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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롱 Apr 07. 2021

저 고객센터에 지원해도 되나요?

말리진 않겠지만 다시 생각해 보세요. 꼭이요. 제발요. 진심이에요.






심각한 취업난이다. 

입에선 한숨이 푹푹 새어 나왔다. 구직 사이트에는 며칠 째 같은 회사의 공고만 업데이트될 뿐이었다. 와, 이렇게까지 살기 팍팍하다고? 요즘 세대들 돈도 없어, 집도 없어, 차도 없고 미래도 없다더니 이젠 취업 공고까지 없는 건가? (아마 늙어서까지 경쟁을 멈추지 못할 90년 대생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건넵니다. 갓 블레스 유.)


이 때문에 지인들은 가끔 "고객센터 일 어때?" "소량의 CS 업무라던데, 안 힘들까?" "콜 수가 그렇게 많지 않대." 하며 은근히 내게 고민상담을 해온다. 왜냐. 어떤 사이트를 봐도 고객센터 공고는 차고 넘치니까. 인센티브 빵빵! 2년 후 정직원 채용! 타 회사에 비해 적은 콜 수! 등의 달콤한 문장들이 자꾸 우릴 유혹하니까.


돈을 벌어야 맛있는 것도 먹고, 보험비도 내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니 입사 지원을 말리진 않겠다. (제가 뭐라고 누군가의 인생에 훈수를 두겠습니까. 잉여 인생의 대표주자인데. 흑흑. 또 한 상담직이 잘 맞는 분들은 세상만사 많은 분들과 이야기 나누며 즐겁게 근무하시기도 하더라고요.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니,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진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정말 진정으로 하루에 한 두 콜만 받으면 되고, 전화를 건 고객님들이 모두 천사 같은 분들이라 울리는 벨소리가 흥겹게 느껴질 만한 회사라면 입사를 추천드린다. 그렇지만 진짜예요. 여러분 이건 진짜라고요.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아래의 내용을 보고, 오. 그래도 할 만하겠는데? 싶으신 분들은 지금 고객센터 업무에 지원해 보시고, 아니라면 휴대폰을 내려놓으세요. 심호흡하고, 내일 다시 생각해 보세요. 

(그렇지만 모든 건 저의 주관적 견해이기 때문에 한 번쯤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네. 네..)










콜 수 많지 않음. 

이 문장에 끌리는 분들이 계실 거라 믿는다. 하루 중 몇 분인데, 그 몇 분만 참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저 문장 뒤, 어디에도 진상 없음이라는 말은 거의 없을 거다. 전화가 적게 온다고 일이 무난 한 건 절대 아니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어디든 또라이가 있다. 어디든 진상이 있고, 하루에 전화 한 통을 받는다 해도 그 한 통이 10분, 30분, 60분 동안의 욕설 파티 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생각해 보면 고객센터에 전화하는 이들은 대부분 화가 나 있는 상태다. 직원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하고 전화를 거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제품의 이상, 또는 서비스 문제로 내 전화 요금 내며 그 긴 긴 안내 멘트를 이기고 연결되는 사람들인데, 이미 여보세요! 한 마디로 분노를 표출하는 분들이 부지기수다. 


나에 대한 의문 모를 적대심을 가진 사람과 통화하는 것. 

어떤 티브이 방송에서 출연진들이 콜센터를 체험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출연했던 한 연예인은 방금 막 울린 전화 한 통을 받고, 끝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다수의 관중 앞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담력 큰 연예인도, 형체 없는 성난 전화 한 통에 자리를 뛰쳐나간 것이다. 




중요한 건 콜 수량이 아니다. 


우리는 늘, 비장한 얼굴로 탄창을 돌리는 러시안룰렛 참가자들처럼 전화를 받아야 한다. 이 고객이 나를 향해 (말로) 총을 쏠 지, 아닐지 긴장하면서. 










처음 본 사람에게 반말(또는 욕설) 하지 않기.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의 말도 들어주기. 말을 할 때는 천천히 또박또박 생각하며 내뱉기. 


C급 콩가루 집안에서 자란 나도 이 정도의 가정교육은 받고 자랐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 보니 이 기본예절도 안 지키는 사람들이 천지 삐까리다. 여보세요 로 전화가 시작되면 정말 다행이지, 차마 이 곳에 적지 못하는 욕설로 대화의 문을 여는 사람도 많다.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욕들의 파티. 


물론 화가 나셨을 수도 있다. 상담원들의 대처가 미흡했다거나, 상품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거나. 그래도 너와 나는 모두 한국인이기에 대화로 풀 수도 있을 것이다. 제발 그렇게 해주시면 직원들 역시 열과 성을 다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요.





한 때 사이다 썰로 유행했던 영상 하나가 있다.

술 취한 취객이 대리기사와의 다툼으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온갖 욕이 난무하는 와중에 전화를 받는 상담원도 걸쭉한 말솜씨를 자랑하며 사이다를 날려주던 영상. 니 돌았나? 하니까 그래, 나 돌았다. 욕도 골고루 못하는 새끼가 어쩔 건데? 라며 내 심금을 울리던 그 영상.


