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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소유 Jul 14. 2024

한석봉과 아들

처음부터 다시..

기나긴 하루였다. 아침부터 집 안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나는 책을 펼쳐 들고, 커피를 한 잔 타서 창가에 앉았다. 차가운 유리창 너머로 여름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책 속의 세계로 빠져드는 동안, 내 머릿속은 점점 현실에서 멀어졌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내게는 책뿐만 아니라 또 다른 임무가 있었다. 내 아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종종 스스로 놀기를 원하지만, 그들을 돕고 지켜보는 것도 부모의 역할 중 하나다. 오늘 아침, 아들과 나는 얼마 전에 함께 만든 옥스퍼드 블록 거북선을 재조립하기로 했다. 그것을 완성하면 새로운 블록 세트를 개봉해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아빠, 이거 다시 만들어야 해요?" 아들이 묻는다.


"그래, 우리가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처럼 역할을 바꿔보자," 내가 말했다. "나는 글을 쓸 테니, 너는 블록을 쌓아봐라."


내가 책상에 앉아 소설을 쓰기 시작한 동안, 아들은 블록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때때로 그에게 조언을 건네기도 했지만, 주로 그의 창의성에 맡겼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는 낮에, 아내는 저녁에 아들을 도우며 하루를 보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저녁 무렵, 아들의 작품을 다시 살펴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멀리서 보면 제법 그럴듯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밑바탕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전체 구조가 틀어져 있었다. 아들은 풀이 죽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처음에는 자신만만했지만, 다시 재조립해야 한다고 하니 실망이 컸던 모양이다.


"아빠, 왜 이렇게 됐어요?" 아들이 물었다.


"처음부터 잘못 시작했기 때문이야," 내가 설명했다. "나도 좀 더 자세히 봐줬어야 했어."


그날의 블록 놀이와 독서, 글쓰기는 묘하게 닮아 있었다. 글을 쓸 때도 처음부터 틀어지면, 내용이 산으로 간다. 최악의 경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오늘 집필한 웹소설이 그래서 아주 힘들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바로잡다 보니, 한 편의 기준인 5000자를 훌쩍 넘겨 6000자 가까이 쓰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과제로 힘든 하루를 보냈다. 아들은 블록을, 나는 글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아들과 함께 다시 시작한 블록 작업은 더욱 단단한 결속을 만들었다. 우리의 거북선은 마침내 완성되었고, 아들은 해냈다는 성취감에 미소를 지었다.


"아빠, 우리 다음엔 더 큰 거 만들자!" 아들이 말했다.


나는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우리 더 큰 도전을 해보자." 이렇게 우리는 또 다른 하루를 마무리했다. 기나긴 하루는 끝났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내일은 또 다른 도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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