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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May 16. 2024

다시 태어나도 부부로 만나자는 당신

고맙습니다.

우리는 양가 모두 가정사정이 어려운 시절에 만났습니다. 장남인 저와, 큰 딸인 당신과... 집안 걱정만 하며 성장해 온 우리에겐 아기자기한 연애시절도 없었죠. 난생처음 설레는 마음으로 만난 당신은 너무나 순수하고 착하기만 하였답니다. 1년여의 연애라고도 할 수 없는 사귐만으로 우리는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결혼했죠. 벌써 70살을 바라보는 세월이 지나 결혼 37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너무나 힘들게 당신과 함께 했던 것 같아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도 당신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답니다. 9년을 중풍으로 누워 지내시다 돌아가신 아버지. 그래도 자식에 대한 속정은 얼마나 깊으셨는지 요즘 들어 더욱 생각납니다. 내 자신이 당신과 자식들한테 그 사랑의 백분의 일, 천분의 일 아니 그 이상의 티클만치라도 베풀고 살고 있는지 반성하고 있습니다. 장의사만 있던 그 시절 3일 동안 우리 집 아버지 초상을 돌보아 주시며 이렇게 조문객이 없는 상가 집은 처음 본다고 장의비용도 깎아 주셨죠. 그때 차마 말은 못 했지만 이렇게 살아온 시간들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오. 뚜렷한 직장생활도 하지 않고 그저 술만 마시며 허송세월로 방황했던 그 시절을...... 아버지를 보내는 날 어머니의 그 깊은 슬픔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난 태어나서 친척이 없어 학창 시절 명절날 성묘 가는 친구가 너무나 부러워 아버지 장례 치르던 날, 돈이 한 푼도 없으면서 무작정 산소를 만들어 달라고 했었죠. 운구할 사람도 없어 한 동네 사는 고등학교 동창 주식이가 안타까워서 자기 트럭으로 친구들을 모아 운구를 했죠. 주안 주공 5층 아파트에서 꼬불꼬불 내려와 부평 묘지도 산꼭대기이다 보니 운구하기가 무척 힘들었죠. 그 고마웠던 친구도 아침운동을 하던 중 40세도 안되어 심장마비로 일찍 죽었죠. 장례 치르고 나중에 산역 하신 분에게 산역비 드릴 돈이 없다고 눈물로 사정사정하며 나의 개인 사연을 말씀드리고 산역 비용을 그분이 먼저 계산하고 우리는 나누어 드렸죠. "산역비용도 나누어 주는 사람도 다 있네"하시며 어이없어하셨죠.. 부평 공원묘지 인근에 사시는 통장님이셨는데, 매년 명절이면 자그마한 선물을 가져다 드리며 인사드렸는데, 그분도 이젠 돌아가셨지요.


아버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어 젊은 시절부터 고생만 하셨던 어머니도 허리와 관절병으로 쓰러지셨죠. 10년 넘어 거동도 못하시는 어머니를 당신이 식사는 물론 배설하실 힘이 없어 관장약을 넣고, 상처 안나시게 당신이 만든 조그마한 수저로 배설시키셨죠. 조금이라도 속이 편하셔야 한다고... 10년이 넘은 오랜 시간 어머니 병수발을 나에겐 당신이 있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거랍니다. 그 와중에 우리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1년 후인가 저혈압으로 장모님이 돌아가시어 일찍이 상처하신 상태였던 친정아버지께서 고혈압으로 쓰러지시어 거동을 못하시게 되고... 양쪽 집안을 오가며 간병해야만 했던 당신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저에겐 살아있는 천사의 모습이었습니다. 더욱이 내 여동생까지 직장암 말기로 시한부 인생이었고...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예전의 그 힘들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려 먹먹해질 뿐입니다. 저와 결혼하여 사는 동안 자신을 희생하고 병수발로만 보낸 당신입니다. 누가 그때 그 고통을 나누어 줄까? 힘들었던 시절 당신은 제가 있어 이겨냈다고 하지만, 저는 당신이 옆에 계시어 감당할 수 있었다오. 당신 혼자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며 투다리 호프집에 앉아 울던 시간들... 퇴근 후 당신은 집에 없으면 그곳에 앉아 울고 있었죠.


벌써 어머니 보내 드린지도 20년이 되어 갑니다. 2000년 8월에 어머니(마리아)는 만수1동 성당 영안실에서... 그해 12 월에 여동생(마리아)은 연수동 성당 영안실에서... 어머니 가시는 길이 외로우실까 봐 같은 해에 주님께로 가셨죠. 우린 세례를 받아 친척이 아무도 없었지만, 성당 교우들의 기도와 봉사로 어머니와 여동생 모두 주님의 큰 은총 속에 보내드릴 수 있었지요. 세례 받던 날이 생각납니다. 1년에 한 번 하는 교리공부에 한 해는 실패하고, 다음 해에 우리 가족 4명이 개근하며 세례와 견진을 받았죠. 세례 때와 견진 모두 우리 부부가 성작 봉헌하는 큰 은총까지 받았죠. 감동받은 마음에 울면서 주님께 봉헌한 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답니다. 더욱이 축복받은 일은 병환 중에 누워계시던 어머니(마리아)가 하느님을 받아들이시고. 또한 종갓집 맏며느리였던 여동생(마리아)도 세례 받고 죽고 싶다 유언하여 종갓집 허락하에 같은 양이되어 하늘나라로 갔죠. 모두가 우리 곁을 떠나가 한없이 외롭지만 우리에겐 주님과 성모님의 가없는 은총으로 당신과 아들 야고보. 사도요한이 있지 않소. 더욱이 한가족이 된 며느리 베로니카. 한나와 손주 데레사. 안나. 미카엘까지 내려주심이 얼마나 크나큰 축복이며 행복인지... 남한 구석에 하나 남은 남동생도 술만 마시면 사고 치고 속만 썩이더니만 여동생 보낸 후 제 발로 찾아가 다니엘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나이 50살이 넘어 짝도 만나고. 지금은 뇌경색으로 쓰러져 제대로 사회생활은 못하지만 그래도 저 모습이라도 우리 곁에 있음이 축복이랍니다. 얼굴이라도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그다음 해 어머니의 선물인가 당신이 효행상까지 수상하고... 신문 인터뷰 때 당신은 내 몸 건강하여 누구라도 당연하게 모실 수 있는 은총을 받았을 뿐이라고, 지금도 순대가게만 지나가게 되면 그렇게도 좋아하시던 순대생각에 어머니가 그립다는 당신. 아무리 힘들었어도 당신은 내가 있어 이겨냈다고 하지만 난 당신이 있어 지금 이 시간이 있답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이 크나큰 주님의 은총을 무엇으로 갚을지 모르겠지만 그저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고 살아야죠. 갑상선과 고혈압. 어깨통증으로 건강을 잃어가는 것 같은 당신을 보면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당신 자신보다는 나와 애들한테만 신경 쓰는 당신이 안타깝습니다. 어디 아프지 말아요. 주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내리신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짊어지고 가면서 남들을 위하여 봉사해야죠. 우리보다 더 어렵고 고통받는 이들이 많을겝니다.


진심으로 당신을 만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가브리엘라께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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