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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소유 Aug 11. 2024

운명은 스스로 만드는 거야.

회의하는 회의론자들아..

또다시 반복되는 아침 회의 시간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지옥 팀은 공정 엔지니어와 장비 엔지니어로 구성이 되어 있다. 공정 엔지니어는 말 그대로 배터리 단위 공정을 관리하는 엔지니어이며, 장비 엔지니어는 배터리 장비를 관리하는 엔지니어다. 공정을 담당하는 엔지니어들은 보통 장비 엔지니어와 소통이 거의 없다. 장비 문제가 의심되는 경우 소통을 시작한다. 많은 경우가 그렇지만, 이런 경우 서로 소통이 안 되면 말싸움이 생긴다. 서로 예민한 경우 이러한 말싸움은 상호 간의 화를 초래한다. 팀장은 모든 것을 아울러야 한다. 하지만 강건함 팀장은 장비 엔지니어 출신으로 모든 일의 원인을 장비부터 의심한다. 강건함 팀장이 이끄는 팀의 아침 회의는 주관자가 따로 없다. 팀장이 모든 진행을 한다.


“안녕들 합니까? 강대진 파트장님아, 이물질 그래프 올라가는 거 경 파트장에게 얘기 들었죠? 확인되었나요? 아침부터 미안한데 이물질 들리는 그래프의 모양새가 상당히 보기 불편하네요.”


강건함 팀장이 불편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강대진 파트장은 장비를 담당하는 파트의 파트장이다.


“팀장님, 그게 말이죠. 저기 장비 쪽에 확인을 하고 있는데 전압이 흔들리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것의 영향보다는 장비 커버의 고무링이 닳아서, 고무링 교체를 해보고 있습니다.”


강대진 파트장이 대답했다. 강대진 파트장은 장비에 잔뼈가 굵다. 하지만 실무보다는 이론에 정통한 사람이다. 박사님처럼 안경을 쓴 모습에 늘 셔츠를 입고 팔을 걷어 올린 모습이다. 얼리어답터의 똑똑해 보이는 50대의 아저씨다. 별명이 강 박사님이다.


“그래요? 구리 차장님아, 고무링 교체 언제 했습니까? 그거 고무링 교체해서 되겠습니까? 교체 주기가 어떻게 되나요? 정해진 일정이 있나요?”


팀장이 구체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다. 강건함 팀장의 특징이다.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기면 구체적으로 파고든다.


“그게, 오늘 아침에 교체했습니다. 정확한 교체의 주기는 없는데, 이번에 교체해서 이물질 문제가 해결되는지 보고 관리 항목에 넣으려고요.”


구리 차장이 대답했다. 구리 차장 역시 장비에 잔뼈가 굵다. 하지만 강대진 파트장과 반대의 성향으로 이론보다는 실무에 정통한 사람이다. 언제나 이마에 땀을 흘리고 있는 50대 초반의 통통한 아저씨다. 현장에서는 호랑이 같은 성격으로 정비사들이 꼼짝 못 한다. 정비사 출신인데 사무직으로 직군 전환하여 차장까지 올라온 아저씨다. 순전히 몸을 굴려서 경험을 쌓아 올라온 사람이다. 강대진 파트장이나 구리 차장 둘 다 40대 후반인 팀장보다 나이가 많다. 그런데도 팀장이라는 직책 앞에서는 꼼짝 못 한다. 모두 그렇다. 그만큼 팀장이라는 자리는 책임도 막중하지만, 권한도 강력하다.


“아니 그게 말이라고 합니까!!?? 그러면 지금까지 무엇을 관리했다는 말입니까? 고무링 교체해서 안 되면 어쩔 건데요? 어느 세월에 장비 다 뜯어다가 한 개씩 점검해 보려고 합니까? 시간에 아주 여유가 있어요??”


강건함 팀장이 점점 목소리를 높여서 화를 내듯 쏘아붙였다.


“저기, 팀장님 진정하시고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원인 분석을 해서 보고 올리겠습니다.”


강대진 파트장이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얘기했다.


“강대진 파트장님아,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이물질이 이런 식으로 발생하면 내가 혼나요. 이제. 나도 답답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경 파트장님아, 공정 쪽은 별문제 없어요? 눈높이 산포 잡는 거랑 CAPA up 고민해 봤어요?”


이번엔 공정 직무로 팀장의 시선이 돌아왔다.


“네, 저기 회의 들어오기 전에 팀장님께 메일로 보냈습니다. 읽어보시고 궁금한 거 확인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경 파트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네, 확인해 보고 다시 얘기합시다. 내가 아주 장비 쪽 확인하느라 아침부터 진이 다 빠져요. 거기 막내, 김준용 사원아 넌 뭐 좀 하냐?”


팀장이 장비 엔지니어 막내 김준용 사원에게 기습 질문을 했다.


