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내일로 나아가고 있었다.
병가휴직 92일째. 아침 아홉 시에 일어났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난 기분이다. '퇴사준비생의 도쿄'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림이 많아 쉽게 읽혔다. 한참을 읽다가 낮잠을 두 시간 정도 잤다. 중간에 택배가 와서 잠시 깨어났다. 아내가 선물한 '0~3세 아빠 육아가 아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책이었다.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고 고마웠다.
오후에 급하게 상담소에 갈 준비를 했다. 아내가 태워줘서 늦지 않게 도착했다. 오랜만에 상담사님을 만나 반가웠다. 근황을 이야기하고, 우주에서 티끌 같은 자아와 한 걸음 물러서서 세상을 보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상담에서의 내려놓기와 현실 마주하기와도 연결되었다. 지인들에게 연락해 봤지만 바빠서 만나지 못했다. 대신 다른 친구들과 근황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고 아내와 함께 추억의 영화를 보며 옛 생각에 잠겼다.
병가휴직 93일째. 아침에 병원 세 곳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아내의 임신성 당뇨 재검을 위해 산부인과에 갔다. 보건소에서 임산부 등록도 했다. 독감 주사를 맞으러 메디체크에 들렀다.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받아보았는데, 예상치 못한 결과에 놀랐다. 동맥경화 증세와 콜레스테롤이 높고 골다공증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큰 병원에 가서 재검을 받아보라고 했다. 충격적인 마음으로 아내에게 내용을 전하고 집에 와서 쓰러졌다. 저녁에 산책을 하며 바로 하체 운동을 시작했다. 금요일에 큰 병원에 가봐야겠다.
병가휴직 94일째. '리프레시 마인드' 심화 과정 두 번째 날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선정릉을 한 시간 동안 걸었다. 두 번째라 그런지 조금 익숙해지고 많은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의 주제는 '겸손'이었다. 사람은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산이 땅 아래에 있듯이, 힘이 있어도 겸손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마음속에 굳은 결심이 있던 날들의 내면 영화를 보았다. 수강생들에게 책 선물을 받아 감사했다. 집에 와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내일은 큰 병원에 가야 해서 오늘 밤은 공복을 유지하기로 했다.
병가휴직 95일째. 아침 여덟 시에 일어나 심장내과 검진을 위해 큰 병원에 갔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가득했고, 노인들이 많았다. 접수는 불친절했고, 오늘 진료도 안 된다고 했다. 가장 빠른 예약이 일본에서 돌아온 후인 11월 6일이었다. 괜히 공복에 헛걸음을 한 것 같아 집에 와서 속이 안 좋았다. 오후에 일어나 아내와 함께 베이비페어에 갔다. 늦은 오후라 사람이 조금 적었다. 아내의 편한 속옷을 사고 태아보험 상담을 받았다. 한 시간 반 동안 상담을 했고, 비싼 보험에 대한 설명에 지쳤다. 제일 저렴한 것으로 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지친 마음에 아내의 입덧 증상으로 빨리 주변을 검색해 떡볶이를 사 먹였다. 태아보험은 참 어렵다. 시대의 분위기라 나도 해야 할 것 같다.
병가휴직 96일째. 오전 열한 시에 일어났다. 어제 오랜만에 게임을 해서 새벽 네 시에 잠든 것 치고는 선방했다. 아내의 점심 약속에 벌떡 일어났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집에서의 시간이었다. 좋은 영상을 보고 이것저것 했다. 오랜만에 엄마와 통화도 하고 건강검진 결과에 대해 사실을 말씀드리고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드렸다. 친구들과도 안부를 주고받았다. 갑작스러운 만화방 제안에 즐겁게 가서 만화 세 권을 읽었다. 제목이 끌려 읽었는데 명작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친구 집에서 맥주 한 잔을 했다. 집이 좋았다.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이 금방 흘렀다. 갑작스럽게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아내를 만나 반가워 먼저 뽀뽀를 해주었다. 이후 노트북과 씨름하며 아이튠즈를 설치하느라 진이 빠졌다.
병가휴직 97일째. 아침 아홉 시에 일어나 콘푸로스트를 먹었다. 태아보험을 위해 베이비페어에 다시 갔다. 설계해 준 사람이 바빠 보여 다른 업체의 설계사에게 견적을 받아봤다. 5만 원대로 우리를 유혹했다. 아내도 만족할까. 이 사람은 자신감 있게 말을 잘했지만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정도였다. 그래도 5만 원대로 계약하기로 하고 빨리 나왔다. 호객 행위가 너무 많았다. 집에 와서 속이 안 좋아졌고 일본 여행 책을 보다 낮잠을 잤다. 아내가 깨서 TV를 켜자 침실에 가서 독서를 했다. 저녁 후 산책을 했다. 새로운 주에는 벌써 약속이 두 개나 있어 바쁘겠다.
병가휴직 98일째. 아내가 점심으로 바지락 칼국수와 만두를 먹고 싶다고 해서 점심에 일어나 급히 준비하여 갔다. 역시 맛있었다. 하지만 너무 많이 남겼다. 다음에는 칼국수 1인분과 만두 1인분만 주문해야겠다. 아내를 집 앞에 내려주고 친구의 집들이에 선물할 책을 사러 서점에 갔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소설판을 샀다. 나도 사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신 여러 책을 한 시간 정도 훑어봤다. 시간이 생각보다 늦어 급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급히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와인과 책을 들고 친구 집에 갔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반가웠다. 하지만 금주 중이라 뭔가 흥이 덜 나고 화제에서 동떨어진 기분이었다. 이렇게 점점 멀어지는 걸까 싶었다. 결혼과 임신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눈 후 말수가 더 줄었다. 괜한 이야기를 했나 싶었다. 문득 집에 있는 아내 생각이 났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이렇게 병가휴직 기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일상을 보내고, 상담을 받고, 운동을 하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건강 문제로 걱정도 많았지만, 가족과 친구들의 존재가 큰 힘이 되었다. 과거를 돌아보니 그때의 나를 이겨내고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하며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