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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소유 Sep 09. 2024

정보라 작가

서사는 양자역학만큼 복잡하고 다층적인 것

2024년 서울국제작가축제 개막전날, 나는 정보라 작가의 강연을 들었다. 올해 축제의 주제가 ‘입자와 파동’이라길래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했는데, 그녀가 그 주제를 어떻게 문학적으로 해석할지 기대 반, 의문 반이었다. 물리학에서 주로 쓰이는 ‘입자’와 ‘파동’이라는 개념이 문학적 세계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막연한 궁금증을 안고 강연장에 앉아 있었다.


강연은 개막식 공연이 끝나고 곧 바로 진행 되었다. 또 다른 세계적인 작가 클라우디아 피녜이로도 함께 대담에 참여했다. 동시통역기가 있었지만 한국말로 동시 통역되는 아르헨티나 원어를 듣고 기록하기는 쉽지 않아서 현장에 집중하기로 하고, 아쉽지만 정보라 작가의 말만 기록하기로 마음 먹었다.


정보라 작가는 강연 초반, 이 주제를 받고 꽤나 당황했다고 고백했다. 물리 시험에서 58점을 맞았던 과거를 언급하며, 물리학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라고 했다. 나처럼 물리학과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에게는 그 고백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후 이 주제를 탐구하면서 나름의 해석을 만들어갔고, 이를 문학적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녀가 이야기한 '입자와 파동'은 단순한 물리학적 개념을 넘어선, 우리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물리학에서 빛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한다. 빛은 어떤 환경에서는 입자처럼 행동하고, 다른 상황에서는 파동처럼 행동한다. 이는 오랜 세월 동안 과학자들이 연구해 온 주제지만, 정보라 작가는 이 현상을 문학적으로 확장하여 우리 삶에 빗대어 해석했다.


입자와 파동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은 우리 인간의 존재와도 닮아 있었다. 우리는 때로는 물리적으로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하지만, 때로는 흐르고 변화하는 존재로서 살아간다. 이 둘 중 하나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두 가지 모두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입자와 파동의 복합체인 셈이다. 정보라 작가는 이 부분에서, 인간이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남자와 여자, 선과 악, 옳고 그름 같은 단순한 이분법이 아니라, 삶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인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닐스 보어의 해석을 언급하면서 관찰자의 관점에 따라 빛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였다. 보어는 관찰하는 기기에 따라 빛이 입자로 보일 수도, 파동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나 이야기 또한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낳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문학적 비유처럼 들렸다. 입자와 파동은 단지 물리학에서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과 해석의 다원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다가왔다.


이쯤에서 정보라 작가는 문학과 이야기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왜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가? 그녀는 인간이 삶의 끝, 즉 죽음이라는 결말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찾고 읽는 이유를 이야기의 의미에서 찾았다.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지, 단지 결말을 알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는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이야기는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인간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의미가 생겨난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여러 관점과 해석이 존재할 수 있고, 그 다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정보라 작가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수없이 많은 다른 삶과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학은 바로 그 점에서 우리를 제한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게 하고, 더 넓은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강연을 들으며 나는 문득, 문학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입자와 파동이라는 물리학적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정보라 작가는 이를 인간 존재의 복합성과 문학적 의미로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그녀는 우리에게 삶이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 복잡한 과정임을 일깨워주었고, 문학은 그 복잡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중요한 도구임을 강조했다.


이 강연을 통해 나는 단순한 과학적 개념이 얼마나 깊이 있는 철학적, 문학적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입자와 파동은 곧 인간의 다면적 존재를 상징하고,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더 나아가 우리 모두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서울국제작가축제가 이러한 주제 아래 열린다는 것이 매우 의미 있게 다가왔고, 앞으로의 강연들도 더 기대하게 되었다.


강연이 끝난 후, 나는 문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입자와 파동, 상반된 개념이 서로 공존할 수 있듯, 문학은 그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에게 다층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보라 작가의 강연은 그 점을 아주 잘 보여준 강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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