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써 놓은 글을 내내 작가의 서랍에만 담아 두었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마우스를 클릭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한 3주 전의 이야기다.




그런데 사실 별 거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쓰고, 누군가가 읽는 것만으로도 이미 작가와 독자가 된 게 아니던가. 거창한 단어라지만 쓰고 읽는 행위에 적합하면 그게 바로 작가와 독자의 본분이 아닐까 싶다.




친구는 여전히 내게 소설을 써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제발 성공해서 초판을 자기한테 팔라고 한다. 그냥 로또를 사는 게 더 빠를 것 같다고 답하니 그런 게 아니라며 가슴을 광광 내리쳤다. 아니 그럴 거면 기승전결이라도 정해주고 나보고 글쓰기 노동을 시켜보든가. 아무것도 없는 백지의 상태에서 이야기 창조해내는 게 너는 쉽니. 지금 당장 한글파일 켜서 에이포 한 페이지를 채워봐라, 어디 그게 마음처럼 써지나.





"넌, 겁이 너무 많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질러 봐야지."

"수습은. 수습은 네가 해줄 거야?"

"수습이 왜 필요해."

"열심히 썼는데 아무도 안 봐주면 내 마음에 난 스크래치는 어떻게 해 줄 건데. 네가 아이디 백 개 가입해서 작가님 잘 보고 있다고 응원 댓글 써줄 거야?"

"..."

"... 이 나쁜 놈이..."





내가 소설 써봤자 방구석 여포 밖에 더 되겠니.

여주의 집이 망했다. 그 사실을 안 여주의 소꿉친구 남주가 오갈 데 없으면 집으로 들어와 가정부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이 썩을 놈이 십년지기 우정 다 죽었다며 엉엉 울다 사채업자를 피해 남주의 집으로 들어간 여주,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되는 러브 스토리...





"진짜 쌍팔년대 소설도 그런 내용은 아닌 거 알지?"

"쌍팔년도에 살아본 것처럼 말하지 마라. 클래식은 영원하다 모르냐?"

"요즘 누가 가정부 얘기로 소설을 쓰냐고."

"아, 왜 안돼? 들어가 보니 남주가 여주를 몰래 짝사랑해서 흑막을 계획했고, 그 사실을 안 여주가 남주의 약점을 잡아 초강력한 배신을 때리며 다시 성공하는 스토리 어때."

"그게 사랑이야?"

"그럼 우정이냐, 이게?"





결국 작가의 꿈은 무산됐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때까지 고리타분한 맛 좀 빼고 오라고 어찌나 꼽을 주던지. 흑흑.)



그럼에도 나는 브런치에 글을 적는다.

누군가에게 요즘 작가 놀이에 한참이라고 자랑을 한다. 뭐 대단한 내용을 적어야만 작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근데 사실 내 브런치를 알려주기엔 조금 창피하다. 이런 글은 다이어리에 적고 포도알이나 받으라고 하면 어떡해.)




하다 보면 뭔가 되겠지.

무책임한 생각을 하며 오늘도 즐겁게 브런치에 접속해 본다. 혹시나 저처럼 글쓰기를 고민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용기 내 보세요.



저 같은 놈도 브런치에 글을 씁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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