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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소유 Sep 25. 2024

나 자신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걸었다.

나를 붙들어주는 것들..

병가휴직 85일째, 오랜만에 동료들과 점심을 함께했다. 변함없는 그들의 모습과 지지는 우정의 가치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맛있는 식사를 즐기고 여유로운 커피 한 잔을 곁들였다. 한 동료는 중국에서 구입해 온 선물까지 건네주었다. 저녁에는 독서를 하고, 답답한 경기력을 보이는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시청했다. 팀의 부진한 모습은 당시 내 심정과도 닮아 있었다.


병가휴직 86일째,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에 다녀왔다. 아기의 머리와 몸이 형성되고 큰 심장 소리를 듣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외출한 김에 장을 보고, 간단하지만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오후에는 자동차 트렁크를 보증 수리하는 등 미뤄온 일들을 처리했다.


병가휴직 87일째는 상담소에서 심화 과정의 첫날이었다. 비가 오고 흐린 날씨는 마음까지 무겁게 했고, 영화나 게임에 빠져 집에 머물고 싶은 유혹이 컸다. 그러나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서울로 향했다. 심화 과정은 기본 과정에 비해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걷기 명상은 신선했다. 공원을 40분 동안 거닐며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에 이름을 붙였다. 이 실천은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맑게 해주었다. 우리는 소감을 공유했고 흥미로운 강의를 들었다. 이러한 자기 발전의 여정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는 아내가 부모님 집에서 가져온 맛있는 반찬을 함께 나누고, 1989년 작품인 '마녀 배달부 키키'를 감상했다. 어린 마녀의 성장과 우여곡절을 잘 그려낸 이 작품을 보며 나 역시 잠시 '마법'을 잃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병가휴직 88일째, 아침에 병원에 갔지만 진료는 오후에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예상치 못한 여유 시간에 근처 도서관을 방문했다. 휴직한 지 88일 만에 처음으로 도서관에 간 것이다. 쉬면서도 왜 이렇게 바쁜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도서관에서 마음에 드는 책들을 빌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와의 상담은 여전히 불편했다. 의사는 갑자기 다음 달에 복직하라는 말을 꺼냈고, 나는 두 달 더 휴직할 계획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추가 진단서를 요청했다. 마음이 무거운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를 위해 떡볶이를 사 갔다. 예상대로 맛있었다. 갑작스럽게 연락이 온 친구를 만나 차를 마시고 저녁 식사도 함께했다. 그는 "우리는 자본주의의 부품일 뿐"이라는 말로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병가휴직 89일째와 90일째는 '일자리 혁명 2030'이라는 책에 몰두했다. 미래를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알려주는 이 책은 태양광이나 빅데이터 같은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현재의 회사는 구시대적인 업무로 인재를 쇠퇴시키는 곳이라는 생각에 회의를 느꼈다. 이러한 환경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저녁에는 도쿄 여행서적을 보며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설렜다.


병가휴직 91일째, 한 주간의 일정을 계획하며 도쿄 여행 계획을 점검했다. 오랜만에 그리웠던 친구와 통화를 나누었다. 오후에는 피부과에 가서 원형탈모 치료를 받았는데, 주사의 아픔은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상기시켰다. 스스로에게 맛있는 음식으로 작은 위로를 건넸지만, 여전히 익숙했던 고향의 맛이 그리웠다. 저녁에는 아내와 함께 '벼랑 위의 포뇨'를 보았다.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환상적인 이야기는 내 마음에도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이러한 날들을 돌아보며, 친구들과의 재회, 명상 같은 새로운 실천, 독서에의 몰입, 아내와의 소중한 순간들이 내 치유에 큰 도움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항우울제로 인해 마음이 흐릿하고 때때로 멍해지기도 했지만, 이 작은 순간들이 나를 붙들어 주었다. 현재의 상태를 넘어 희망과 가능성을 보기 시작했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변신이 아니라, 작은 걸음들과 성찰들이 쌓여 서서히 내 영혼을 다시 일깨우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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