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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May 04. 2024

국민학교 때 이야기

그때 그 시절..

그 시절 내가 뛰어놀던 고향의 봄

나는 국민학교시절 동구 송현 4동 66번지 국민학교 정문 앞 부근 골목집에 살았다. 앞마당도 없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냥 널빤지로 만든 앉음 뱅이 평상과 방 한 칸 부엌 한 칸 이 전부였다. 집 전체가 어두웠다(주변이 가려져) 부엌으로 나가는 쪽문 밖에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부엌에서 밥 짓고 세수하며 지냈다. 방안에는 작은 창문이 있어 골목길로 다니 는 사람들의 발자국과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텔레비전 있는 집이 없어 만화방에 만화를 빌려보고 표를 주면 모아서 보거나 돈을 주고 방안에 둥글게 앉아 드라마나 레슬링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초등학교)의 모습

내가 다니던 송현국민학교는 집에서 나오는 골목을 나오자마자 큰길로 100M 정도 걸어가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6학년 전교생은 1000여 명 된 것 같다. 학급 수는 학년당 11개 반, 1 반당 80명 정도였던 것 같다. 1학년부터 여자 선생님이 담임으로 맡고 계시다가, 6학년 때는 김광선 선생님이라고 남자 선생님이셨던 것 같다. 교문 앞에 가면 급식으로 옥수수빵을 주어먹으며 등교했다. 매일 배고팠던 기억만 난다. 하굣길에는 어머니가 노점상 하시는 중국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와 같이 있던 생각뿐 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엄마와 같이 노점상을 거둬 접고 집에 갔다.


기억에 남는 국민학교(초등학교) 선생님

국민학교 1학년인가 숭의동 공설운동장에서 체육대회가 있었다고 한다. 화장실 소변이 급하여 나도 모르게 소변이 흘려 축축하게 젖은 자국을 감추고자 여자 선생님이 속치마를 벗어 덮어주었다고 한다. 성함은 기억이 안 나고 좀 뚱뚱하셨던 것 같다.


나의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모습

국민학교 시절 나는 착하기만 하고, 내성적이었던 것 같다. 사고 한번 안치고 국민학교만 오가는 범생이었던 것 같다. 하교 후에는 몇몇 친구와 '수문통'에 내려가 송사리를 잡으며, 제철공장 철길을 건너 다니며 놀았다. 송현 4동 쌍 6번지 (66번지)라고 술집 여자들이 많았고, 밤이면 술 취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국민학교(초등학교) 친구들

정육점 아들인 언청이 안성일, 시장 입구 잡화점(술, 음료 수)을 하던 집 아들 영환이, 같은 양 씨라고 친했던 동창 윤자, 윤자 동생인 덕근이, 한근이, 두근이와 고구마집 아들, 마사형... 코를 계속 흘러 손수건을 달고 다니던 한성국이 (지금은 대학교수) 화수동 선박집 아들 백정석, 같은 주택관리사로 아파트 관리소장을 하고 지내며 지금은 둘 다 퇴직했지만 서로 통화하고 지내던 남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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