“네? 저요? 저, 저, 고무링 옮겼습니다.”


김준용 사원이 깜짝 놀라 아무 말이나 대답했다.


“저, 저, 저거 봐라, 뭐 옮겼다고? 그게 한 십 킬로 하더나? 구리 차장님아, 김준용 사원 좀 빨리 키워요. 강대진 파트장님도 구리 차장님도 이제 경력이 20년이 훌쩍 넘게 되었는데 후배 키워야지 뭐 합니까? 맨날 혼자 아등바등하지 말고 데리고 다니고 챙겨요.”


팀장이 얘기했다.


“에, 네, 알겠습니다.”


강대진 파트장과 구리 차장이 동시에 대답했다.


강건함 팀장은 한숨을 쉬며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우린 잠깐 남아서 얘기 좀 더 합시다.”


강대진 파트장이 얘기했다.


“맞아, 얘기 좀 더 하자. 저 양반 예전부터 맨날 무슨 일만 생기면 우리 장비 쪽만 들들 볶아대고, 못 해 먹겠네! 정말. 권준현 대리, 그 이물질 나오고 하는 거 공정 조건 변경으로도 개선 가능한 거 아니야? 예전에 해봤잖아. 왜 만날 우리만 갖고 그래. 장비 닦고, 고치고, 개조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사무실에만 앉아서 머리 굴리면서 맨날 뭐 하는 거야? 공정 쪽에서도 이물질 개선 가능한 조건을 가져와.”


구리 차장이 이때다 싶어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강대진 파트장과 구리 차장은 50대 초반으로 이제 40대 중반인 경호준 파트장보다는 어쨌든 회사 선배다. 그래서 예전부터 저런 식으로 편하게 얘기를 하고 있다.


“에이, 예전부터 이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닌데 왜 우리에게 그래요. 안 그래도 우리 쪽에서는 cleaning 주기 변경하는 방법이나, cleaning 공정 강화하는 것으로 검토하고 있었어요.”


권준현 대리가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급하게 짜낸 방법을 얘기했다.


[지이이잉..]


“형, 현장에서 핸드폰으로 전화 왔어요.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내가 권준현 대리에게 조용히 얘기했다.


“전화 오는 거 봐요. 우리도 나름 바쁘게 현장 오가면서 일한다고요. 이제 일들 합시다. 자자 힘들 내시고, 오늘도 파이팅. 우리는 현장 가자.”


권준현 대리는 이때다 싶어서 현장을 가야 한다는 핑계로 회의를 급하게 마무리했다.


[지이이잉..]


또 전화가 온다. 경호준 파트장이다. 파트 회의를 하자는 전화다. 아마도 장비 파트 선배들에게 잔소리를 들어서 대책을 만들자는 미팅으로 보인다.


“형 경호준 파트장 콜인데요?”


“그래? 난 장비 보러 갔다고 그래. 안녕.”


권준현 대리는 그렇게 인사하고는 생산부 현장 쪽으로 가버렸다. 파트장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않는 대단한 양반이다. 이번엔 파트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실에는 경호준 파트장부터 문진수 과장, 이홍렬 과장, 진혜영 대리, 장도영, 탁용칠, 탁용팔, 나 이렇게 여덟 명이 모였다. 박서방과 손준호는 야간 근무 중이다.


“다들 왔어? 권준현 대리는 어딨어?”


경호준 파트장이 말했다.


“현장에 급하게 확인할 일이 생겨서요.”


내가 대충 대답했다.


“그래? 자, 점도표 열어봐. 하나씩 쭉 보자.”


경호준 파트장이 말했다.


마우스는 문진수 과장이 잡았다.


“저거 왜 튀었어? 저거, 저거.”


경호준 파트장이 말했다.


경호준 파트장은 점도표를 하나씩 확인했다. 점도표를 확인하다가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는 산포가 눈에 띄면 바로 담당자에게 묻고 따졌다. 그의 파트 회의 방식이다. 조립이 두꺼우면 두껍다고 뭐라고 하고 얇으면 얇다고 뭐라고 했다. 사람의 머리카락이 평균 백 마이크로미터다. 우리는 그것의 십 분의 일 단위를 제어하고 있다. 물론 눈에는 절대 안 보인다. 전에 측정되고 기록된 점도표를 기준으로 감으로 계산하여 다음 공정 시간을 조절한다. 두꺼우면 시간을 줄이고 얇으면 시간을 늘린다. 조립 팀에서부터 배운 기본이다. 우리는 모두 여전히 그 기본도 못 한다면서 매일 혼나고 있다.


“이거 점도표 하나 못 맞추고 앉아서 뭘 하겠다는 거야? 너희들 매일 실험하는 거 다 집어치워. 장비는 이물질 관리를 하고 있듯 우리는 두께 산포 관리를 해야 하는 거야. 이물 관리는 뒷순위야. 야, 다음에 무브 보자.”


