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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롱 Mar 24. 2021

아부지가 비비빅을 사오셨던 이유.

선생님, 제 통장이 이상해요. 돈이 자꾸 줄줄 새는 것만 같아요.



아빠는 외부인이었다. 

지금 와서 그런 소릴 했다가는 천하의 불효 막심한 놈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30년 동안 지켜본 바로 그랬다. 아빠는 집구석에 관심이 없는 외부인이었고, 엄마는 어떻게든 당신이 가지고 있는 불행을 자식들에게 나눠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같았다.


한 마디로 콩가루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소리다. 상품 가치도 없는 C급 콩을 빻아서 나온 가루 같은 가족. (에이, 그래도 어떻게 부모님에게 그런 소리를 할 수가 있어?라고 물어보신다면 언제든지, 이 밤의 끝을 잡고 내 불행 서사를 읊어줄 자신도 있다. 내 유년 시절 스토리를 들으면 누구든 C급 콩가루 집안이라는 걸 인정할 거다. 흑흑.)


아무튼 나는 그런 가정에서 홀로 컸다. 집은 늘 가난했고, 부모님은 치고받고 싸우기 바빴으며, 계획도 없이 셋 씩이나 낳아 놓은 아이들은 방치 속에서 아주 딱딱한 심장을 지닌 성인이 되었다. 그런고로 남들은 듣기만 해도 뭉클해진다는 '부모'라는 단어에 대한 추억도 없는 편인데. 딱 하나. 아빠를 생각하면 같이 딸려오는 단어가 있다.


그건 바로 비비빅

아빠는 이따금 술에 잔뜩 취해 까만 봉지 가득 비비빅을 사 왔다. 당시 내 최애 아이스크림은 월드콘과 찰떡 아이스였는데, 그런 취향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꾸준히 비비빅만 사다 나르셨다. 



"아빤 비비빅 안 먹어. 너네나 먹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아빠는 봉지를 내팽겨 친 채, 흙투성이가 된 몰골로 잠에 들었다. 나와 형제들은 이게 지금 우리 좋으라고 사다준건지, 어울리지도 않는 가장 노릇을 해보겠다고 본인 만족을 위해 이걸 사온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결국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채, 비비빅은 성에 낀 냉동고에 쌓여만 갔다. 



아무도 먹지 않는 비비빅.

가끔 놀러 온 친구가,



"야, 너네 집에 비비빅 왜 이렇게 많아? 너 이거 좋아해?"



하고 물어볼 때마다 이상하게 우울해졌던 비비빅.

아빠는 가끔 아무도 먹지 않는 비비빅을 사 오셨다.





먹여 살릴 입이 생기니, 알겠더라고요.





요즘 들어 번아웃 증세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상담을 하다가도 갑자기 짜증이 솟아오르고,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왜 자꾸 반말하지? 왜 나한테 난리야? 하나하나 토를 달고 있다. (물론 속으로만.) 현재는 그렇지만 아차 하는 순간에 저 가시 돋친 말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까 봐 조금씩 겁이 난다. 


일하기 싫다. 가 아니라 그냥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면 좋겠다. 일 안 해도 되니까. 가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요즘. 그럼에도 내가 멋지게 사직서를 던지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내 마음을 흔드는 핑크젤리. 하... 벌써 보고싶다, 내 고양이.





내게는 먹여 살릴 고양이가 있다. 

올 해로 지구에 온 지 6년 된 내 고양이. (이 고양이와의 만남도 아빠의 고집 때문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는 편의점에서 천 원짜리 삼각김밥을 먹어도, 얘만은 2킬로에 사오만 원씩 하는 고급 사료를 먹여야 안심이 된다. 캣타워도 원목으로 된 거, 스크래쳐 역시 튼튼하고 먼지 잘 안 날리는 원목 제품으로. 식기 역시 관절 건강을 위해 각도가 높고, 고급 유리 또는 스텐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모래는 또 어떠한가. 냄새도 잡고 먼지도 날리지 않는다는 최고급 모래만 쓰지 않던가.


보고 자란 가정의 형태가 우리 엄마 아빠라 애초에 비혼, 비출산을 다짐한 나에게 내 고양이는 자식과도 같은 존재다. 내가 힘들어도 더 좋은 걸 해주고 싶은 사랑스러운 나의 동반자. 








