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에 대하여.. 그리고 문학이 갖는 공감의 힘.
2024년 서울국제작가축제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는 두 작가의 대담에 참석하며 문학이 어떻게 다양한 형태로 질서와 혼돈을 탐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날 대담의 주제는 ‘질서에 대하여’였으며, 한국의 최은미 작가와 스페인의 엘레나 메델 작가가 함께 그들의 문학적 관점과 작품 속에서 질서라는 개념을 어떻게 풀어내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두 작가는 각각의 문화적 배경과 삶의 경험이 다르지만, 그들이 창작에서 다루는 주제는 놀라울 정도로 공통된 지점을 찾고 있었다. 이 대담은 나에게 문학이 서로 다른 언어와 국경을 넘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고, 문학을 통해 삶을 재구성하고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먼저 최은미 작가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들과 맞닿아 있었다. 그녀는 현대 한국 여성들의 삶,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변화된 삶의 양상을 탐구했다. 최 작가는 그동안 다양한 문학상을 수상하며 그녀만의 섬세하고 치밀한 문체로 독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녀의 소설 속 여성들은 자신들의 역할과 정체성 속에서 끊임없이 혼란을 겪지만, 그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찾아가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최은미 작가의 소설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녀가 인물들의 복잡한 내면을 깊이 탐구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여성들이 자신이 맡고 있는 여러 가지 역할, 예를 들어 어머니, 딸, 아내, 노동자 등 여러 정체성을 떠안으며 살아가지만,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은 그녀의 작품에서 중요한 주제였으며, 그녀는 이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자기혐오와 거리감이라는 요소를 다룬다. 그녀는 한 인물이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혐오에 빠지면, 결국 그것이 타인에게 전이된다는 점을 강하게 느끼게 했다. 이런 감정들은 인물들이 스스로의 질서를 찾기 위해 어떻게 분투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상황도 최은미 작가의 소설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팬데믹은 단순히 건강 위기 이상의 문제로 다가왔고, 많은 여성들이 그로 인해 더욱 고립되었다. 그녀는 이를 여성들의 현실을 더 깊이 파고드는 기회로 삼았다. 그녀의 소설은 팬데믹 이후 우리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되묻게 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상실한 것들과 새롭게 얻은 것들을 동시에 보여준다. 특히 가정 내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고립감을 느끼며, 그 안에서 서로에 대한 기대와 역할에 의해 더 멀어지는지를 깊이 탐구했다. 그녀의 이러한 탐구는 단순히 사회적 현상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내면을 통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한편, 엘레나 메델 작가의 이야기는 스페인의 사회적, 경제적 문제들과 여성의 삶을 다루며, 시간과 세대 차이를 뛰어넘는 공통점을 제시했다. 그녀의 소설 "소유에 관한 아주 짧은 관심"은 두 세대의 여성, 마리아와 알리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들은 각기 다른 세대와 환경에서 살아가지만, 그들의 삶이 놓인 상황은 본질적으로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메델 작가가 말한 ‘질서’의 또 다른 형태였다. 그녀는 30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들이 겪는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메델의 소설은 스페인의 독재 정권 시절과 그 이후의 삶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몸과 삶을 어떻게 정의하고 싸워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두 여성 인물 간의 공통점을 통해, 세대와 시간을 초월하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었다. 특히 여성의 몸을 둘러싼 사회적 규제와 그 안에서의 자유를 찾기 위한 투쟁이 그녀의 작품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 비단 스페인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인 여성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메델은 인물들이 선과 악이 공존하는 복잡한 존재로 그려지길 원했다. 그녀는 인물이 단순히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있는 복잡성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이는 우리가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녀는 작품에서 인물들이 가지는 장단점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그러한 모순과 혼란 속에서 인간다움을 찾고자 했다. 또한, 그녀는 악한 부분을 쓸 때 오히려 더 재미를 느낀다고 말하며, 인간의 어두운 면을 탐구하는 것이 문학적으로 더욱 흥미롭다는 점을 강조했다.
메델의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경제적 문제와 여성들의 생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그녀는 스페인의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자녀 양육과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은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며, 그들의 투쟁은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문제로 다가왔다. 이는 단지 스페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이기도 했다.
두 작가는 각기 다른 배경과 문화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공통된 주제는 문학이 어떻게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 최은미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번역되어 일본에서 독자들과 만난 경험을 나누며, 그들이 동일본 대지진과 같은 재난을 겪은 후 자신의 소설을 읽고 공감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쓴 소설이 실제로 그 재난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는 문학이 단순히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메델 역시 문학이 다른 국가와 언어를 초월해 공감할 수 있다는 본질적인 요소를 강조했다. 그녀는 문학이 서로 다른 경험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매개체로서 작용한다고 보았다. 그녀는 글을 쓸 때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쓴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이 다른 나라의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의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했다.
이번 대담은 나에게 문학이 어떻게 질서와 혼돈을 탐구하고, 그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최은미 작가와 엘레나 메델 작가는 각각의 작품을 통해 여성들이 겪는 혼란과 그 속에서의 질서를 찾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단순히 여성의 이야기를 넘어, 인간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세상과 맞서고, 우리의 자리를 찾아가는지를 이야기했다.
문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복잡하고, 때로는 모순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학을 통해 우리는 서로 다른 경험과 감정을 나누며, 그 속에서 우리 모두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번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만난 두 작가는 그러한 깨달음을 내게 선사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