그 영상이 유명해진 이유는 우리 마음에 스프라이트를 날려주는 상담원의 말솜씨 때문이지, 그 앞전에 난무했던 취객의 욕설 때문이 아니다. 무슨 놈, 무슨 새끼, 무슨 년 다 나오던 그 대화 때문이 아니라 항상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굽혀야 했던 상담원이 같이 라이트 훅~ 쨉 쨉! 어퍼컷! 을 날리며 싸우던 게 적잖이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세월이 흘러 강산이 변한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그렇다. 그런 욕설과 반말, 인격모독은 이슈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이 너의 안부는 안녕하냐며 강렬한 첫인사를 건넨다. 



당신의 멘탈이 유리든, 비브라늄이든 상관없다. 예고 없이 날아오는 총알은 반드시 당신에게 상처를 남길 것이다. 










알고 지내던 지인은 몇 년 전부터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다. 


분명 고객이 쓴 만큼 돈이 나왔고, 그 요금에 대해 안내를 했는데도 (목록까지 하나하나 읽어주었단다.) 아니라고, 이건 내가 쓴 게 아니고 너희들이 나에게 사기를 치고 있는 거라고. 찾아가서 지금 나랑 전화하는 년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단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아, 그런다고 설마 진짜 찾아오겠어? 너무 마음 쓰지 마, 언니 잘못도 아니잖아. 하고 위로를 해주었다. 정말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설마 하는 예감은 슬플 만큼 불행한 결과로 돌아왔다.



고객은 진짜로 지인의 회사에 찾아왔다. 씩씩 거리며 사무실 앞까지 들어와 문을 두드렸고, 놀란 직원이 어떻게 오신 거냐고 묻는 틈을 타 회사 내부로 진입했다고 한다. ㅇㅇㅇ! ㅇㅇㅇ가 누구야?! 나랑 통화한 ㅇㅇㅇ!!! 서슬 퍼런 목소리에 지인은 벌벌 떨며 몸을 피했고, 관리자가 내려와 진정하라는 말에도 본인의 우산을 집어던지고, 수화기를 쾅쾅 내려찍다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것이다.


하마터면 이 도시괴담 같은 얘기를 전해 듣는 나까지 기절할 뻔했다. (알고 보니 지인이 취직하기 전에도 몇 번이나 같은 일로 소란을 피운 적이 있는 고객이었다고 한다.) 어찌 됐든 전화기 속에서 말로 사람을 조지던 고객은, 아무 죄 없는 상담원을 쥐 잡듯 잡기 위해 친히 사무실까지 행차하신 게 아니던가. 그 의지라면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것도 어려운 건 아니겠다 싶었다. 지인 역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그때부터 길거리에서 이어폰도 제대로 끼지 못한다고 했다. 그 고객이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 자신을 죽일 것 같다고, 그게 너무 무섭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바가지요금, 부가 서비스 항목이 아니었다. 기본 통신료와 진짜로 본인이 쓴 요금이 맞았다고 한다..)




정말 슬프게도 이런 일은 어느 한 회사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닐 것이다. 고객센터가 있는 회사라면 어디든 가능한 이야기다. 


내 지인이 한 거라곤 고객이 이용한 서비스 목록을 알려준 죄 밖엔 없다. 대체 이 대화 어디에서 화가 나 찾아온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생각해 보자. 과연 이런 고객들을 우리가 말로써 진정시킬 수 있을지를.


나는 아니라고 본다. 어떤 상담원은 몇 시간 내내 본인의 죄도 아닌 일을 사과하다 통화 중 기절했다. 기절하는 순간까지도 고객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이렇듯 우리의 상식으로는 달래지지 않는 고객들이 존재한다. 이 사람들이 원하는 건 보상도 아니요, 상담원들의 사과도 아니다.


넌 내 밑에 있으니 내 맘대로 휘두르겠다는 권력이다. 

상담사들의 처우가 점점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열약하다. 이런 위협에도 취할 수 있는 조치도 없을뿐더러, 대부분의 콜 센터는 고객에게 언어폭력을 당한 이후에도 그 콜을 내가 받아 끝내야 하는 시스템이므로. (난 정말 서비스직, 콜 센터, 고객센터 외 모든 전화 업무를 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회사 다니며 주량만 는 것 같다.. 스트레스엔 코라도 삐뚤어져야 하는데, 이마저도 요즘은 할 수 없어 슬프다... 




구구절절 말이 길었으나,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비브라늄보다 더욱더 강력한 멘탈과, 누가 뭐라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스킬과, 정말 돈이 급해서 어떠한 언어적 폭력도 견뎌낼 수 있을 때. 이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고객센터 지원을 다시, 다시, 또다시 생각해 보는 걸 추천한다. 


그냥 해보지, 뭐~ 하고 들어왔다간 교육(같지도 않은 교육)만 받다 끝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돈도 백 프로 못 받을 확률도 크고.)





그러니 나의 시간과, 멘탈과, 건강을 위해서라도. 우리. 더 좋은 직장을 찾아보아요.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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