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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May 16. 2024

<잔인한 도시>

동화 같지만 너무나 현실적이라 잔인한 세상..

1987년 발표된 이청준 작가의 중편 소설

서사는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어떤 사내가 등장한다. 정확한 나이가 설명되고 있지 않지만 묘사를 보아 아마도 나이가 지긋한 노인으로 상상된다. 교도소에서 출소했다고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나중에 대화에서 사실로 확인된다. 어쩌면 꾸며낸 거짓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교도소에서 형량의 만기를 채우고 출소하는 경우는 드문 일 같다.


사내는 밖으로 나가는 길목에서 어떤 가게를 발견한다. 젊은 사장이 운영하는 새를 팔고 있는 가게다. 사람들은 날개를 팔고 있다고도 말한다. 사내는 [망각의 골목]에서 벗어나 가게 주변을 어슬렁거리지만 [가겟집 젊은이]나 손님들은 사내를 신경 쓰지 않는다.


[사내는 결국 자신의 호기심을 숨길 수가 없어졌다. 그는 마치 어른들의 은밀스럼 비밀을 엿보려 드는 어린애처럼 신중하게, 그리고 자신의 호기심 때문에 끝내는 스스로를 억제할 수가 없어져 버린 장난꾸러기처럼 순진하게, 한 발짝 한 발짝 두 사람 곁으로 거릴 좁혀 들어갔다. 그리고 그 흥정을 끝낸 손님이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 모처럼 만의 구경거리를 중단해 버리지나 않을지 염려된 듯, 은밀하고도 조급스런 표정으로 작자의 거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중년의 방생자]라고 나오는 손님은 새를 구입해서 가게 앞 숲으로 방생했다. 그때부터 사내도 비용을 지불하고 새를 구입하기 위해 애쓴다. 숲이나 길가에서 [쇠붙이]라고 표현되는 쓰레기와 담배꽁초, 더불어 동전닢을 줍기 시작한다.


[한 번은 뭇사람의 발길이 흙을 굳히고 지나간 벤치 밑에서 그가 그 굳은 흙 한 덩어리를 조심스럽게 파내어 들었는데, 그는 용케도 그 흙덩이 속에서마저 그의 오른편 주머니 쪽에 간직해 넣을 작은 쇠붙이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흙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마치 흙의 질감이 내 손에 느껴지는 것 같다.


사내는 응당 비용을 지불하고 새를 구입해서 방생한다. 비용이 한두 푼 부족하지만 젊은 사장이 그냥 봐준다. 사내는 본인 이야기를 자랑하듯 잘 나가던 시절 이야기, [가막소] 동료들 이야기, 가족, 아들 이야기를 하지만 젊은 사장은 상대하지 않고 비웃는다.


사내는 말한다. [우리가 저 안에서 생각하고 행하는 일들이란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그걸 거짓말이라고 여기려 드는 사람은 없어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걸 말할 필요도 없는 거요.]


가겟집 젊은이는 그 사내를 [잔인스럽게 비웃고 있었다]고 표현되었다.


내겐 이 장면에서 잔인스럽게 비웃는다는 표현이 눈앞에 그려지듯이 기가 막혔다.


가게는 생각보다 장사가 잘 된다. 어떤 날은 어느 손님이 새를 구입해서 집에 가져가서 자녀들과 방생하겠다고 한다. 젊은 사장은 절대로 안 된다며 가게 앞에서 방생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한다. 사내는 젊은 사장의 마음에 들고 싶어 사장의 편을 든다.


이때 뭔가 이상했다.


사내는 숲에서 노숙을 하며 비밀을 알게 된다. 새들이 밤에 빛을 맞고 후드득 떨어지는 공포스러운 광경을 보고 품 안에 날아온 새의 날개 안쪽의 상처를 발견한다. 새들을 방생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멀리 날아갈 수 없도록 수를 써둔 것이다.


숲에서 공포를 견디는 사내의 상황 묘사가 내게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일으킬 정도로 몰입된다.


나중에 사내는 그 낯익은 새를 가게의 새장 안에서 다시 발견하고 확신을 갖는다. 사내는 몹시 화가 나지만 사장과 눈빛 교환만 하고 다시 만난 새를 정당한 가격에 구매해서 가게 밖을 나선다. 그리고 남쪽으로 간다.

[사내는 뭔가 더욱 은밀하고 소중스런 자신만의 비밀을 즐기듯 몽롱스런 눈길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처럼 남쪽의 이상향을 향한 매듭이라고 생각된다.


소감

내 마음을 찢었다. 2023년 젊은 작가상을 수여한 현대소설보다도 좋았다. 아마도 고전을 좋아하는 내게 고전에 가까운 문체가 더 익숙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인물의 설정부터 서사, 묘사, 결말까지 완벽했다. 종종 옛날의 문법이 익숙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소설이 보여주는 서사가 그것을 뛰어넘었다. 사내는 어쩌면 모든 상황들을 상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직도 교도소에서 이상향을 꿈꾸고 있었을 것으로 상상된다. 젊은 사장, 손님, 새들은 그저 어떤 상징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슬픈 소설이다. 이 소설은 이상향을 찾고 싶지만 현실에 부딪혀 결국 찾기 힘든 인간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감히 평가하기에 너무나 거대한 거목과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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