"고롱씨, 이번엔 정말 퇴사해요?"



새벽 내내 그래. 퇴사하자. 어디든 못 가겠어? 이 많은 회사 중에 내 자리 하나 없겠어? 다짐해 놓고 또다시 유야무야 답을 흐렸다. 글쎄요. 마음만은 그렇게 하고 싶죠. 근데 제가 먹여 살릴 입이 하나 있어서. 하하.


주소 오기입으로 택배가 잘못 배송됐다는 컴플레인을 해결하고 난 뒤라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은 하루였다. (물론 주소를 잘못 쓴 건 고객 본인이었다.) 그래도 맞아요, 저 퇴사할 거랍니다! 당당하게 외치지 못했다. 


고양이는 본인의 선택으로 내게 온 게 아니다. 고양이를 평생의 동반자로 맞이한 건 이유가 어찌 됐건 나다. 아프면 케어해 주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마련해 줘야 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더 좋은 집으로 입양되어 행복한 묘생을 보낼 수도 있었을 내 고양이에게 미안해서라도 나는 경제활동이 끊겨서는 안 되었다.



"다음 달까지 조금 더 생각해 보려고요."

"잘 생각했어요. 이 시국인데 그래도 붙어있을 때까진 붙어 있어야지."

"되게 웃기지 않아요? 매번 그만둔다 어쩐다 징징 거려놓고, 3년 넘게 여기 붙어 있는 거?"

"뭐 다들 그런 거 아니겠어요. 나도 이번 달 카드값만 갚으면, 할부만 끝나면, 보험금만 처리하면 하고 버티는 거죠."



근데 그건 내가 정년을 채울 때까지 반복될 거 같아요.


왜 요즘 그런 말 있던데요? 시발 비용. 버티고 버티다 안 되겠을 때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도 질러야 하니까 쓰게 되는 거. 내가 그래서 할부가 안 끊기잖아요. 그래서 이것만 다 갚으면 그만둔다는 말도 매년 미뤄지고. 다 그래요. 작가는 이 책만 내면 절필한다, 자영업자도 이 메뉴만 개발하고 문 닫는다 해도 어떻게 그러겠어요?


인간이 사는 데는 돈이 필요하고, 또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거지.



"고롱씨 퇴사 못했다고 부끄러워하거나 그러지 말아요. 다 그래요."

"(킁) 네."

"집 가는 길에 맛있는 거 하나 사서 가족들이랑 먹어요. 그럼 그게 기분전환이지 뭐."



그래.

그게 다 기분 전환이지.


내 고양이 맛있게 먹일 츄르 한 봉지 사들고 집에 가는 거. 그게 바로 사는 이유지, 뭐.










아빠는 여전히 술에 취하면 군것질 거리를 사 온다.


그리고 서른이 된 나 역시, 일주일에 두 어번은 고양이 간식을 잔뜩 사들고 퇴근한다.



아빠가 나를 낳고 키웠을 나이가 되어보니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아빠가 왜 아무도 먹지 않는 비비빅을 사서 귀가했는지. 힘든 하루를 견디고, 이 하루를 견딘 나에게 줄 보상을 받고 싶었겠지. 


아마도 그 보상은 비비빅을 보고 좋아할 자식의 얼굴이었으리라. (그래도 아빠는 아빠라고 말이야.) 가난한 주머니 사정 탓에 가장 싼 비비빅 몇 개를 골라 오면서도 그 보상을 받고 싶어 두근거렸으리라. 나는 이제 그 마음을 안다. 


그 시절로 돌아가 아빠를 끌어안아 줄 수는 없어도, 이젠 



"아니 종류 좀 바꿔 봐. 언제까지 비비빅만 사 올 거야?"



하며 비비빅의 껍질을 벗겨낼 정도의 어른이 되었으니까. 

크으. 으른의 맛이란 참으로 달콤 쌉싸르하구나.





나는 오늘도 진상이 던지는 폭탄을 피해 열심히 전쟁 같은 회사 생활을 견딘다. 그리고 오늘도 츄르 한 봉지를 들고 퇴근할 예정이다.


꼬리를 잔뜩 치켜세운 채 나를 반겨줄 내 고양이, 내 동반자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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