경호준 파트장이 조금 흥분 상태로 말했다.


“야, 이거 봐라. 이거 런 안 걸리고 있는 거 뭐야. 이거 긴급 자재인 거 같은데. 야, 이거 현장에 빨리 전화해 봐.”


경호준 파트장이 닦달했다. 무브는 조립팀 담당 장비에서 진행되는 제품의 상황을 보자는 말이다. 런이 안 걸리고 있다는 말은 자재가 넘어왔는데 진행이 안 되고 대기하고 있다는 말이다. 분명히 장비가 쿨타임이 돌아서 클리닝 중이거나 별도 대기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데 그새를 참지 못하고 닦달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실 이쯤 되면 생산부 제조팀 업무영역이다.


“파트장님, 그거는 제조팀에서 알아서 런 걸어주겠죠. 우리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쓰면 일 못 해요.”


웬일로 이홍렬 과장이 답답해하는 말투로 말했다.


“이봐, 우리는 그런 것도 해야 하는 거야.”


“파트장님, 생산은 생산부 제조팀에서 담당하는 거고, 우리는 공정을 담당해야죠. 자꾸 그렇게 생산부 업무영역을 확장하려고 하면 피곤해요.


“뭐라고, 너는 그래서 안 되는 거야. 공정 업무가 있다고 선 긋고, 구경만 하고 앉아있으면, 누가 인정해 주겠어. 너는 그래서 안 돼.”


경호준 파트장과 이홍렬 과장은 예전부터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했다. 지금 이홍렬 과장이 참고 있지만 경호준 파트장 또한 참으며 서로 물러서지 않는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 보통은 제조 물량의 관리는 생산부 제조팀의 영역이 맞다. 게다가 진행 여부도 제조팀의 권한이다. 하지만 리더가 다른 영역도 챙기는 성질이라면 그에 맞춰야 사회생활이 편해 보였다. 그 뒤로도 아침 회의 시간이든 평소 사무실에서든 그 둘은 종종 서로의 신경을 긁었다.


“고철수, 잠깐 내 자리로 와봐.”


이홍렬 과장이 나를 불렀다.


“저거 두께 왜 튀어 올라갔어, 장비 담당 너잖아.”


“저거 아침에 튄 거네요. 야간에 죽었던 장비가 아침에 살았는데 공정 실험에서 정상이 나왔지만, 진행 중에 안정화가 덜 되었는지 살짝 흔들리는 모습입니다.”


대충 둘러댔다.


“뭐라고? 너가 무슨 리포터야? 왜 중계하고 있어. 흔들리면 흔들리지 않게 잡아야지. 그거 안 잡고 지금 앉아서 뭐 해? 당장 나가서 그것부터 잡어.”


내리 갈굼이다. 어느 순간 내가 먹이사슬의 최종 목적지가 되었다.


“네..“


이쯤 되면 두 명 중의 한 명이 참으면서 끝난다. 그렇게 한 명이 참기만 하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큰 마찰은 없다.


아침 회의 시간에는 매일 비슷한 얘기로 신경전이 오갔다. 일부러 신경전을 만들며 설전을 하기 위해 아침 회의를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어쨌든 팀장의 의지가 장비를 탓하는 성격이 강했고 설전이라고 하기에는 하루하루가 일방적이긴 했다.


“이물질 이거 튄 거 뭡니까? 강대진 파트장, 이거 이거 일 똑바로 안 하고 있나요?”


강건함 팀장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흥분했다.


“저…. 저기 팀장님 이게 뭐냐면요. 장비 챔버로 제품을 전달해 줄 때, 로봇팔이 일정 속도로 전달을 해주거든요. 그게 제조팀의 압박으로 생산율을 올리기 위해서 로봇팔의 속도를 조금 올렸더니 이물질이 튄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제조팀에 왜 휘둘려서 장비에 손을 대나요? 품질을 우선으로 해야지요. 저거 저거 제품 다 버리게 생겼네. 쯧쯧. 제조팀장한테 술이라도 얻어먹었어요?”


“팀장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절대 그건 아니고요…."


강대진 파트장은 억울한 표정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구리 차장은 뭐 했나요?”


“에…? 에 저는 로봇 팔을 알코올 솜으로 좀 닦았습니다. 근데 그게 닦다가 보니 팔이 지저분하더라고요. 시간이 없어서 좀 닦다가 말았는데…. 그래서 정기적으로 팔을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뭐라고요? 나 원 참 기가 차서.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당장 장비 멈춰 세우고 관련된 부분 다 뜯어다가 닦도록 하세요. 점도표 봅시다. 요즘 두께들은 잘 맞추고 있나.”


“네 팀장님. 보시는 바와 같이 최대한 산포에 적합한 수준으로 맞추고 있습니다.”


