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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소유 Jul 05. 2024

고장난 텔레비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텔레비전이 고장 났다.


집에는 만 7년 된 LG전자 최신 기술로 제작된 OLED 곡면 TV가 있었다. 아니, 이제 있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아내와 아이가 처갓집에 갔다. 오랜만에 영화 감상을 할 좋은 시간이다. 아내와 아이가 있을 때는 TV를 보지 않는다. 어느 날, 아이가 TV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고는 다짐했다. 아이 앞에서 TV를 보지 않기로. 그렇게 3년째 지키고 있다. 지금의 아이에게 아버지는 그저 책 읽으며 일하는 사람이다.


내 안의 영화에 대한 열망은 아내와 아이가 처갓집에 가면 폭발한다. 그런데 이럴 수가, TV가 켜지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방법을 동원해 봐도 절대로 켜지지 않는다. 이렇게 영화 감상의 꿈이 날아갔다.


다음 날 LG 서비스 기사를 불렀다. 패널 고장이란다. 갑자기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수리비는 150만 원이라고 하는데, 부품이 없어서 수리 불가란다. 어이가 없지만, LG 본사의 정책이 그렇다고 하기에, 그냥 폐기해 달라고 했다. 다행히 수리 불가로 출장비는 없었고, 폐기 또한 무상이었다. 그렇게 텔레비전을 버렸다.


한동안 어떤 좋은 TV를 구매할지 고민했다. 친구들이 저마다 들여놓은 최고급 TV를 눈독 들이고 있었는데 명분이 없었다. 이번 TV 고장은 아주 좋은 명분이다. 3일간 행복한 고민을 했다.


아내에게 가격이 250만 원 정도 든다고 했더니 놀란다. 본인은 150만 원 정도 생각했단다. 나는 그마저도 400만 원짜리를 살펴보다가 무려 절반을 줄인 것이라고 했다. 아내가 이번 기회에 TV 없이 사는 건 어떠냐고 지나가는 말로 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그러자고 했다. TV 없이 살자고 했다.


아내는 무심코 던진 말에 내가 그러자고 하니 흠칫 놀란다. 오히려 150만 원짜리라도 구매하자고 한다. 생각해 보니 아내도 나도 TV를 안 본 지 오래되었다. 나는 주로 책을 보고, 아내는 스마트폰을 본다. 심지어 TV로 음악이 나오는 채널을 켜서 음악 감상만 한 적도 있다. TV의 용도를 이상하게 사용하는 예시다.


집에는 TV가 당연히 있어야 하는 줄 알았다. 결혼 혼수에도 TV는 필수 항목이었다. 이번에 우연한 기회를 계기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깨버린 것이다.


TV가 없이 서랍장만 덩그러니 마주하고 있는 보름째,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 생활에 어떠한 변화도 없고 오히려 편하다. 이제는 TV가 있던 빈자리에 책장을 둘까, 다른 행복한 고민도 한다.


아내와 아이가 외출한 지금, 나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있다. 독서와 글쓰기에 시간을 더 쏟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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