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
1. 총평
전체적으로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로 되어있지만, 그 사랑이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꼭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기보다는 영원회귀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이야기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안에 벌어지는 심리, 갈등, 고통, 쾌락, 위로 등이 매우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모든 주인공은 그 나름의 사정이 있었고 그들만의 존재를 채우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또한, 이 소설은 그 안에서 사회적, 윤리적, 정치적인 시대상의 모순을 이들의 서사에 녹여서 말했고, 서사의 중간에 작가 밀란 쿤데라가 직접적이지만 간접적으로, 작가의 의견을 말하는 방법으로, 개입하는 부분이 적지 않아서 좀 특이했다. 일독을 해서는 이 장편소설을 파악하기는 절대로 어렵고, 재독 하며 분석을 해야 조금 알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2. 좋았던 부분 (너무 많았다..)
민음사 양장본 기준.
p55. 그는 파르메니데스의 마술적 공간 속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을 만끽했다.
-. 토마시의 존재가 가벼워지려는 순간이다.
p58. 그녀가 병균을 주입한 이 병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 토마시의 내적 갈등이 보인다.
p71. 인간은 신체의 모든 부분에 이름을 붙이고 난 후부터 육체에 덜 불안해했다. 또한 이제는 영혼이란 뇌의 피질부 활동에 불과하다는 것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 테레자의 내적 갈등이 정신적으로 설명되기 시작한다.
p74. 나는 가끔 그녀의 생김새가 어머니와 닮았을 뿐 아니라 그녀의 삶도 어머니 삶의 연장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 테레자의 집안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p130. 카레닌은 스위스로 가는 것을 한 번도 탐탁하게 여겨본 적이 없다. 카레닌은 변화를 싫어했다. 개에게 있어서 시간은 곧게 일직선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며 시간의 흐름도 하나가 지나면 다음 것으로 가는, 점점 멀리 앞으로 가는 쉼 없는 운동이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은 손목시계 바늘처럼 원운동 했다. 시곗바늘 역시도 미친 듯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궤도를 따라 하루하루 시계 판 위에서 원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프라하에선 새 소파가 놓이거나 화분의 자리만 달라져도 카레닌은 분개했다. 그의 시간 감각이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었다. 마치 쉴 새 없이 시계 판의 숫자를 갈았을 때 시곗바늘이 겪는 혼돈 같은 것이었다.
-. 테레자의 애완견, 카레닌의 특징이 잘 묘사된 부분이다.
p131. 외국에 사는 사람은 구명줄 없이 허공을 걷는 사람이다.
-. 외국에 사는, 외국인 취급을 받는 사람의 마음이 잘 묘사된 부분이다.
p132. 강자가 약자에게 상처를 주기에는 너무 약해졌을 때 떠날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약자다.
-. 테레자에게 조국이, 가정이 그랬다.
p195.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탄 자세로, 두 사람 모두 말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이 원하는 먼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을 구원하는 배신에 도취했다. 프란츠는 사비나를 타며 그의 부인을 배신했고, 사비나는 프란츠를 타고 프란츠를 배신했다.
-. 사비나와 프란치의 감정의 움직임이 잘 나타나는 부분이다.
p204.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것이 목표일까?
-. 사비나는 공허를 느끼며 스스로 존재성에 계속 물음표를 던졌다.
p283. 그녀는 토마시가 두려웠다. 그녀에게 그는 너무 강했고, 그녀 자신은 너무 약했다.
. 문장 그대로 테레자 스스로의 자존감이 내려가는 부분이다. 토마시는 그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 그려진다.
p285. 여러 색깔을 거느리며 사라지는 인생에 대한 작별.
-. 테레자의 마음이다. 참으로 문학적인 묘사다.
p319. 물론 누구에게나 전혀 개연성 없는 위험을 두려워할 권리가 있다.
-. 토마시에게 개연성 없는 위험이 벌어지려고 하는 부분이다.
p364. 역사란 개인의 삶 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 밀란 쿤데라 작가의 말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부분이다. 매우 공감하는 부분이다.
p367. 낙관주의자란 5번 행성에서는 인간 역사가 피를 덜 흘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비관주의자란 그런 것을 믿지 않는 자이다.
