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소유 May 15. 2024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의식과 무의식의 편견과 갈등을 넘어..

문동 2023 젊은 작가상 대상, 이미상 작가

A4용지 기준, 15 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인데 이해하기 어려워서 두 번을 읽었다.

한자리에 앉아서 두 번 읽은 소설은 이 소설이 처음이다.

그동안 너무 대중소설만 읽었나 보다.


우선 본 단편의 제목부터 이해하기 힘들었다.

읽고 보니 초중반에 고모에 대한 내용이 나오며, 그 고모의 별명이 ‘모래 고모’라고 나온다. 주먹을 잡는 보리, 쌀 놀이를 할 때의 그 보리와 쌀보다도 못하다는 의미로 모래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사 남매(아들 둘, 딸 둘) 중 막내라고 하는데 아들과 딸을 이미 키워둔 집안이라 크면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한 모습이다.


목경과 무경은 사람 이름이다.

사람 이름이 왜 이렇게 어렵나 해서 찾아보니 상징어로 보인다.

어쨌든 목경과 무경은 자매이고 그들의 고모가 모래 고모다.

목경이 동생이고 무경이 언니다.


게다가 이 소설을 이해하기 힘든 이유 중에 하나로는 시공간의 이동이다.

현재와 과거, 그리고 갑작스러운 장소의 이동이 와닿지 않았다.


현대문학의 문법이란 대중서에 익숙한 내겐 어려웠다.


두 번째 읽으며 조금 이해한 줄거리는 사실은 별 내용은 없다.

목경이 카페에서 남의 대화를 엿듣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소설에 대한 대화를 엿듣게 되는데 소설에 ‘한 방’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간단한 소동이 일어난다.

[이미지만을 기억할 것이다.]


갑자기 모래 고모의 장례식을 떠올리며 시간과 공간이 바뀐다.

바쁜 부모님 밑에서 목경과 무경 자매는 거의 고모가 돌봐주었다.

고모와 목경이 주로 가까이 어울려 놀았고, 언니 무경은 혼자 시간을 보낸 사람처럼 나온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무경의 비밀 리스트를 찾았다.]

[천장의 리스트]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봤다.


상징어 같다.

천장에는 어떤 리스트가 있는데 한국에 번역본조차 나오지 않은 외국 작가들의 이름이었다.

목경은 은근히 무경을 질투했다.


또다시 갑작스러운 시공간의 전환이 일어난다.

자매는 고모를 따라 꿩 사냥을 나가게 된다.

고모는 엽총이 있는데 총의 별명이 [쥬츄]다.

별명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혹은 내가 두 번이나 읽었음에도 무심코 넘어갔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총을 잃어버려서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

총을 찾아서 대여기관에 반납해야 하는데 날이 어두워진다.

두 사나이를 만난다.

파란 남방과 빨간 남방의 사나이다.


상장어 같다.

파란 남방은 적대적이지만 빨간 남방은 조금이나마 호의적이다.

이들은 시답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는데 여기서 파란 남방의 말이 인상적이다.


[할 수 있는데 하기 싫은 거잖아. 만약 당신이 다리가 부러져서 걸을 수 없고, 산을 오를 수 없고, 총을 찾으러 갈 수 없다면 나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도와줄 거야. 그런데 아니잖아. 할 순 있는데 하기 싫은 거잖아. 그런데 내가 왜 당신을 도와야 해? 더군다나 당신이 우리에게 작은 기쁨도 주지 않는다면.]


갑자기 시공간의 전환이 또 일어나고, 무경이 아마도 사라졌다가 발견된 모습이다.


무경이 말했다.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 고모의 그 일을, 내가 했어요.]


화자는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같은데 화자가 다시 반복해서 말해준다.

[그것은 할 수 없는 일과 다르다. 할 수는 있다. 할 수는 있는데 정말 하기 싫다. 때려죽여도 하기 싫다. 그러나 정말 때려죽이려고 달려들면 할 수는 있는 일이다. 그것은 가능이 아니라 선택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할 순 있지 만 정말 하기 싫은 일, 때려죽여도 하기 싫은 일, 실은 너무 두려운 일, 왜 할 수 없는 일보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 사람에게 더욱 수치심을 안겨주는 것일까.]


시공간은 다시 현재로 온 것 같다.

그녀가 관찰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특히 불쑥 솟은 한순간과. 그 아래 깔린 시시한 것들에 대해. ‘한방’이 지난 특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북경은 불현듯 옛날을 회상한다.

아이의 콧물로 더러워진 목욕탕에 있는 고모와 언니를 회상했다. [아이와 아이 엄마도. 그들은 그대로 탕 안에 있었다. 수증기가 밀려왔다.]

극상 난이도의 단편소설은 그렇게 끝난다.


아무래도 이 단편소설의 포인트는 할 수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에 관한 내용으로 보인다.

사실 그 내용으로 말과 글이 반복되는 구성이다.

어쩌면 모든 배경이 저 말을 이끌어내기 위한 상황 설정인지도 모르겠다.

불행하게도 소설이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고 그 배경에 정신 못 차리는 나 같은 독자가 있을 법하다.

어쩌면 두 번 읽은 나조차도 어디 가서 자신 있게 난 이 소설을 알고 있다고 하기가 어렵다.


기가 막히게도 요즘 회사에서 할 수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에 대해 경험하고 있다.

결국 미루고 미루다가 대충 해버리거나 혹은 서로 기분이 나쁘게도 대신하게 되는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듣는다.

당연하겠지만 아쉬운 소리를 듣고 할 말은 없다.


대신할 수 없는 일은 결국에는 내가 해야 하는데 정말 손대기도 싫은 일이다.

의지의 부족인지, 의욕의 부족인지 모르겠다.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


난 모래 고모랑 놀고 싶은 묵경이고,

결국 뭔가를 대신해 줄 무경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나중에 평론 글을 읽고..
여성을 향한 무의식적 언어 폭력, 차별, 편견, 관습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소름이 돋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