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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소유 Dec 16. 2024

색즉시공공즉시색

최근에 작성한 단편 제목이다.

각색하고 싶은 부분만 발췌하여 한번 더 생각하려고 한다.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마이크로 단위의 이물질 한 개, 두 개에 연연하며

서로 남 탓하고 무시하고 쌍욕을 주고받았다.


지금은 1bit이라는 눈에도 보이지도 않는,

숫자 한 개, 0 인가, 1 인가,

그것을 확인하고 검증하기 위해

수백 명.. 제품팀까지 포함하면 더 많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밤샘근무를 하며 화를 낸다.


구매자들, 사용자들은 이런 제조사의 노력을 알 수 있을까.

아마도 절대로 알지 못한다.


웃픈(웃기고 슬픈) 현실은

그 이물질과 숫자들이,

제품의 품질에 상관이 없는 경우도 대다수.


우리는 그 상관없을지도 모르는 일을 하기 위해

허공을 맴돌고 있다.

그저 끝없는 공백 속으로 무한하게 들어간다.


이것은 물질적인 세계와

무차별한 공의 세계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해 준다.


불교, 반야심경에서 나오는

색즉시공.


우리는 그저 임창정과 하지원이 출연한 코미디 영화로 알고 있지만, 사실 원문은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으로 물질적인 현상에 있어서 실체가 없는 것과 실체가 있는 것이 같다고 얘기한다.


이 구절에 대해 고승들의 해석이 많지만,

가장 명쾌하고 독창적으로 해설한 사람은

신라의 원측이라는 고승이다.


그는 변계소집(두루 계산하여 집착하는 허구성)에 의하여 일어난 색은 본래 없는 것을 망념으로 그려낸 것이기 때문에 공하다는 것이고, 의타기성(온갖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인식)에 의하여 생겨난 색은 인연 따라 존재하고 멸하는 가유(참 존재가 아니고 인연의 화합으로 현실로 나타난 세계)의 색이기 때문에 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원성실성(원만히 이룬 진실의 본성)의 입장에서 보면 색이란 일어남도 일어나지 않음도 없는 공의 본질이기 때문에 역시 공하다는 뜻이다.


색과 공이 하나인가 다른 것인가를 밝히면서, 만약 하나라고 하면 일집(한 가지를 고집)에 빠지게 되고 다르다고 하면 이 집(다른 것을 고집)에 빠지게 되며, 하나이면서 다른 것이라고 하면 서로 위배되는 것이 되고, 하나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라고 하면 희론(대상을 분별해서 거기에 언어와 의미를 부여하는 지적 작용)이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 명구의 가르침은 색이나 공에 대한 분별과 집착을 떠나 곧바로 그 실체를 꿰뚫어 보라는 데 있는 것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우리는 어쩌면 실체 없는 것을 위해서
이렇게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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