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서사를 만든 사람.
지난 주일 신부님께서는 많은 매체에서 자주 비교되는 두 사람, 이병철과 정주영의 저서를 언급하셨다. 대중들은 대부분 정주영의 저서를 알고 있지만, 이병철의 저서는 잘 모른다. 찾아보니 이병철의 저서는 [호암자전]이라는 한 권의 책이 있다. 목차만 봐도 정돈된 서사로 채워진 자서전이다.
반면, 정주영은 무려 다섯 권의 저서를 남겼다. [이 아침에도 설레임을 안고], [성공시대], [나의 삶 나의 이상: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새로운 시작에의 열망], [이 땅에 태어나서]. 이 다섯 권의 책은 그 권수만으로도 이병철을 압도한다. 내용 역시 읽어보지 않아도 대단한 아포리즘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예상이 든다. 실제로 이 책들은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이병철은 그 시절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 와세다 대학교까지 졸업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다. 엘리트로서 정상까지 올라갔고, 그가 남긴 서사는 그리 쉽게 대중들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반면, 정주영은 가난한 시골에서 출발해 정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사람이다. 그의 책 제목처럼,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었다."
정주영은 본인의 가난했던 시절과 부족했던 학력을 극복하기 위해 독서에 매진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시절에 저런 책들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삶은 그 자체로 방대한 서사였고, 그의 이야기는 대중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나는 신부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했다. 30년이 넘었을까,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수많은 소를 이끌고 북한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TV로 본 기억이 난다. 그는 ‘왕 회장’이라 불리며 정치인으로도 활동했고, 그의 그릇과 야망은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컸다. 정주영은 단순한 기업가가 아니었다. 그의 삶 자체가 서사였고, 그 서사는 대중과 공명했다.
반대로, 이병철은 대중이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의 삶은 철저히 엘리트의 길을 걸어왔고, 그의 서사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물론 이병철도 훌륭한 업적을 만들긴 했다. 하지만 탄탄한 배경을 통해서 만들어진 사람과 스스로 서사를 만들어낸 사람의 차이는 있다.
소설도 그렇다. 신춘문예에서 수상한 작품이나 단편 소설, 장편 소설 중 공감되는 이야기가 잘 읽히는 법이다.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삶에서 서사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삶, 나의 이상, 모든 것이 소재가 될 수 있다.
정주영의 책 제목처럼,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에 나는 깊이 공감한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