-. 밀란 쿤데라가 생각하는 영원회귀 안에서의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다.
p398. 저주와 특권이 더도 덜도 아닌 같은 것이라면 고상한 것과 천한 것 사이의 차이점은 없어질 테고, 신의 아들이 똥 때문에 심판받는다면 인간 존재는 그 의미를 잃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 자체가 될 것이다.
-. 똥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스탈린의 아들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이다. 작가가 이를 두고 형이상학적 죽음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참 웃기면서 슬프다.
p404. 그것이 종교적 믿음이건 정치적 믿음이건 간에 모든 유럽인들의 믿음 이면에는 창세기의 첫 번째 장이 존재하며, 이 세계는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모양으로 창조되었고, 존재는 선한 것이며 따라서 아이를 가지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거기에서 유래했다. 이러한 근본적 믿음을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라고 부르도록 하자.
-. 밀란 쿤데라작가가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은연중에 계속 반복되고 있던 논리고, 이 소설의 남은 부분에서 작가가 확실하게 반복하는 논리다.
p422. 키치의 원천은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다… 가톨릭 키치, 개신교 치키, 유대인 키치, 공산주의자 키치, 파시스트 키치, 민주주의 키치, 페미니스트 키치, 유럽 키치, 미국 키치, 민족주의 키치, 국제주의 키치… 표상, 이미지, 단어, 원형 들에 근거하며 이런 것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정치적 키치를 형성한다.
-. 내가 어떤 해설, 후기를 듣거나 확인하지 않고 이해한 바로는 키치란 어떠한 잡을 수 없는 이상향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다 읽고 다시 재독해봐도 어느 정도 그런 뉘앙스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p461. 키치란 존재와 망각 사이에 있는 환승역이다.
-. 그야말로 잡을 수 없는 존재.
p489. 카레닌과 아담을 비교하다 보니 나는 낙원에서는 인간이 아직 인간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은 아직 인간의 노정에 던져지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들은 오래전부터 그 노정 속에 던져졌고 직선으로 완료되는 시간의 공백 속을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 [직선으로 완료되는 시간의 공백]이라는 표현이 너무 좋았다.
p492.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 카레닌의 사례를 들어서 인간과 동물의 행복의 기준점, 혹은 방향성이 제시된 부분이다.
3. 주인공들의 특징
토마시 : 존재감을 채우기 위해 평생을 보내는 남자다. 표면적으로는 존경받는 외과의사. 그 존재감을 이성을 만나면서 채우기도 하고, 어떤 사상을 고집하며 채우기도 하지만 끝내 만족스럽게 채우지는 못한 가벼운 모습으로 끝을 맞이한다.
테레자 : 존재감을 사랑으로 채우려고 하는 여자다. 그 사랑을 애완견 카레닌과 교류하다가, 끝내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모습으로 나오지만 과연 그것으로 만족할 만큼 무거운 것인지는 물음표다.
사비나 : 가볍게 거침없이 살아가는 미적 감각을 지닌 신여성이다. 한 사람에게 혹은 한 가지에 연연하지 않는 커리어 우먼이다. 게다가 여우 같은 존재다.
프란츠 : 사비나에게 홀린 지식인이다. 여우에게 홀려서 모든 것을 버리고 정신 못 차리는 대표적인 남자의 가벼움을 보여준다.
카레닌 : 테레자와 토마시가 끝까지 돌봐주는 애완견이다. 인간과 비교되는 대표 동물로 주인공 곁을 맴돈다. 어쩌면 끝없는 선보다 회전하는 선을 갖고 있는 카레닌이 인간 보다 나은 점, 한마디로 더 무거운 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4. 키치란 무엇일까
잡을 수 없는 이상향이라고 생각한다. 정치, 사회, 윤리, 종교 등 인간이 만든 모든 관념적인 것들에 대해서 마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키치라고 느꼈다. 덧붙여 밀란 쿤데라는 은연중에 키치를 풍자하고 있는데 나 또한 공감하는 바이다.
5. 제목이 주는 의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제목 혹은 원어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는 제목이 이 소설을 다 말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주인공과 반 주인공은 참을 수 없는 삶을 견디고, 경험하고, 부딪히며 살아가지만 결국 채울 수 없는 무한한 공백을 갖고 가볍게 살아간다. 특히 인간 존재가 실체보다는 관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자꾸 무언가를 채우려고 하는데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반복해서 풍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