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못미…
친한 작가님이 영화관을 대관하셔서 막이 내린 영화를 단체 관람했다. 영화는 지난봄에 개봉했던 [토리와 로키타]. 칸영화제 특별기념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영화는 슬프고 먹먹했다. 눈시울이 저절로 붉어지며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대체 남매의 사랑이 뭐길래 보는 이의 마음을 이렇게 애달프게 하는 것일까. 심지어 그들은 실제 남매도 아닌 것 같다.
로키타는 어둡지만 책임감이 있었고, 토리는 밝고 용감했다.
로키타의 표정은 내내 슬퍼 보였고, 토리는 즐거워 보였다.
그들의 상반된 표정이 관람자들을 더 슬프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그저 사랑과 행복을 원했을 뿐인데, 세상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처럼 특별한 처지의 인간들의 삶은 안타깝지만 죽어야 바뀐다. After life, 사후세계, 내세가 있다면, 다음 생애에서는 사랑과 행복을 갖고 사는 인생을 보내길 바라본다.
또한 [토리와 로키타] 영화는 완전한 하강 구조의 영화다. 진행되며 관람객을 극도로 긴장하게 만드는 구조다. 인물의 외형, 성격, 배경, 사건까지 상징으로 가득한 영화다. 주인공 남매로 나오는 토리는 주체적, 로키타는 객체적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의 의도로 철저하게 상징적으로 만들어졌다. 상실과 죽음으로 이행이 일어난다. 불행마저도 겪어낼 습이 생긴다. 레이어를 가진 사람을 만나야 한다. 소개팅을 나간다면 공작새처럼 날개를 펼쳐야 한다.
감상을 마치고 상실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봤다. 죽음과 상실이란 무엇인가. 참 오래된 질문이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듯 인간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지도 모른다.
죽음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고, 상실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과거의 불행으로 죽었고, 지금 행복으로 살아났다. 문득 식물이 생각난다. 꽃을 한번 피우기 위해 묵묵히 습을 이행하는 식물들이다.
나도 이제는 나만의 습을 행하여 꽃을 피우리라. 찬란하게 꽃 피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