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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May 15. 2024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의식과 무의식의 편견과 갈등을 넘어..

문동 2023 젊은 작가상 대상, 이미상 작가

A4용지 기준, 15 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인데 이해하기 어려워서 두 번을 읽었다.

한자리에 앉아서 두 번 읽은 소설은 이 소설이 처음이다.

그동안 너무 대중소설만 읽었나 보다.


우선 본 단편의 제목부터 이해하기 힘들었다.

읽고 보니 초중반에 고모에 대한 내용이 나오며, 그 고모의 별명이 ‘모래 고모’라고 나온다. 주먹을 잡는 보리, 쌀 놀이를 할 때의 그 보리와 쌀보다도 못하다는 의미로 모래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사 남매(아들 둘, 딸 둘) 중 막내라고 하는데 아들과 딸을 이미 키워둔 집안이라 크면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한 모습이다.


목경과 무경은 사람 이름이다.

사람 이름이 왜 이렇게 어렵나 해서 찾아보니 상징어로 보인다.

어쨌든 목경과 무경은 자매이고 그들의 고모가 모래 고모다.

목경이 동생이고 무경이 언니다.


게다가 이 소설을 이해하기 힘든 이유 중에 하나로는 시공간의 이동이다.

현재와 과거, 그리고 갑작스러운 장소의 이동이 와닿지 않았다.


현대문학의 문법이란 대중서에 익숙한 내겐 어려웠다.


두 번째 읽으며 조금 이해한 줄거리는 사실은 별 내용은 없다.

목경이 카페에서 남의 대화를 엿듣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소설에 대한 대화를 엿듣게 되는데 소설에 ‘한 방’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간단한 소동이 일어난다.

[이미지만을 기억할 것이다.]


갑자기 모래 고모의 장례식을 떠올리며 시간과 공간이 바뀐다.

바쁜 부모님 밑에서 목경과 무경 자매는 거의 고모가 돌봐주었다.

고모와 목경이 주로 가까이 어울려 놀았고, 언니 무경은 혼자 시간을 보낸 사람처럼 나온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무경의 비밀 리스트를 찾았다.]

[천장의 리스트]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봤다.


상징어 같다.

천장에는 어떤 리스트가 있는데 한국에 번역본조차 나오지 않은 외국 작가들의 이름이었다.

목경은 은근히 무경을 질투했다.


또다시 갑작스러운 시공간의 전환이 일어난다.

자매는 고모를 따라 꿩 사냥을 나가게 된다.

고모는 엽총이 있는데 총의 별명이 [쥬츄]다.

별명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혹은 내가 두 번이나 읽었음에도 무심코 넘어갔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총을 잃어버려서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

총을 찾아서 대여기관에 반납해야 하는데 날이 어두워진다.

두 사나이를 만난다.

파란 남방과 빨간 남방의 사나이다.


상장어 같다.

파란 남방은 적대적이지만 빨간 남방은 조금이나마 호의적이다.

이들은 시답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는데 여기서 파란 남방의 말이 인상적이다.


[할 수 있는데 하기 싫은 거잖아. 만약 당신이 다리가 부러져서 걸을 수 없고, 산을 오를 수 없고, 총을 찾으러 갈 수 없다면 나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도와줄 거야. 그런데 아니잖아. 할 순 있는데 하기 싫은 거잖아. 그런데 내가 왜 당신을 도와야 해? 더군다나 당신이 우리에게 작은 기쁨도 주지 않는다면.]


갑자기 시공간의 전환이 또 일어나고, 무경이 아마도 사라졌다가 발견된 모습이다.


무경이 말했다.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 고모의 그 일을, 내가 했어요.]


화자는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같은데 화자가 다시 반복해서 말해준다.

[그것은 할 수 없는 일과 다르다. 할 수는 있다. 할 수는 있는데 정말 하기 싫다. 때려죽여도 하기 싫다. 그러나 정말 때려죽이려고 달려들면 할 수는 있는 일이다. 그것은 가능이 아니라 선택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할 순 있지 만 정말 하기 싫은 일, 때려죽여도 하기 싫은 일, 실은 너무 두려운 일, 왜 할 수 없는 일보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 사람에게 더욱 수치심을 안겨주는 것일까.]


시공간은 다시 현재로 온 것 같다.

그녀가 관찰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특히 불쑥 솟은 한순간과. 그 아래 깔린 시시한 것들에 대해. ‘한방’이 지난 특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북경은 불현듯 옛날을 회상한다.

아이의 콧물로 더러워진 목욕탕에 있는 고모와 언니를 회상했다. [아이와 아이 엄마도. 그들은 그대로 탕 안에 있었다. 수증기가 밀려왔다.]

극상 난이도의 단편소설은 그렇게 끝난다.


아무래도 이 단편소설의 포인트는 할 수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에 관한 내용으로 보인다.

사실 그 내용으로 말과 글이 반복되는 구성이다.

어쩌면 모든 배경이 저 말을 이끌어내기 위한 상황 설정인지도 모르겠다.

불행하게도 소설이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고 그 배경에 정신 못 차리는 나 같은 독자가 있을 법하다.

어쩌면 두 번 읽은 나조차도 어디 가서 자신 있게 난 이 소설을 알고 있다고 하기가 어렵다.


기가 막히게도 요즘 회사에서 할 수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에 대해 경험하고 있다.

결국 미루고 미루다가 대충 해버리거나 혹은 서로 기분이 나쁘게도 대신하게 되는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듣는다.

당연하겠지만 아쉬운 소리를 듣고 할 말은 없다.


대신할 수 없는 일은 결국에는 내가 해야 하는데 정말 손대기도 싫은 일이다.

의지의 부족인지, 의욕의 부족인지 모르겠다.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


난 모래 고모랑 놀고 싶은 묵경이고,

결국 뭔가를 대신해 줄 무경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나중에 평론 글을 읽고..
여성을 향한 무의식적 언어 폭력, 차별, 편견, 관습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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