경 파트장이 귀를 파며 얘기했다. 사실 저 산포는 조작이다. 튄 것은 모두 빼서 다시 찍었다. 다시 찍으면 지난 이력은 사라진다. 진리의 조작이다. 사실 조작은 매우 하기 싫은 업무다. 누구라도 이런 조작 행위는 불편한 업무다. 몸도 마음도 불편하다. 전혀 보람도 없다. 그러나 주요 공정을 담당했던 탁용칠, 탁용팔, 진달호, 나까지 우리 네 명 모두는 조작 머신이 되었다. 특히 탁용팔은 야간에도 휴일에도 잠깐씩 나와서 조작을 하고 돌아간다.


“그럼 회의는 이만합시다.”


강건함 팀장은 분을 삭이며 자리를 박차고 회의실을 나갔다.


“야, 경 파트장! 맨날 우리만 혼나고 이게 뭐야. 이물질 관리는 우리만 하는 거 같아. 너희 파트도 이물질 줄일 방법 빨리 찾아서 알려줘. 지금 당장 알려줘. 안 알려주면 회의실에서 못 나간다.”


구리 차장이 얼굴이 벌게져서 흥분 상태로 얘기했다.


“에이, 또 왜 이러실까. 밖에서 맑은 하늘도 보고 커피나 한잔하면서 천천히 얘기해 봐요.”


권준현 대리는 언제나 그렇듯 구리 차장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야, 나 오늘은 못 참아.”


구리 차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


“에이, 맨날 핸드폰 게임만 하고 앉아있으면서 꼭 이렇게 잔소리 들을 때만 일을 하려고 하세요.”


권준현 대리도 오늘은 조금 짜증이 나는지 비꼬면서 얘기했다.


“뭐 이 새끼야? 씨발 너 옥상으로 따라와.”


“네? 뭐 그게 어렵나요. 네이, 네이, 가요. 가시죠.”


“야 둘 다 그만들 좀 하고 우리끼리 싸워서 뭐 해? 정말 뭐 방법 없냐? 맨날 혼나는 것도 지겹다.”


강대진 파트장이 분위기를 진정시키려고 나섰다.


“저기 이물질이 튀면 전산으로 공정을 세척 공정으로 돌려서 세척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저희 공정 앞뒤로 세척 공정 있잖아요. 게다가 전산 처리로만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지금으로는 한계가 있는 거 같아요.


내가 갑자기 번뜩이며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에?”


“뭐?”


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그런 생각은 또 어떻게 했냐?”


경 파트장이 얘기했다.


“그래그래. 그거 될 것 같은데? 우리 맨날 하던 짓이 수작업으로 그런거 하는 건데 그거 전산으로 하면 뭐 어때? 크크.”


권준현 대리가 얘기했다.


측정된 자재를 재측정하며 모든 점도표가 박제된 게 아니란 것을 알았다. 뭐든 다시 측정하면 이전에 측정한 것은 사라진다. 이물질도 마찬가지일 그것으로 생각했다. 튀는 이물질이 있다면 세척 공정을 돌리고 다시 이물 측정을 하면 깨끗해진 제품이 측정되고 과거의 측정 자료는 모두 사라진다. 우린 이것이 잘 된다는 것을 알고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했다. 전산으로 처리할 일이 많아졌지만 혼나지 않고 하루를 시작하려면 이렇게 해야 했다. 정신없이 전산 처리를 하던 어느 날 진달호와 커피 한잔 하며 하소연을 시작했다.


“야 우리 이거 잘하는 걸까?”


“뭐가요?”


“하루에도 재측정해서 보내는 자재가 몇 개인지 모르겠어.”


“열 개 정도 되려나요?”


“아니, 그게 아니고 열 개라고 쳐봐 그 안에 원자재 10개씩 총 100개의 원자재를 우리가 조작해서 내보내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네, 근데 그래도 문제없네요. 헤헤.”


“어휴 답답하다. 뒤에 테스트 공정이 많을 텐데, 제품이 이렇게 출하된다는 것도 신기하다.”


“알아서 되겠죠. 저희는 다시 생산부 지옥으로 떨어져도 또 이렇게 일해야 할걸요. 그게 저희 팔자죠.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운명인가.


“달호야, 형은 정해진 운명 같은 거 안 믿어. 운명은 스스로 만드는 거야. 근데 진달호야 운명이고 뭐고 우리 이제 조작을 너무 잘하는 거 아니냐? 누가 배터리 회사에서 이런 일을 할 줄 상상이나 하겠어? 크크. 제품의 운명도 우리가 만든다. 크크. 그럼 또 조작하러 가자….”


“네 형….”


나의 뭔지 모를 답답함은 가장 가까이 있는 동기와의 대화로도 혹은 그 누구와의 대화로 해소될 수 없었다. 이렇게 그냥 웃어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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